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7-10 잔치 집

2009. 7. 13. 18:13


잔치 집 요2:7-10

 

본문은 예수님께서 잔치 집에 가셔서 행하신 너무나 잘 아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합니다.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라고 하려했는데 9절을 중심하여 생각하려합니다. 잔치집하면 먼저는 사람이 많아야하고 그리고 음식이 넉넉해야 하고 또한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잔치 집은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포도주가 모자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기쁨도 잃게 될 것인데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1. 연회장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

1) 물로 된 포도주를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행28:26-27)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아이가 태어날 때 처음은 눈을 감고 나와서 다음은 눈을 뜨기는 했으나 보지 못합니다. 점점 보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사물을 밝히 보는 것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사람도 처음은 눈은 떳으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밝히 보는 영의 눈이 열려야합니다. 보지 못하면 소경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의 눈은 특별한 사람만 열리는 것으로 가르치고 말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어떤 특정한 아이만 눈이 보게 되고 나머지는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까? 오히려 소경은 극히 소수가 되어야하는 것처럼 영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모두가 영의 눈을 떠야한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이해하지도 받지도 아니하지만 나중에 받는 사람들은 영의 눈이 열려, 그들이 영을(성령, 마귀) 분별하게 되고, 자기 마음을(특히 죄) 분별하고, 기도하면서 응답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눈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요3장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 하신 내용입니다. (요3:6-9)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영의 사람은 니고데모와 같은 무지가 아닌 영의 소리를 듣고 알아야합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느끼기는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눈이 밝기를 원하십니다.

(엡1: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영의 눈이 어두워지는 이유

(요일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마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영의 눈이 밝아지려면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2) 물로 된 포도주를 마시면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교인이 목사가 설교할 때, 눈이 닫히면, 듣는 귀가 닫히고, 다음에는 마음창이 닫히면 죽은 심령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문둥병자처럼 감각이 없어 깨닫지 못합니다. 전주에서 옹동교회와서 조발님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새벽예배까지 빠지지 아니하고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은혜를 받았는데 얼마 후에 그분이 전혀 듣지 못하시는 분인 것을 알았을 때 깜작 놀랐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그리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하고, 눈귀가 성해도 교회 와서 설교시작만하면 졸고, 또 설교를 마치면 기막히게 알고 눈을 뜨는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글 몰라서 또는 잘 안 들려서 하면서 여러 핑계를 대지만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야합니다.

(엡1:18-19)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3)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 군산에서 목회할 때 이순이라는 새댁이 교회에 다녔는데 결혼하고 3년이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병원에서는 자궁이 성장하지 못하여 아이와 같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들고 그러면 새벽기도에 나오라 해라 그러면 기도해 주겠다고 하였고 그는 그대로 새벽에 나와서 그해 아이가 있어 아들을 낳고, 또 아들 낳아 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말하기를 낳을 때 되니까 아이를 낳았지 무슨 하나님이 낳게 했느냐고 하더라고, 나에게 와서 속 터져 죽는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서 불신의 눈에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면서도 믿지 아니합니다. 누가복음 16장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이야기에서,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당하며 부탁이 죽은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증거하여, 내 5형제들이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여 달라할 때 (눅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요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2. 하인들

1) (6-7절) 예수님께서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 하신대로 아구까지 채운 하인들은 알더라.

①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다는데 항아리에 무슨 물입니까? 항아리도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물을 담아 손발을 씻는 물그릇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 하라는데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인들은 적당이가 아닌 6개에 아구까지 채운 그곳에 기적이 임했습니다. 순종이 없이는 기적도 없습니다. 베드로도 어제 밤이 맞도록 수고했으나 헛수고 했지만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② 물리학적 식품학적으로 맞지 아니합니다.

포도주를 만들려면 먼저 포도가 있어야하고, 그리고 포도주란 당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를 깨트리고 짜서 그 액체가 상당 기간 동안 발효되도록 보관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포도주가 모자란다는데 포도를 사와도 아니 되는데 맹물로 포도주를 만든다니 하인들이 선뜻 순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도 순종했습니다.

 

2)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여 갖다 준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했을 때 만일 그들이 물로 된 포도주를 떠다가 주지 않았더라면 포도주로서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인들의 입장에선 이것이 정말 포도주일까, 괜히 떠다 주고 핀잔이나 받지는 않을까 등의 회의나 염려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나 과학적인 사고는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가을이 되면 나무마다 열매를 맺는데 모양도 다르지만 맛도 다른 것이 신기합니다. 똑같은 흙에서 똑같은 거름을 먹고 같은 환경에서 다른 열매 다른 맛을 냅니다. 상식에 맞지 아니합니다. 꽃이 피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3) 체험한자가 알게 됩니다. 기독교는 이론이 아닌 체험이 되어야합니다. 거듭남의 체험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해야 참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 바울같이 다메섹의 체험이 그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치에 맞든 안 맞든,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그대로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가 나타나고 기적과 표적이 따르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예수님의 잔치 (10절)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 주님의 잔치는 포도주의 질이 이전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먼저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놓는 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잔치는 나중이 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끝이 더 좋은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왕들 보면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다가 나중에는 끝이 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중에 사울왕, 솔로몬왕, 요아스왕, 히스기아왕등.

물은 별 맛도 없고 값도 싼 것으로 사람의 손발이나 씻어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포도주로 변할 때는 찬치 상에 오르고 남을 기쁘게 하는 귀한 것이 되듯이, 우리인생도 일단 주님의 손에 붙잡혀 변화되면 포도주처럼 가치 있는 인생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변화 받는 귀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아무열매나 맺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어야하고 거짓되고 악한열매는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2) 먹고도 남은이 있는 잔치였습니다. 두 세통 드는 항아리 6개에다 물로 가득 채워 포도주가 되었으니 남을 수밖에 없는 잔치입니다. 오병이어에서도 오천명이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도록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안주시려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많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베드로의 말씀에 순종하는 배에 (눅5:6-7)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 신랑이 칭찬을 듣는 잔치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포도주 모자라 망신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을 듣는 잔치였습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이 연회장은 이 좋은 포도주를 베푼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신랑에게 칭찬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 될 뿐 아니라, 사람들로 칭찬을 듣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병은 예수님이 치료해 주시고 대접은 내가 받고 있습니다. 목회도 하나님이 하시고 대접과 칭찬은 내가 받고 있습니다.

(호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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