그리스도인의 성 윤리 : 혼전순결
혼전순결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지, 현대 청소년의 순결 관련 이슈에 대해 정리해 보고, 과연 성경에서는 순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또한 결혼 적령기 지연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순결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교인들의 성 윤리 혼전순결에 대하여
Ⅰ. 들어가는 말
性의 城안으로 들어가며
고추 달린 남자라면, 조개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여자라면, 특별히 젊은 피와 기가 꿇어 넘치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이성의 몸뚱이에 대한 호기심과 한 번쯤 보고 싶다, 만져보고 싶다, 더 나아가 ‘한번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가끔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멋진 아담과 혹은 예쁜 하와와 에덴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생각이나 상상을 넘어서, “뽀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서부터 “포옹쯤은 괜찮겠지” “이러다가 갈 데까지 가면 어쩌지!” 등등 다양한 수준, 다양한 차원의 고민과 갈등을 빚고 있을 것이다.
“정말 안 될까, 결혼 전엔 정말 같이 자면 안 되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최대한 열린 마음, 유연성 있는 사고의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된다! 안 된다!”, “죄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함께 사색해 보자. 답을 찾아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말자. 따라서 여기에서 제시하는 답이 결코 모범답안이 아닐 수도 있음을 전제로 깔고….
그럼 이제 함께 “性의 城” 안으로 들어가 보자.
Ⅱ. 혼전 순결의 정의
그 사전적(한국어 사전) 의미는 “결혼 전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 관계를 맺음”이다. 육체적인 관계란 남성의 성기를 여성의 질 속에 삽입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전적인 의미일 뿐 다양한 상황과 윤리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정의이다. 우리가 혼전 성관계에 대한, 또는 순결에 대한 윤리적인 면을 논의할 때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에로틱한 공상과 자위행위, 페팅과 그 밖의 성과 관계된 용어 사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혹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도덕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Ⅲ. 혼전 순결의 문제가 가지고 있는 난제들
순결은 육체적인 면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육체적인 접촉에 있어서 그 한계에 관한 규정이 불분명하며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성관계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이것은 문화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신약 성서는 더 그러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Ⅳ. 성 의식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과 그로 인한 가치 혼란
오늘날의 사회풍토에는 성 문제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우리 사회는 TV나 영화, 노래에서조차 성을 공공 오락이나 유머의 자료로 쓰고 있다. 옷은 몸의 형태를 드러내도록 디자인돼 있고 성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티셔츠에는 ‘여기를 눌러 주세요’라든가 ‘이 부분을 뺏어가세요’라고 적혀 있다. 괜히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 드러나는 아리따운 여인의 허연 다리가 맥주 광고에 나오는가 하면, ‘강한 거로 주세요’라는 외국 여자배우의 섹시한 표정과 의미심장한 표현이 휘발유 선전에 도용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불과 몇 분 만에 육체적 성관계를 갖는가 하면, 요즘 방영된 TV 연속극에서는 혼전 동거를 현대적 교제 형태로 부추기기도 한다. 신문이나 잡지, 뉴스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의 성적 스캔들을 토픽 거리로 다루고 있어 사실 보도 본다는 성을 무기로 시청률을 올린다거나 판매 부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되기도 한다. 성을 교묘히, 또는 과감하게 활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상업주의도 성의 정신을 왜곡시키는 데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1) 생활 유형의 변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실상 기성세대의 생활이 많이 변해 있다. 이런 생활 유형의 변화는 직접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유혹이 더 많이 생긴다.
이제 청소년들은 이웃과 왕래가 없다. 동네 어른의 개념이 사라져 간다. 집의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다. 부모들은 모두가 바쁘다. 이제 청소년들은 무방비 상태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임신한 소녀의 대다수가 자신의 집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청소년이 성 문제에 관계되게 하는 압력
때로 성 문제에 관련된 청소년의 압박감은 순결에 대한 또래들의 태도에서 생긴다. 친구들의 자극적인 말과 경험담,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의 말들은 청소년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집단에 끼고 싶은 압박감, 대중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요구 또한 청소년이 처리하기 힘든 일이다. 또한, 성관계를 해야 성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 이것이 문제이다.
