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의 패러다임 - 도로테 죌레


Ⅰ. 서 론

1. 저자 소개

본 서의 저자인 도로테 죌레는 독일의 조직신학자이자 문예비평가이다. 이미 거의 이른 이 다된 죌레는 독일의 전통적인 카톨릭 도시인 쾰른에서 태어났다. 쾰른과 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고전 문학과 철학을 괴팅엔에서 신학과 독문학을 공부하였으며, 1972년 그녀는 쾰른 대학에서 계몽주의 이후의 신학과 문학과의 관계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하였다. 1975년부터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의 교수로서 매년 한 학기씩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는 불트만과의 대결과 정치신학의 전개, 신 죽음의 신학 이후의 새로운 기독론 해석 등으로 독일 신학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으며, 신학뿐 아니라 시, 에세이, 성서연구등은 반전, 반핵, 평화, 여성해방을 지향하며,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시대에 대한 열린 태도와 개방적 방법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흔히 여성신학자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그녀의 깊은 신학적 사고와 폭넓은 저술활동, 과격한 평화운동에의 참여와 국제적 연대활동은 그녀를 여성신학자의 범주에서만 평가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에서 출간된 그녀의 저서로는 「환상과 복종」, 「사랑과 노동」, 「고난」등이 있다.

2. 문제제기

본 서는 저자가 앞에서 밝히고 있듯이 정통주의 신학과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규정하고 해방신학을 정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급진적 신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본 서는 다른 조직 신학서 들과는 달리 현대 기독교 신학의 기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함에 있어 새로운 시각과 역행적 배열로 신학에 대한 흥미와 깊은 고찰을 요구한다. 죌레는 제 1장에서 이 책의 서론적 문제제기를 하나님의 사고에로 초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도에로의 초대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본 서를 읽으며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본서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서평 하고자 한다.

 

Ⅱ. 본론 (요약)

1. 제 1 장 조직신학이란 무엇인가?

설에서 저자는 신학 하는 이유와 목적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존립이 전통에서 야기됨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출발점은 신학에 대한 이해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즉 신학을 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을 사고하는 시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도로 자신의 신학적 논지를 이끌어가려 한다. 곧 이 주장은 신앙과 신학의 문제를 야기하고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문제, 신앙공동체와 하나님의 민중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조직신학의 중요한 개념임을 말한다. 죌레는 결론적으로 신학은 신앙의 행위임을 명시하고 회의 없는 신앙은 이념적이라고 주장한다. 곧 이 말의 의미는 신학은 인간을 보다 깊은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하며, 신학의 사고 모델은 프락시스로부터 출발하며 프락시스로 끝남을 주장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전제했듯이 죌레는 본 장에서 신에게 치우친 신중심의 신학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바른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한 신학에 있어서의 신앙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2. 제 2 장 정통, 자유, 급진신학 - 세 가지 기본적 신학의 틀

저자는 다양화된 현대의 모습 속에서 신학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며, 크게 정통주의 신학을 살펴보면 정통주의 혹은 보수신학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주의 신학 혹은 해방신학의 세 가지 확연한 신학적 동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먼저 정통주의 신학을 살펴보면 정통주의는 ‘올바른 신앙’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성서와 교의학적 전통을 출발점으로 하고 정통신학은 개혁운동이후 발생했고 개혁주의에 의하여 성숙했다. 16세기말에서 18세기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다 19세기의 부흥운동과 그 이후 근본주의를 통해서 더욱 힘을 얻게 되어 20세기에 와서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새로운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정통주의는 분리와 이원론적 입장을 제시한다. 분리의 긍정적인 면인 프로테스탄트 원칙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상황을 떠나서는 신학적으로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맹점을 남기게 된다.

