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을 떠난 사람들 룻 1:1-5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 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들은 먼저 하나님께 의논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더구나 가족이 이사 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며 더욱 다른 나라 그것도 하나님이 없는 나라에 간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행하여야 했는데 단순이 눈에 보이는 흉년이라는 것 때문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왜 모압 땅으로 갔습니까? (1절)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모압이라는 나라는 롯과 그 딸의 잘못된 관계로부터 시작된 악하고 음란한 혈통의 족속입니다.

(창19:36-38)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이 두 족속들은 장차 소돔과 고모라 같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습2:8-10)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부터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통치가 있기 전까지 약 350년 기간을 사사 시대라고 합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는 왕이 아니라 사사였습니다. 이 시대는 백성들이 방자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살다가 어려우면 하나님 찾으면 하나님은 그때마다 사사를 세워서 구원하던 시대로 계속된 인도자가 없이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 상황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그 때는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은 제 멋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힘들고 어려워도 순종하고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합니다. 지금의 목자는 성령의 인도와 목사의 인도를 따라야합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 그 땅에 흉년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간 이유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사사 시대는 잦은 전쟁과 기근으로 흉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 방법으로 흉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모든 것이 궁핍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산다면 그 땅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아브라함도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땅에 들어갔더니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가면서 아내를 자기 생명을 위하여 누이라고 하자하고 갔는데 바로 왕에게 아내 빼앗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찾아 나왔습니다.

(요15:5)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3) 우거하려 갔습니다. 우거한다는 것은 엘리멜렉은 잠시 모압에 붙어살리라고 갔던 것이 거기에 눌러 살다가 영영히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란 한순간에 범하고 다음은 죄가 그를 다스립니다. 마약중독자도 그렇습니다. 한번이 결국은 그를 마약 중독자를 만들며 우리가 이번 한 주일만 빼먹겠다고 하는 것이 한번이 두 번 되고, 그리고는 습관이 됩니다. 그러므로 죄란 어떤 것도 조금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욥11: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2. 모압에 가서 생긴 일

1) 남편이 죽었습니다.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만 믿고 고향을 버리고 모압 땅에 왔는데, 더 잘살겠다고 갔던 것이 남편이 죽고 말았으니 재물이 무슨 소용이며 무슨 행복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의 남편 따라 가지 말고 영의 남편이 되시는 예수님 따라 가시길 바랍니다. 육신의 남편은 잠시지만 영의 남편은 영원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2) 두 아들을 모압의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4절)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남편이 죽었으면 다시 생각해 보고 돌아가는 계기로 삼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거하려갔던 그들은 이방인 아내를 취하여 아내를 삼음으로 베들레헴에 돌아갈 생각은 없고 그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요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모압 사람들과 친족관계를 맺게 될 것이니 결국은 모압과 같은 족속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 왕이 타락한 원인도 (왕상11:1-4)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3)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3) 그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5절)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와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어버린 나오미,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온 엘리멜렉의 가족은 10년 만에 나오미 만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 엘리멜렉의 말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성도는 예수밖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3. 믿음의 사람이 사는 법

1)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는 데로 사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것은 또다시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았고 롯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롯이 잘한 것 같았는데 결과는 가지고 갔던 재물까지 불에 타 없어지고 아내도 소금기둥 되어 잃어버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압은 딸하고 동침하여 만든 후손입니다.

(창13:10-11)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2) 육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영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모압 땅에 간 것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신적인 것을 얻기 위해 갔습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요 모압은 우상을 섬기며 음란한 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믿는다 해도 우선 먹어야 살지 아니 합니까 라고 합니다. 그 말도 옳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하시 몹시 주리셨습니다. 사단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하고 하는 말 중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은 먹고 살려고 도둑질도 하고, 거짓말도 때로는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도 어기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엘리멜렉의 가정도 '먹고 살자고' 모압 땅으로 갔으나 모든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모압은 행복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살자고 갔던 길이 죽음의 길로 변했습니다.

(롬8:5-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3) 문제를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합니다.

사람들이 문제가 오면 먼저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밖이 아니라 안에 있고,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환경을 탓하지만 그보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다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조급함은 여러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흉년에도 베들레헴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절)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