3) 결혼 적령기의 지연
과거에는 남성이나 여성이 생식 능력이 갖추어지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더구나 과거에는 생식 능력 또한 현재보다 더디게 나타났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초경이 시작되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몽정이 시작된다. 반면에 결혼은 25세가 넘어서야 하게 된다. 10년이 넘는 이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또는 결혼을 앞둔 청년들은 현대가 낳은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자. 이렇듯 사회는 성의 개방을 넘어서 성의 홍수 시대에 매우 근접해 버린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성에 대한 뿌리 깊은 전통의식과 교육은 정작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성적 가치의 이중성,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본질은 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변하고 개방되니 자연히 한국인의 성 의식은 생각과 생활이 이상과 현실이 따로 노는 기형적 사고를 낳고 있다. 전통적 성 의식과 개방적 사회현상이 공존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혼란, 이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있어야만 현대인의 성에 대한 가치관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Ⅴ. 혼전 순결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 변화
1) 서울대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설문 분석(동아일보 사회면 1999.11. 14.)
서울대 사회학과가 ‘서울대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해 92년과 99년 각각 944명과 7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비교하면 최근 7년간 대학생들의 성 의식이 급격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여학생의 성 경험은 92년 0.4%에서 99년엔 15.1%로 증가했으며 특히 포옹이나 애무 등의 ‘가벼운 경험’은 남학생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의 성관계 상대자는 92년에는 윤락녀가 46.3%, 애인은 40.4%였으나 99년에는 애인이 70.4%, 윤락녀는 18.3%였다. 남학생의 성 경험 비율은 92년 17.9%에서 99년 24%로 비교적 완만히 증가했다.
특히 파트너의 성 경험에 대해서도 관대해져 “애인의 성 경험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남학생들의 응답이 44.7%(92년)에서 64.6%(99년)으로 증가했으며 “혼전 순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응답은 23%에서 14.4%로 감소했다.
이 설문 결과에서 “흔히 타인의 성 경험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애인의 성 경험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다는 사회 통념이 이제 깨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 99년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 제280호 1999.3.1. (혼전 성관계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임)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성 의식 속에는 적잖은 이중성이 엿보였다. 응답자의 50% 이상은 배우자의 이성 교제나 외도를 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반수에 달하는 기혼 남녀가 내심으로는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교제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로 11%의 기혼자가 성관계로 이어지는 비율이 73%나 되는 ‘혼외 이성 교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전 성관계에 관한 조사에서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성인 남녀들은 66.4%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혼전 성관계는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혼전 순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응답은 그 절반 정도인 33.6%였다. 전체적으로 혼전 관계에 대해 개방적인 인식을 읽을 수 있는 가운데, 혼전 관계에 대한 남녀 간의 인식차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혼전 성관계는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여기는 경향은 나이가 적을수록 (20대: 77.9%, 30대: 68.6%, 40대: 63.0%, 50대: 39.1%) 더 높게 나타나,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들이 혼전 성관계에 대해 개방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 될 것이 없다’라는 응답은 20대 남성(86.6%)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같은 20대라도 여성은 ‘문제가 될 게 없다’라는 응답이 69.1%에 그쳤다.
남녀 구분 없이 나이가 들수록 혼전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난 가운데, ‘혼전 순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응답은 50대 여성 (67.6%)에게서 가장 많이 나왔다. 혼전 순결에 대한 개방적인 의식은 학력이 높을수록(고졸: 6.9%, 대재 이상: 74.6%) 높게 나타났다. 혼전 성 경험이 있는 사람은 83.2%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라고 답함으로써 혼전 순결에 대한 의식과 행동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엿보게 했다.
3) 신일여중, 대성감리교회 학생회의 설문 분석
본 설문 조사는 그 대상이 대부분이 여성이고 나이에 있어서 미성년 03~18세)이라는 특성이 있다.