두 번째 자유주의 신학은 서구 계몽주의가 정통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하자 계몽주의의 비판적 정신의 인정과 부르주아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나타났다. 자유주의는 신앙보다는 이성에 우선을 두고 신학보다는 인간의 철학, 자연철학, 자연종교, 자연과학에 우선을 두며 과학의 타당성과 종교의 역사성, 문화와 종교의 일치라는 기본전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은 새로운 비판적 성서연구를 개발하였으며 교회와 국가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비판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도 정교분리의 원칙과 일관된 개인주의의 맹점을 가지게 되며 부르주아의 신학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자유주의도 정교 분리의 원칙과 일관된 개인주의의 맹점을 가지게 되며 부르주아의 신학이 되버리고 말았다. 세 번째 급진주의 또는 해방신학은 사회의 소외된 계층, 단순히 인종 때문에 성과 계급이라는 것 때문에 억압받고 차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학이다. 해방신학은 신앙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가 아니라 배고픈 자들에게 떡을 나누어주고 눈먼 자들을 보게 하고 정의를 위해 살다가 죽었다는 메시아 프락시스에 둔다. 즉 해방신학에 있어서의 기본 원칙은 가난한 자들이 우리의 선생이라는 것이다.

제 3 장 성서의 권위 - 정통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

저자는 3장에서부터 신학의 주요 테마들을 가지고 3가지 신학의 동향별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중 3장은 성서의 권위에 대한 문제로 먼저 프로테스탄트-정통주의 입장부터 설명하고 있다. 정통주의는 성서의 권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문자 적인 진실로 믿게 함으로써 소위 축자 영감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는 결국 성서 자체뿐만 아니라 성서를 해석하는 교권 자들에게까지 그 권위를 가지게 하는 결과를 낳으며 교리적 사고방식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런 권위와 전승과 사고방식은 예수의 신앙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계몽적, 자유적 패러다임은 성서 본문에 대한 비평과 교회와 그 대표자들에 대한 제도적 비판,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소속 되있다고 정당화하는 힘과 권위에 대한 비판 등의 기반을 가지고 등장한다. 정통주의적 사고에서 성서는 의심이 여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자유주의적 이해에 따르면 방법론상 성서는 다른 책과 다름없이 취급되는 것이다. 곧 자유주의는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인간이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가 실수할 수도 있고 과학의 특별한 사실을 몰랐고 개별적 역사적 사실들을 인식하지 못했던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인간들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제 4 장 성서와 실천 - 자유주위 신학의 패러다임과 해방신학

저자는 3장에 이어서 4장에서 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신앙의 확신과 신앙의 희망을 전달하는 힘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은 비유럽적인 방법으로 성서의 권위를 구해내고자 했다고 하며 특정 본문의 진실성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역사-비평적인 방법을 끝까지 쓰지 않음으로써 사회사의 Issue들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세 가지 해방신학의 사상적 모델을 제시하며 새로운 해방신학을 구축하려 한다. 그 첫 번째는 하르낙의 알곡과 껍질의 표현이다. 이는 복음의 핵심은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둘째는 불트만의 언어로써 그리고 언어의 전달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시도이다. 셋째는 틸리히의 종교적 언어는 근본적으로 상징이며 사실적 언어가 아니라는 상징의 개념이다.

저자는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이야기보다 더 크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언어보다 더 큰 존재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모델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해방신학은 성서전체가 가난한 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가난한 자들의 콘텍스트 안에서 성서를 읽어야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서 성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성서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물으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5. 제 5 장 창조와 인간과 세계

창조에 대한 성서적 신앙은 세 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하고 있는데, 그것은 창조자 하나님, 인간, 세계이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 즉 하나님의 역할, 인간 피조물의 역할, 그리고 창조의 역할 등은 신학의 다양한 패러다임 속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강조되어 왔다.

먼저 정통주의의 창조이해는 성서가 세계를 설명하며, 인간은 의존적 존재이며, 자유로우나 창조질서에 예속되었으며,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주장한다.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자유를 강조하고 창조질서의 상대화와 성스러움이 결여된 창조세계, 하나님의 내재성을 주장한다. 셋째 해방신학은 창조가 인종, 성, 계급의 평등성을 의도하며, 창조는 미완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우리가 완성시키기를 원하시며, 생태학적 해방신학을 통한 창조의 신성함 유지, 하나님의 내재적 초월성을 주장한다.

