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탕자 눅 15:25-32

 

우리는 집을 나갔다 돌아온 아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집에서 있으면서 잃은 맏아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정이나 교회에서 둘째 아들의 경우보다는 맏아들의 경우처럼 아버지와 대립될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들 둘이 있는 가정에서 작은 아들은 철이 없어 자기의 분깃을 받아가지고 외국에 나가 허랑방탕하다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다고 생각된 아들이 아버지의 기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거스리며 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1. 맏아들의 충성

1) 맏아들은 밭에서 일을 하다 돌아왔습니다(25절)

① 그는 말과 행동으로 보아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그날도 밭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우리는 나의 할 일을 알아서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합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② 그는 일하되 자기일이 아닌 남의 일 같이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29절에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우리가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남의일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내일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 중 하나가 무슨 일을 하든, 자기일 같이하지 아니하고 남의일 하듯 하므로 눈가림만 하여 망한 것입니다.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③ 일을 하되 품꾼처럼 생각하며 아버지 일을 했습니다. 29절에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맏아들은 아버지 일하면서 품꾼이 받는 삯을 원하여 나에게는 염소 새끼도 주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아들이 아버지 일하고 돈 달라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일하면서 삯을 기대하지 말고, 또 삯으로 아버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주는 은혜로 세상품삯보다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품삯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31절 “아들에게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2)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29절)

옛날 어느 날 거짓말 대회가 열렸습니다. 거짓말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모여서 누가 거짓말을 더 잘 하는가 시합을 하는데 다 열심히 나와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연사로 나온 사람이 “여러분 저는 거짓말대회에 나왔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정말 못합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자꾸 대회에 나가 보라고 해서 나온 것뿐입니다. 저는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이만 내려갑니다. 시상식에서 그가 일등을 했습니다.

 

① 맏아들은 지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들어가기를 거절하면서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주장과 고집이 발동하고 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도 문제가 있으나, 맏아들 같이 자기는 아버지 명을 어기지 아니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마음이 더 문제입니다. 둘째 아들은 잘못하고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가 있으나 맏아들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회개하지를 아니합니다.

 

② 그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간음 도적질 방탕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러게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미움과 원망과 탐욕이 있습니다. 동생을 미워하고 용서치 못하며 아버지에게는 원망과 염소새끼 한 마리의 탐욕이 들어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은혜 안에서 먹고 입고 살았으면서도 만족이 없고 염소새끼 타령입니다.

(눅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③ 그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십일조 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맏아들처럼 하나의 의무감만 가지고 행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는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을 지키는 것은 형벌을 두려워하여 지키기도 해야 하나, 그보다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가 감사해서 해야 합니다. 억지 것 하는 것에는 감사는 없고 불만이 나오고 감사함으로 할 때는 기쁨이 있습니다.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 무엇을 했다는 것 때문에 매사에 비판적이고 불만을 늘어놓는다면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제는 아버지 하는 일 까지 간섭하며 잔치를 베풀었다고 불평합니다. 우리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하든 말입니다. 어떤 교인은 자기가 열심히 신앙생활 잘한 것으로 생각되면, 이제는 목사가 하는 일 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나섭니다. 설교도 비판하고 판단하며 마치 감독자가 됩니다.

(민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잠26:17)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2.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에 아버지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의 잘잘못을 떠나서 아들이 집을 나갔다는 것이 아버지 마음에 근심과 걱정과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의 아픔은 전혀 상관없고 마치 아프던 이 빠진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돌아왔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기쁨이 되지만 그의 마음에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 심보입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2) 그는 마치 자기 재산에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깁니다. 둘째아들이 탕진한 것은 자기 재산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눅15: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리고 탕자가 들어왔어도 자기 재산과 상관이 없는 것은 이미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 재산을 독차지 하려는 마음과 아버지 관심과 사랑을 혼자 차지하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사나 은혜가 주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시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의 몫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때문에 우리의 몫이 적어지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큰아들은 잘못된 생각이 잔치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3) 아버지는 잘못살고 재산 탕진하고 돌아와도 아들로 여겼지만 맏아들은 동생으로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정죄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기들을 개 취급하며 같이 자리에 앉지도 아니했던 것처럼, 밭에서 돌아오는 그가 집에서 나는 풍류 소리 듣고 한 종을 불러 무슨 일인가 물을 때 종은 그에게 (눅15:27-30)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 라고 하였으나 그는 자기 동생을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라고 하여 자기 동생이라는 것은 빼 버리고 이아들, 즉 아버지 아들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32절"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하였습니다. 맏아들의 중대한 과오는 아버지의 명령을 행하였다 하면서 부모가 제일 원하는 것은, 그가 자기 동생으로 인정하고 형제들끼리 화목하며 사랑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을 저버린 것입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3. 맏아들은 동생을 쫓아내던지 내가 나가던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집에 있는 탕자입니다.