본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의 성 의식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대중매체(36.5%), 주변 사람들이(30.8%)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교육을 통한 성 의식 형성은 14.5%로 저조하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63.9%가(사랑한다면 가능; 33.3%, 결혼을 전제로 가능: 24.5%, 사랑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가능: 5.7%) 혼전 성관계에 관한 질문에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애인과 배우자의 성 경험에 대해서도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스스로 현재 우리들의 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도덕적으로 문란하다: 4.0%, 더욱 개방되어야 한다: 32.1%, 적당하다: 22.7%) 보였다.
10대 여학생들의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응답은 더 개방적이었으며, 애인과 배우자의 성 경험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혼전 관계로 발생하게 될 문제점들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점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한, 혼전 임신의 경우 61.6%가 낙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10대 임신의 경우 낙태율이 설문 조사 결과보다 높다.
Ⅵ. 순결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1. 성서적 견해
기독교의 신앙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성서를 믿을 만하고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남녀 관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많은 성서의 가치를 의심하려는 사람이 많다. 성경에는 성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다. 때로는 성을 묘사하기까지 하며 성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성경은 인간의 부도덕한 성이나 비윤리적인 삶에 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명 성서는 우리에게 혼전 성관계에 대한 지혜로운 해답을 제시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1) 성경에 혼전 순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여러 부분에서 성 윤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혼전 성관계에 대한 경고를 포함하는 내용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은 기혼자(녀)가 자신의 배우자 외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구약 성서의 경우 성교의 도덕은 행위의 성격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행위로 일어날 결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된다(신 22:13-29). 오히려 여러 부분(천지창조, 아가서)에서 성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신약에서 간음한 여인의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정죄하며 돌을 던지려 하였지만, 예수님만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는 윤리, 도덕적 판단 주의나 흑백논리 등을 경고하셨으며 기존의 윤리 질서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셨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이제 자유함 안에서 책임을 수반하는 성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성 윤리에 기독교의 왜곡된 전통으로 인한 더 이상의 가치 혼란, 억압, 그로 인한 피해는 사라져야 하겠다.
2)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성서가 혼선 성관계를 음행과 죄로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의 성적인 언급을 중심으로 분명 성서는 혼전 성관계를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성교가 본질적인 연합, 우리가 결혼이라 부르는 파기될 수 없으며 전체적이고 인격적인 연합을 나타내며 이것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성교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의 문제이다. 성서는 성교에 있어서 정신의 연합뿐만 아니라 몸의 연합과 삶의 연합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성행위에서 누리는 기쁨’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성교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2 일반적 견해
1) 한국인의 전통적 윤리관
한국의 전통적 윤리관은 순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지고지선(地高支線)의 의무 주의적 윤리관에 가까울 것이다. 조선조 시대는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였다. 남녀는 유년기에 벌써 같이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으며, 여자는 한 남편만을 섬겨야 했다. 여성의 순결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결국 왜곡되고 일그러진 성 의식을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한국인의 성에 관한 관념은 금욕주의였다. 유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성은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성은 좋지 않은 것, 부끄러운 것 심지어 불결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그래서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나친 금욕주의는 심리학자 융(C.G. Jung)이 말하는 ‘집단적 무의식’이 되어 한국인의 성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이러한 성 윤리는 왜곡되고 일그러진 성문화를 낳게 되고, 따라서 성에 대한 열망과 억제라는 이중적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의 문화가 우리의 성문화를 증식시키고 있음을 더욱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2) 전통적 윤리관과 현실주의적 상대주의
순결의 문제는 절대주의적 기준을 주장하는 전통적 윤리관과 어떤 기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실주의적 상대주의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절대주의적 전통 윤리관은 순결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부당한 도덕 판단을 하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간을 당한 사람이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에 자살을 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도덕적 압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명이 순결보다는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가치 서열에도 어긋나거니와, 순결을 침해당한다는 것과 순결을 스스로 범한다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 탓이라는 비판도 받아야 한다.