6. 제 6 장 죄와 소외

먼저 정통주의에서 말하는 죄와 소외의 개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복과 이해의 눈멀음, 의지의 타락, 오만, 거만, 거만으로 표현된다.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사랑의 결핍, 이기주의, 의존으로부터의 고립으로 표현된다. 해방신학에서는 죄와 소외는 정통주의나 자유주의에서처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로 비롯되지만 이것은 사회적 구조들과 개인적 태도에서 표현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탐욕과 부정의,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 인류가족으로부터의 소외, ‘백인이 되고 싶은 소원’이나 ‘남자가 되고 싶은 소원’등과 같은 자기부정으로 표현된다.

7. 제 7 장 여성해방신학의 주제

누가 하나님을 부르는가? 라는 질문, 즉 주체에 관한 질문은 모든 해방신학들에게 중요하지만, 여성신학에 있어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 중요하다. 저자는 그 주체가 바로 억압받고 있는 여성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따라서 여성신학은 해방신학이다. 왜냐하면 여성신학에서 실천과 성찰을 통하여 다시 새로워진 실천은 해방신학과 같은 신학적인 과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신학은 성서를 우리를 속박하는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정의의 책으로 읽는다. 곧 성서는 해방하는 성격을 지녔으며 이러한 성격은 기독교 전통의 특정한 부분들을 철저하게 비판했을 때 결정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8. 제 8 장 은총에 대한 이해

만일 죄가 분리이며 차별이고 고독과 소외를 의미한다면 은총은 생명의 근원을 지닌 삶으로 재결합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라너는 은총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겸손과 인간을 향한 완전히 대가없는 관용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정통주의의 은총에 대한 개념이해를 보면 은총은 속죄, 책임면제, 몸값, 희생, 정화, 치유로 표현된다. 반면 자유주의는 은총을 화해, 용서, 마음의 변화, 인류의 교육을 통한 신에게 이끌림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해방신학에서는 은총을 해방과 사회적 관계, 개인적 삶의 변화로 이해하며, 해방은 투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해방신학에서는 불의의 강압이 아니라 은총아래 있기 때문에 불의한 체제에 대항해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것을 요구한다.

9. 제 9 장 흑인신학의 “흑인예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고,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해방의 목표에 한몫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흑인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미국의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콘의 말이다. 1960년대 후반에 마틴 루터 킹에 의해 흑인신학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주로 민권운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 초기에 흑인 신학은 두 번째 국면으로 접어들며 자신의 언어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흑인 신학은 죄란 백인이기를 바라는 것이며, 백인 구원자가 흑인을 도울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역시 흑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순히 피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 교회와 문화 속에 살아있는 정신인 것이다.

10. 제 10 장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기독론은 예수의 신비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다. 저자는 이런 기독론이 개인주의적 지평으로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며,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기독론을 비교하고 있다. 먼저 신정통주의에서의 기독론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가능한 계시와 오직 성서를 통해서, 교회적 차원에서, 전적 타자의 신등으로 이해된다. 반면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종교를 통해 역사적 상대주의와 개인적 차원에서, 문화의 변형 등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정통주의는 부활의 사건에 초점을 둔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발전시키며, 가현설과 인격의 통일체 안에서 본성의 이중성을 고수하려고 시도했다. 여기서 해방신학은 가현설의 신학적 위험성을 비판하며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또한 여기에 다른 위험성이 있는데 단지 사람으로서 그를 보는 것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을 간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기독론의 의미는 인간을 하나님의 신비로 끌어들이는데 있다고 하겠다.

11. 제 11 장 십자가와 부활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깊은 해석은 슐라이에르마허나 리츨 또는 트뢸취 등의 자유주의 신학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해방신학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행에서야 비로소 이러한 신앙의 내용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나타난다. 특히 저자는 미구엘 드 에스코토의 강론을 강조한다. 그의 십자가의 해석이 지닌 세 가지 특징은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둘째, 아버지의 뜻을 따를 때에 나타날 십자가와 관련된 피할 수 없는 결과이며, 셋째는 십자가 자체에서 보여지는 부활의 차원이다. 이는 하나의 결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일에서 십자가를 사랑하는 일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위대한 내적 자유가 십자가를 사랑할 때 나타난다.

