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나오미냐 룻 1:19-22

 

세상살이가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대로 된다면 좋겠으나 그러지 못하고 내가 원하던 것과 반대로 드러날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여기 세상 적으로 볼 때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재물도 바닥이 난 참으로 불행한 여인 나오미가 복된 자로 바꾸어 진 것은 그의 바른 결단과 행함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말만하면 무조건 불행한 조건도 복된 것이 된다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우면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고 오히려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란들이 많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우리는 어려울수록 불평 버리고 주님 앞에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친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소리로 떠들어댑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쏟아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이 한마디에 친구는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1.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1) 베들레헴에 오게 했습니다.

나오미는 그가 살던 베들레헴 땅에 기근이 들어 남편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모압이란 나라로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모압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의 나라이었습니다. 육신의 삶을 위하여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아무리 세상의 향락과 좋은 것으로 유혹할지라도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은 마침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신23:3)“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암몬과 모압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그 땅에 갔습니다. 이유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모압이라는 나라는 롯과 그 딸의 잘못된 관계로부터 낳은 악하고 음란한 혈통의 족속입니다.

(창19:36-38)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이 두 족속들은 장차 소돔과 고모라 같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습2: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 나의 끼친 백성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국민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악한 길에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탕자가 돌아오길 기다림 같이 지금도 그리하십니다.

 

2) 온 성읍이 그들로 인하여 떠듭니다. (19절)…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는 이방 며느리 룻과 함께 초라한 모습으로 10년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성읍에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녀가 10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 만해도 그 이름만큼이나 기쁨과 행복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웠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지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나오미는 예전의 아름답고 도도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고 늙고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당신이 10년 전에 우리를 떠났던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가 아니요?"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자존심 상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에 갈 때 금의환향(錦衣還鄕)하기를 원합니다. 추한모습으로는 오히려 피하게 됩니다.

여기 베들레헴 사람들은 떠들어 댑니다."이가 나오미냐?"라고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오미가 온 성읍 사람들의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판단하고, 없는 말도 만들어 왜곡하겠고, 어떤 사람은 냉소하고, 어떤 사람은 동정하겠으나 지나친 관심과 말들은 상처 된 심령에 더욱 상처만 안겨줍니다.

욥을 보면 환난을 당하자 그 친구들이 약속하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욥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욥2:12-13)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여기서 곤고한 자에게 대하여 꼭 명심할 것은 (13절)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말없이 같이 있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칠일이 지나고 나서는 그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욥을 혹독히 괴롭히는 모습을 욥기 4장부터 시작하여 37장까지 봅니다.

(욥16:1-2)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 구나“

 

3) 하나님이 낮추시는 것은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신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낮은 자리에 처하여 지므로 탕자가 아버지 품에 돌아오듯이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복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환란을 통하여 또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20절에서 말하듯이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버리고 자기 길로 가면 세상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반면에 회개하고 우리가 낮아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시79: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2. 쓴물을 달게 하시는 하나님 (20절)“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1) 마라 인생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모압 땅에 가서 10년 동안 살면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가산을 다 잃었습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쓰디쓴 삶이었습니다. 마라는 (괴로움, 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인생은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전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 밑에서 혹독하게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할 능이 없어서 그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그리 고통을 당하였어도 광야에서 그들이 하는 말은 무어라 합니까?

(민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11: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3) 쓴물을 달게 하시는 하나님 (출15:23-26)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를 따라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진입하였습니다. 수르광야에서 삼일 길을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 중에 만난 샘의 물을 마셨더니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마라]라고 칭하며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한 나무 가지를 물에 던지게 하였고 그 나무를 던지자 물이 달아져서 모든 백성들이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듯 우리인생의 마라를 달게 하십니다. (요2:9)

왜 마라를 주십니까? 하나님 말씀 청종하고 행하라고 또 행할 때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출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3. 비우고 채우시는 하나님 (룻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무엇이 잘되고 풍족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향락으로 가게 됩니다. 성경에 말하는 탕자도 아버지 재산에서 자기 몫을 달라하여 방탕의 삶을 살다가 다 없어지고 굶주리자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빈 배로 돌아 왔을 때 예수님께 배를 빌려드렸고 말씀 듣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밤에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예수님이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실 때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하실 때에도 내방식대로 얼마든 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하며 순종하지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빈 그릇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빈 그릇 깨끗한 그릇 준비합시다.

(눅5:5-6)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2) 육신의 것으로 심고 영의 것으로 거두었습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것은 재물과 남편 두 아들과 함께 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아야하고 그의 잘못된 삶은 세상 것은 잃었으나 먼저는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돌아오게 하셨다는 축복과 또한 세상 것은 잃었을지라도 룻이라는 보배를 얻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룻이라는 여인으로 말미암아 나오미라는 여인이 성경이 기록되는 축복을 얻은 것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하나님께서 징벌하심으로 잘못된 길에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단순히 우리의 불순종에 대해 징계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징계한다는 것은 자녀를 연단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벌을 가볍게 처리해 버릴 수도 있고, 그것에 대해 거역할 수도 있으며, 또한 겸손히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징벌에 순종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빈손으로 베들레헴에 돌아왔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될 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을 위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일로 룻과 보아스는 결혼을 하며 기업 무를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모든 축복들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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