또한, 이 견해는 정신적 순결과 육체적 순결을 구별 짖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강간과 같은 불행한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는 정신적 순결의 가치를 육체적 순결과 구별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실주의적 상대주의 입장은 극단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뜻하므로 순결의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순결의 문제는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순결이란 개인의 다른 소유물, 이를테면 옷과 같은 것이어서 남에게 팔아버릴 수도 있으며, 남과 공유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또한 잃어버릴 수도 강탈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결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을 무시한 견해이다.
우리의 윤리적 사고가 포괄적이고, 합리적이고, 공감적이어야 하는 기준에 부합되게 한다면 어떠한 윤리관이든 극단적인 것은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순결의 문제에 관해서도 두 가지 극단적 입장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이다.
3) 개인주의적 공리론의 관점
순결이란 사람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가치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들판의 눈이 특별한 가치 체험을 하게 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본래의 순결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인격이나 인품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4) 평등주의적 정의론의 관점
정의론의 입장에서는 먼저 절대적 순결과 상대적 순결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수도승이나 독신자에게 가치가 되는 것은 절대적 순결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가치이며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가치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대적 순결은 결혼과 같은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지켜야 하는 순결을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 간의 약속에 근거해서 인정되고 받아들여지는 가치이다.
5) 전체주의적 질서론의 관점
사회적으로 볼 때 순결은 건전한 시민과 건전한 사회풍토의 필요조건이 된다.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Ⅶ. 혼전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들
1) 신중의 도덕이다. 성교로 인해 미혼자가 입을 수 있는 상처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임신은 미혼녀에게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태아를 유산시키거나 입양을 위해 아이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혼자 힘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물론 결혼도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하나의 대안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양한 피임의 방법은 임신의 가능성을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질병과 죄책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2) 염려의 도덕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위험에 관한 개인적인 염려를 고려하여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은가?"란 질문을 던진다. 태아에 대한 염려, 상대방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미칠 도덕적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3) 인격적 관계들의 도덕이다. 인격적 관계의 초점은 성교가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 관심이 더욱 긍정적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성교가 그 관계를 강화하고 심화시킬 것이냐의 여부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Ⅷ. 혼전 성관계를 허용하는 견해들
1) 순결은 이제 처녀막이나 동정의 유무 차원이 아니라 지극히 역설적이나마 성에 임하는 정신적 자세로서 판별해야 한다.
2) 성이란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가능한 가장 진실한 대화이며, 흔히 육체적인 측면만 왜곡되게 부각되어 온 성이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정신적인 만남의 행위이다.
3) 순결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여성 억압적인, 그리하여 거꾸로 남성 자신들마저도 그 희생자로 만든 잘못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4) 누군가와 진지하게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참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일생을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하는 데에 어찌 ‘알아보지도’ 않았냐라는 거친 표현도 있다.
Ⅸ. 결론
“혼전 성관계”의 논의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결론에 따라 기독교 전통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이라는 말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윤리적이지 못한 것(자신의 윤리관에서 벗어난 것)을 너무 쉽게 죄악으로 단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죄악의 여부 판단을 위한 잣대로서의 윤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회의 건강과 질서 유지를 위해, 나아가 하나님의 정의로운 나라 실현을 위해 하나의 윤리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성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 사회의 전통이나 가치, 어느 한 종교의 신앙 행습, 또는 법적인 제도와 같은 것들이 우리 성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의 판단 기준은 사회이다. 성은 사회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성에 대한 주체성을 바로 심어준다면 성에서 비롯된 여러 유형의 문제들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성’ 안에는 ‘자유’와 함께 ‘책임 의식’이 동반된다.
사회는 ‘혼전성’에 대해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자유를 부정하며 개인의 가치를 몰이해하는 사회, 성을 가두고 억압하는 현실 속에서는 성 의식의 왜곡과 가치관을 혼란만이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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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8)"
[기독교윤리] - 바람직한 부부관계 - 성경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부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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