1) 아버지의 즐거움에서 멀리 있는 자입니다. 동리사람들도 와서 기뻐하며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데 아들인 그는 제외되고 있습니다. 아들이 돌아옴으로 생겨진 기쁨과 즐거움은 32절“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눅15:8-9)“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한 영혼이 죄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잃어버려진 데에서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① 정죄의식 때문에 한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동생을 30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동생이 창기로 인하여 재물을 허비했는지 사업하다 부도났는지 어떻게 압니까? 집나간 후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고 지금도 그를 만나 보지도 아니했는데, 그런데 동생이 창기로 인하여 재물을 허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의인 시하는 그래서 남을 정죄만하는 죄인입니다.

(막2:16-17)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② 특권의식 나는 맏아들인데 나에게는 염소 새끼도 안주면서 둘째 아들이 오매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나서면 소외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학교에서 누가 왕따 당하는지 압니까? 잘난체하는 아이입니다. 우리는 맏아들처럼 특권만을 주장하지 말고 책임을 다 할 줄 알아야합니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특권을 누리기도 하지만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보았어야하고, 동생이 더구나 돌아왔으면 형의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해야하는데 오히려 들어가지 아니하려합니다.

(창4:8-9)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③ 부모에 대한 불만이 그는 아우와 같이 한 집에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29절 맏아들은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그 명을 어김이 없거늘 하면서 자기 공로를 내세우며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아버지는 나는 알아주지 않고 저 못된 동생에게는 그렇게 잘해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마20:1-15)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 육시, 구시, 십일시에도 나가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여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2)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기 보다는 들사람입니다. 그는 25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28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 아들이지만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기보다는 밖으로 맴도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살진 송아지 잡고 동리사람들도 와서 (눅15:25) 풍류와 함께 춤을 추는데 그는 맏아들이면서 밭에서 왔다는 것은 일은 잘했는지 몰라도 평상시에도 가정과의 관계는 문제가 있습니다.

 

① 성경에 들사람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갈4:23) 육을 따라 난 이스마엘은, (창16: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또 에서는 (창25: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똑같은 아버지 이삭의 쌍둥이 아들들이나 하나는 들사람 에서 인데 그는 (창27: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입어 차자지만 장자의 축복을 취하게 됩니다.

 

② 헌신 봉사보다도 하나님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은 편입니다.

(눅10:38-42)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는 집에 가셨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음식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님께 나아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③ 우리는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들사람같이 교회를 멀리 맴돌고 주님을 멀리하지 말고 교회 안에 있어야합니다. 교회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신앙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눅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3) 맏아들이 동생을 대하는 자세

① 동생보다는 재물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30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의 살림, 살진 송아지가 강조되고 그러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하게 여깁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② 동생을 집을 나가 방탕한 때의 일만 말하고, 그가 참으로 회개하고 새사람 되어 돌아온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난날 범한 죄보다는 회개하고 돌아 온 것만 생각하시고, 지난날 모든 잘못은 기억지 아니하십니다. 지난날 과거에 어떤 사람 이었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제에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③ 맏아들은 친구와 즐기기 위해 염소를 구하나 (29절), 그것보다 동생과 함께 송아지로 즐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먼 이웃과는 가까이하고 친절하면서, 집안 식구에게는 원수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미7: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 라고 하였으나, 그러나 참 믿음의 사람은 형제를 사랑해야합니다. 어떤 교인은 세상 사람들은 친하면서 성도와는 원수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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