12. 제 12 장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서론에서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교회가 된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 속에서 인간을 통하여 해방시키는 일을 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나님의 해방시키는 역사에의 참여, 해방의 과정에의 연루와 개입이 있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관련된 교회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들과 비천한 자들에게 선포되어지며, 이러한 의미의 교회는 그 중심에 디아코니아, 즉 섬김이라는 요소를 중심에 두고, 서로서로를 위하는 공동체와 복음을 발전시킨다.

13. 제 13 장 평화의 신학

더불어 잘 사는 것과 희망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샬롬에 속해 있다. 평화의 기초는 정의이다. 그러나 수많은 기독교의 역사는 이 평화의 의미를 퇴색케 했으며 심지어 서슴치 않고 이 평화를 파괴하는 일들을 저질러 왔다. 로마의 평화라는 말이 그렇고 맹목적 반공주의 등이 그러하다. 아울러 이런 파괴는 군사력의 신학, 군비의 신학에 봉사하기도 한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은 화해, 평화, 정의와 비폭력과 같은 개념들을 수용함에 있어서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함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4. 제 14 장 유신론의 종말

저자는 유신론의 종말 혹은 유신론적 신의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삶의 실천과 연결시켜서 말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며,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고 죽음을 지향하는 오늘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언하고자 한다.

정통신학은 근본주의 적인 성서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고집하고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이전의 이해의 기준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비억압적인 하나님이 나타나며, 이 신학은 정통주의의 객관적 진리 대신에 주관성을 제시한다. 이런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진리에 대한 주장 사이에 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양쪽을 모두 다 경험이라고 하는 시험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험은 여성신학에 있어서 기본 개념이며, 경험과 관계된 해방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에 던지는 비판을 던지는데 그것은 자유주의 경험은 백인 서구 남성들, 승리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인 권위주의적 종교가 생각하듯이, 하나님의; 힘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서 행사하는 권력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해방 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

15. 제 15 장 우리의 하나님은 누구인가?

마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하나님과의 상호성과 표현 불가능한 의미의 확인, 의미의 현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이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그 관계를 나와 그것의 관계로 물화 시키는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참된 관계성을 찾기 위해서 여성신학은 비가부장제적인 언어를 고집함으로 실재론적으로 관계성의 결핍을 극복하고 유신론과 무신론을 넘어서 하나님을 사고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를 통한, 곧 초월성과 내재성의 균형을 유지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이 정의의 혁명적인 힘에 대한 확실성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신학의 패러다임
국내도서
저자 : 도로테 죌레 / 서광선역
출판 : 한국신학연구소 199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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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결론

본서는 기본적인 조직신학의 문제들에 대해서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여성해방신학의 입장에서 문제를 정리하며 현재 우리 신학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저자는 심오한 신학적 세계와 도전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과 이해를 가지고 현대의 기독교가 갖고 있는 맹점과 부패된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본서는 1장에서 저자가 명시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천적 사고라는 대 전제를 놓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제기된 조직 신학이 문제들 즉, 성서론, 창조론, 은총, 죄, 기독론, 계시론, 신론등은 한순간도 현실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것은 서론에서 제기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개인적인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인 이해와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가난한자의 시각으로 성서를 보며, 죄의 객관성을 깨닫고, 우리의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평화와 하나님의 현실적 나라를 위해 정의롭게 행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가운데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이 서론에서 두 번째로 문제 제기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자연스럽고 단호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본서는 본인의 마음속에 신학적으로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해방신학의 잔뿌리들이 얽혀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적, 공동체적 삶에 대한 큰 도전을 주었다. 또한 신앙 인으로서 실천적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반성하게 해 주었다.

반면에 포용적이고 나름대로 개방적으로 신학을 이해하려 했던 나에게 여성해방신학은 구체적이고 표면화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의미에서 도전을 주지만 성서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지만 동시에 성서는 하나님을 왜곡시킨다는 말 등의 죌레의 주장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쓰여진 성경의 특수성적인 측면에서는 이해하지만 더 큰 각성을 위해서 여성을 지나치게 학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본서는 본인에게 신학적, 신앙적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신앙 인으로서 겸손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해준 좋은 양서였다. 글을 맺으며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죌레와 같이 하나님을 영혼 깊이 사랑하며 삶 속 깊이 불러들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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