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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사상사 -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국내도서>종교/역학
저자 : 유스토L.곤잘레스 / 김종희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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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상이란 책은 신학자들 자신이 신학을 주장하는 것과도 같다. 이 책의 중요한 점은 신학자들의 (터툴리안, 오리겐, 이레니우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찬 신학 지식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난 머릿말에서 나오는 저자의 말에 동의 한다. 우리는 성서를 새롭게 보며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거의 교부들은 그것을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신학)을 널리 주장했으며 또한 그것은 학파로 만들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계속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 우리는 역사책을 통하여 신학자들끼리 논쟁하는 모습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설래 인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 즉 신학, 또는 기독교 철학과 자기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는 학자인 것이다.

우선 인물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들은 유형 A. B. C 라고 한다.

유형 A는 터툴리안이다. 그는 ·법률관 이었던거 같다. 그의 주장을 살려보면 전부다 법률 재판관 같다. 그는 『이단자들의 법규』라는 책도 저술하였다. 이렇듯 그는 확실히 법률적으로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이다.

유형 B는 오리겐 이다. 그는 진리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는 확실히 훌륭한 교사가 될 사람이었다.

유형 C는 이레니우스다. 그는 실제로 교회 목회자 였다. 그가 주장한 것은 역사다.

우리는 원죄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다룰 것이 원죄이다. 마르시온은 이 세계가 여호와의 창조라고 믿었고 그 질료가 저 열등한 신의 힘에 종속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예수는 인간 탄생의 자연적 방신을 통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를 여호와의 주권하에 두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시온은 디베료의 통치 시대에서 예수는 성인으로서 세상에 나타났으며 그의 육은 우리의 육신과 다르다고 선언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창조자시다. 이 우주만물의 주관자이며 온땅의 주인이시다. 마르시온은 정확하게 보았다. 또한 그는 그의 학자만이 할 수 있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지만 부분적인 그의 주장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예수의 성인으로서 세상에 나타났으며 그의 육은 우리의 육신과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이 아픔을 느끼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셔 부활하신 사건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그것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않는가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보리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신분이며 인간의 아픔과, 배고픔을 격은 분이시다. 그러기에 사단이 시험하지 않았는가? 물론 승리하셨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의 긴 주장을 뒷 바침 해주는 재판관이 터툴리안이다.

유형A 터툴이안- 그는 이단에 반대하는 몇몇 저작을 집필했으나 그의 가장 광범의한 저술은 마르시온을 반대하는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론과 창조론의 많은 부분이 마르시론의 가르침들을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법률제정가요 재판관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그를 통해 예기하는 것 같다. 터툴리안은 주장했다.

“원죄는 유산이다.”

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산부인과 게시판에 적어나야 한다. 그렇다. 유산은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비디오로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 생명은 살기위해 바둥거렸다. 아주 끔찍한 장면 이었다. 지금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었다. 이렇듯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에게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칼 같은 재판관인 그가 보기에도 그것은 사형감이 아닌가.

유형 B. 오리겐- 그도 터툴리안과 마찬가지로 이교 다신론과 영지주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딱딱한 법률관 터툴리안과는 다르게 하나님 창조 및 원죄를 이해한다.

오리겐을 하나님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자(一者)로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만화책을 보면은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것도 앞지르신 분이라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 왔다.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껜 많은 형용사를 즉, 고귀한 형용사를 쏟아 부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오리겐은 창조교리에 흥미를 느낀 사람이다. 창조론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남겨주는 학문이다.

성서는 두 가지 학문을 하나님은 창조 전체가 영적으로 되도록 의도하셨고 오직 영만을 만드셨다. 첫 번째 창조..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몸이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예지자들을 창조하셨는 이들의 목적은 일자와 함께 명상과 교통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죄가 없었으니, 이것은 곧 창조의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죄가 들어왔다. 몇몇 영들이 한분에 대한 명상에서 이탈하였던 바 그 결과는 타락이었다. 두 번째는 설화이다. 여기서 원 창조 때의 영들은 몸을 받았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설화에서 하나님이 남자를 처음창조하시고 그 후 여자를 만드셨다고 했으나 것. 이 두 창조의 관념이 교회 내에서 호응을 받지 못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그것은 영혼의 선재를 내표하고 있었는데, 이는 기독교인 들이 거부했던 이교 교리였다.

오리겐은 성서학자로 상당히 과감한 면이 있는 자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안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교 교리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주장은 이교 주장이 아니라 오직 정의라고 믿었을 것이다. 유형C로 넘어가기 전에 오리겐의 주장과 나의 주장을 비교해 보겠다.

이름처럼 부드러운 면이 있다. 터툴리안은 칼같은 면이 있지만 오리겐은 사람은 이해해주는(원죄를 이해) 자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들의 좋지 않은 눈길을 끌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흙으로 생기를 불어넣어 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하셨지만 오리겐은 이것은 “단순이 몸이 없다” 고 과감히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명상을 주장했다. 물론 다른 종교 분위기가 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하나님과 대화 할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는 몇몇 영들이한분 (一者)에 대한 명상에서 이탈, 그리고 그 결과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과는 벗어나는 것이다.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오리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기독교사상으로 기울여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난 나만의 사상으로 나만의 신학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이것은 이단 사상이라고 결론 진다.

