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눅 15 : 17-24

 

본문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자기 분깃을 달라고 하여 가지고 먼 나리에 가 버렸습니다. 성경은 그를 '잃은 자'라고 하고, 또 '죽은자'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자기 멋대로 사는 허랑방탕한 생활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는 그 때부터 그의 인생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을 회복하는 길은 죄를 회개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하면서 생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회개하지 않습니까? 죄를 깨닫지 못하고 저기 행위를 옳게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는 것 같은데 왜 변화되지 아니하느냐 그것은 깨닫고 죄를 인정하지만 자기 잘못된 삶을 고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단순한 생활의 변화 정도가 아닌, 근본적인 인생의 변화입니다. 죄인이 의인되는 변화요, 지옥 갈 사람이천국가는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회개를 통하여 일어납니다.

 

1. 탕자의 생활

l) 아버지의 뜻 보다 자기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12절에 '아버지여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였습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①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고집이 쌔면 돌아가는 것은 채찍뿐입니다. 고집은 어디에서 오느냐 미련함에서 나옵니다. 어디를 가나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미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말로 왕따 당하게 되고 친구가 없어집니다. 고집은 아무짝에도 쓸데없습니다. 우리는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됩시다.

(잠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잠26: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②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맘대로 사는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 간섭받는 것 싫고 내하고 싶은 대로, 세상말로 내 멋대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들 모두가 탕자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입니다. 부모의 간섭이 싫어 떠나는 것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입니다. 참으로 위험합니다.

(전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③ 자기중심의 삶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우리 인간을 만든 목적이 자기만을 위하여 살라고 만든 것 아닙니다.

(고전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2) 재산을 잘 관리하고 바르게 사용해야하는데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13절 거기서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①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합니다. 주인의 원하는 대로 쓰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하여 사용한사람입니다. (눅16:1-2)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주인을 위하여 쓴 것은 허비가 아닙니다. (막14:4-6) 어떤 사람들이 분 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 였느니라

 

② 허비하는 삶이 아니라 남기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시간도 재물도 재능도 허비하지 말고 이를 남겨야합니다. 물도 흘러 보내면 낭비요, 군산에서 선유도 가면서 본 풍력 발전기도 바람도 그냥 보내지 아니하고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③ 재물을 하늘에 쌓아야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이야기(눅12:16-18)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3) 남에게 붙여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눅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더부살이 인생,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물건을 살 때 끼어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더부살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끼어 사는 인생으로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모두가 하나하나 개성이 있고, 주어진 사명이 있고, 하나하나가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귀한그릇이라도 더러운 것 담으면 더럽고 천대받는 그릇되듯이, 자기하기에 따라서 귀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가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2. 생각을 바꿨습니다.

1) 스스로 돌이켜야합니다.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거듭거듭 어리석게 삽니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 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어리석은 사람은 꼭 당하고 얻어터지고 해야 깨닫는 당하고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다 없어지고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보다 더 악한 자는 채찍을 맞으면서도 계속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사1:5-6)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2) 아버지 집으로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생각이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 멋대로, 아버지를 떠나서 살아보려고 했던 생각을 바꿔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굶주림과 헐벗음과 멸시천대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그때부터 해결의 문이 열려집니다. 지금까지 자기고집과 교만과 부정적인 모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인생은 가인과 아벨부터 지금까지 다툼의 연속으로 고슴도치의 겨울나기로, 가까이하면 찔리고 멀리하면 추운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는 묘한 관계가 인간관계입니다. 거기에 부부관계는 더 어려운 사이입니다. 가까이 있다 보니 고슴도치 사랑이라 가끔 서로 찔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깨달은 것이 있는데, 부부는 남보다 더 가까워 모든 일과 대화가 탁구식이 되어 이쪽에서 치면 저쪽에서 받아치는 것이 되어 계속되는 게임이 되는 구나, 선수가 될수록 오래도록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쪽은 탁구선수라도 상대인 사람이 탁구를 칠 줄 모르면 똑딱 볼이 되어 제미가 없어 탁구를 치려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에는 공격적인 말을 해서도 안 되며 공격에 받아치지도 아니해야 부부사이가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가 아닌,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내가 변화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행복한 부부가 되는 비결 (화목한 부부생활) 의 글을 소개합니다.

①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라. ② 집에 불이 났을 때 이외는 고함지르지 말라.

③ 눈이 있어도 흠은 보지 말며 입이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말라 ④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⑤ 아픈 곳을 긁지 말라 ⑥ 분을 품고침실에 들어가지 말라(엡4:26) ⑦ 처음사랑을 잊지 말라

⑧ 결코 단념하지 말라(내가먼저 손을 내밀자) ⑨ 숨기지 말라

 

3)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의 분깃을 원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그에게 주려고 한 모든 것을 당장 갖고 즐기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 스스로 번 것이 아니었으며, 협력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차지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례하고 불손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지 부탁하거나 구하는 어조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것 달라는 태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생각과 한일이 옳은 줄로 착각하고 잘난 채하고 교만하던 생각들이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바꿔져야 합니다. 18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이 탕자는 지금까지 자기 생각이 옳은 줄 알았으므로 그대로 행하였고 자기 잘못을 회개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항상 불평과 원망의 말이었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이후로는 방탕과 음란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하는 회개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회개해야 변화됩니다. 항상 자기 잘난 채만하고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사람이 변화되겠습니까? 몇십년 예수 믿었다 해도 항상 그것이지요!

(잠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학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3.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1) 잘못된 자리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지금의 자리는 죄를 행하는 방탕의 자리요, 먹을 것이 없는 징계의 자리요, 짐승 취급받는 저주의 자리에서 일어나야합니다. 탕자는 마음속에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말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아버지께 돌아갔습니다. 제 위치 제자리로 간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에서 벗어나면 전복합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품, 사랑이 있는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의 간섭과 보호가 있는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 하였습니다. 본문 21절에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탕자는 회개하였습니다.

3) 품꾼으로 돌아왔습니다.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집을 나갈 때는 마치 자기 것을 찾아 가는 것처럼 당당하였는데 탕자가 돌아올 때는 품꾼의 자세로 돌아왔습니다. 품꾼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자입니다. 아들의 자세가 아니라 종의 자세로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용서해 주셨습니다. 탕자는 차마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저 품꾼으로 써 주셔서 배고프지 않도록 먹여만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더니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 주며 아들의 명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거지가 부자 집 아들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