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바의 선택 룻 1:8-14

 

슬픔과 괴로움에 살던 나오미와 두 자부가 나오미의 유다로 돌아가리라는 결단에 자부들이 같이 가느냐 가지 아니하느냐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길에도 종종 결단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런 때마다 우리의 기준은 육보다는 영을 생각하고 세상 것보다는 하나님의 것을 생각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미는 육의 양식에만 관심 있고 육신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여전히 보이는 것을 따라 살고, 그녀가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는 여호와께서 치셨다는 것에 괴로워했다는 것만을 발견할 뿐입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남편 될 아들을 나는 이제 늙어서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모에게 돌아가 모압 남자와 재혼하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 것에만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며느리 오르바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오르바의 행위 (8절)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죽은 아들(남편)에게도 선대하였고 살아있는 시어미 나오미에도 선대했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환경에서는 그래도 좀 나을지 몰라도 남편도 죽고 이제 시어미 나오미에게 선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부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대보다는 갈등을 가지고 삽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세상 적으로나 신앙 면에서 지난 일들이 후회스러운 것들도 많고, 지금도 살아가면서도 내 스스로가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많으나 원하기는 마지막 날에 후회스럽지 않기를 원할 뿐입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2) 모압에서 유다 땅을 향해 얼마간 행하였습니다. (7절)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다시 모압으로 행하였습니다. 시작은 잘했으나 끝이 좋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그 길이 옳은 줄 알았으면 끝까지 가서 취하는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다가 중단하면 행하던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갈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이스라엘 백성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며 애굽에서 이끌어 냈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디베랴 바다에서 만난 후에도 믿음이 없이 옛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갈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3) 인정이나 육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나오미의 말은 너희 어미의 집으로 가라는 것과 남편 얻어 평안히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으라는 말이나 신앙 생활하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창12:1-)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롬8:5-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2. 나오미의 신앙

1)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8절)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왜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합니까? 가서 재혼하여 (9절) 평안함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많은 은혜를 베풀고 자유를 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신앙 면에서 보면 모압이라는 땅에서는 육신의 평안을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신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신앙으로 봐서는 같이 가지 아니한다 해도 권해서 대리고 와야 하는데 같이 가겠다는 그들을 돌려보낸 것은 너무나 잘못한 처사입니다.

모세는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 나와 함께하는 길은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룻1:11)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나오미는 신앙보다는 항상 육신의 생각으로 나는 늙어서 너희 남편 될 아들을 낳을 수 없고, 있다 해도 그들이 자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소망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통하여 소망을 줄 수는 있습니다.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할 때 (행3:6-7)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 되었습니다.

 

3)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I3절)

나로 인하여 자녀나 남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그의 죽음에 대하여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하나님은 치셨지만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시103:8-9)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자에게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눅15:11-23)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하셨습니다.

(욜2:25-26)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3. 오르바의 선택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 모든 일의 마지막 선택은 나에게 있습니다. 어떤 장애물이나 조건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남의 탓이나 조상 탓을 하지만 모든 결정은 자신에 있고 택한 것에 상응한 것을 받게 됩니다. TV 전자재품광고에 한순간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하던데, 여기의 한순간 선택은 평생을 좌우하고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롯은 한순간의 선택이 소돔성이 멸망할 때 모든 재물과 아내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신30:19)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 시어미의 말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효부같이 보이나 하나님 편에서는 잘못입니다.

기독교는 불효의 종교가 아니라 효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효는 유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효는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엡6:1). 지혜자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왕은 우리인생의 삶의 지침을 정리하기를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3) 십자가의 도가 어쩌면 과부 나오미를 따르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름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8:19-20)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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