다음은 유형 C이다. -이레니우스 이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믿는다. 이것은 오리겐의 사상과 동일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 기독교 사상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레니우스의 주되 관심은 신인 동형론적 언어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예배를 및 경건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묘사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인에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이시며 이 마지막 날에 그들을 자녀로 삼으셨다. 이레니우스의 삼위일체 교리는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그것은 터툴리안의 정식은 “ 한 본체(실체)와 세 위격”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정신은, 비록 그 덧붙여진 “ 창조자” 라는 다소 다를 의미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죄”라는 과제이다. 터툴리안은 원죄를 강조했으며 오리겐은 명상을 통해서 그것을 무의미화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돌린 것이다. 이제 과제는 유형C인 것이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 이다. 인류는 뱀에게, 즉 사단에게 속은 것이다. 지금도 시험당했으며, 앞으로도 계속당할 것이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땐 사단에겐 시험 당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죄의 결과는 인류가 사단에게 종속되었다는 불행한 사실이다. 사건이다. 하나님께 불순종, 이 사건이 사단에게 끌려다니는 노예가 된 것이다. 창세기에서 첫장을 장식하는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전체이다. 이레니우스는 주장한다. 그들은“ 머리” 이다. 그들 속에서 우리는 사단에거 종속되었다. 원죄는 그러므로 단순히 우리의 선조에게서 받은 유산 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개인적 행위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인류가 악에로 돌이킬 때 맺게되는 유대성의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범죄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주의적 견지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는 반면에 이레니우스는 모든 인류가 단일한 몸과 같으며 그 머리는 아담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머리인 아담이 범죄했을때 우리는 , 몸 전체- 즉 우리- 가 그와 함께 범죄했다. 현대적으로 예를 들어 보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그 땅에 이민했기 때문에 미국인이 되는 경우와 같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들의 선조와 함께 왔으니 그 조상들의 이민이 그들의 시민권을 결정했으며 어느 정도까지는 그들이 그 아래 살게 될 법적 , 정치적 제도도 결정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원래 오직 하나의 이민 부부가 있었다며, 우리는 모든 나머지가 그들 솟에서 이 땅에 왔다고 할 할 수 있겠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으며, 나 또한 그의 부드러운 주장과 동의 한다.

 

비평

이렇게 세 명의 학자들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특히 두 명의 학자들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이다.

터툴리안은 어렸을때 읽었던 구약의 하나님을 다시 한번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저자는 이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터툴리안이라는 인물은 성격이 강직한 사람이었던거 같다. 그는 모든 관심이 법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는 도덕적인 사회와 도덕적인 많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창조라는 과제를 살려볼때 그는 완성이라는 글을 적었다. 역시 터툴리안이름에 걸 맞는 주장이다. 나는 이렇게 딱딱한 터툴리안의 학문에 매료됨을 느꼈다.

특히 “원죄는 유산(遺産)이라”는 그의 현대적 주장은 지금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이 사회에 던진다면 아무도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이레니우스도 어느 정도 동의 하지 않았는가?

다음은 오리겐이다.

어려운 신학자다. 이단 아닌 신학자 같다. 하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 주장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평화적이라고 할까? 유산을 반대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준다. 동물로 표현하자면 박쥐와도 같다. 그는 명상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지 않는가. 분위기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분위기로 A, B, C 여기선 나에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하나님은 말 할 수 없는 초월자인 것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멋진 표현을 하니 그를 칭찬 할 수밖에 없다. 그렀게 생각하니 그는 많은 것을 가르쳐준 박쥐학자이다.

유형C의 이레니우다. 그의 지역은 소아시아와 시리아다. 주요관심은 목회였으며 역사를 범주했다. 선구자로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데오빌로가 있다. 그는 하나님을 목자, 아버지라고 성경에서 부르듯이 예기한다. 그의 창조는 시작을 의미한다. 죄! 이것은 앞지를 불순종인 것이다. 원죄라는 것은 하나가 모두에 대해 범죄함이라 주장한다. 이것은 터툴리안과 오리겐의 주장을 합친것과 비슷하다. 그의 그리스도의 주요사업을 살펴보자. 승리 해방 미래를 엶.

그는 최종적 완성은 자유와 성장의 나라라고 했다.

그는 목회자답게 언제나 따뜻하게 예기한다. 도형으로 따지면 터툴리안은 정 사각형이고 이레니우스는 원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레니우스는 나하고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부분은 주요관심 분야가 목회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터툴리안처럼 법도 상세히 알아야 하지만 나와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목회부분이고 또한 하나님은 목자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레니우스는 성경에서 그FOT듯이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터툴리안은 재판과, 오리겐은 초월자라는 권위있는 자라는 것을 나에게 확실히 알려 주지만 그는 다시 한번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알려주는 것이다.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기독교 사상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레니우스라는 인물과 터툴리안이라는 인물은 이번에 사상사 책을 통하여 그들의 학문을 조금 맛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였으며 하나님을 연구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중점으로로 사는 사람이었다. 물론 오리겐도 마찬가지다. 부분적인 신학이 나와 맞진 않았지만 그의 하나님의 초월성주장함을 인정하는 부분은 나도 그를 인정한다. 그것은 나도 마음속에 항상 깊이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독교인들이 싫어하는 부분들이 나와 일치하는 일이 있어서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그도 굉장한 학자다.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말이다. 어쨋튼 여기에 나오는 학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학문을 연구했으며 그 학문은 지금도 영향을 미쳤으니 앞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신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과제이며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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