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뗀 아이 같이 (시131:1-2)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이유가 많겠으나 오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높은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여 눈을 높이지도 아니하였고 아래에 있는 자들을 경멸하지도 않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이 늘 하나님 품에 있으면서 그분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1.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이 시는 다윗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며 불렀던 시가 아니라 최고 통치자인 왕으로 있을 때 읊었던 시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며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자신의 겸손을 고백한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원문의 뜻은 [누르다][낮추다][괴롭히다]라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누르고 낮추고 괴롭히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는 자신을 의인이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성령의 빛에 비추고 나서 자기를 바로 보게 되었는데 자기를 지극히 작은 자로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큰 사도로 쓰셨습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또한 바울은 자기를 큰 죄인으로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아는 만큼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고 그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딤전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눅7:37-50절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하였을 때 그 동네에 죄 많은 여자가 향유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죄인을 몰라본다고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그에게 하신말씀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2)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➀ 눈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있는 것이 눈에 나타나게 됩니다.

(벧후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잠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28: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➁ 눈이 보는 대로 마음이 정해집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 우월을 감사하나 우리의 기준은 예수님이 되어야합니다.

(눅18:9-12)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우리 눈을 높은데 두면 처녀 총각 결혼하기 힘들고, 가난한사람 높은데 눈을 두면 인생이 피곤하니 나보다 못하고 어려운사람, 낮은데 눈을 두어야합니다. 그래야 살맛이 납니다.

(잠30:13)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잠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2. 과욕을 버려야합니다. (1절)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 대통령이 될 만한 그릇이 대통령 해야지 그렇지 못한 자가 대통령되면 자기와 백성에게 재앙이 됩니다. 우리는 그릇대로, 은사 따라, 재능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일해야 합니다. 그것에서 지나면 화가됩니다. 민16장은 레위자손인 고라와 그 무리가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제사장의 직분을 넘보다가 땅이 갈라져 매장했으며, 사울왕도 (삼상13:8-)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려도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고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그가 제사를 자기가 드리고 버림바 되었습니다.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2) 지나친 과욕은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일과 미치지 못하는 기이한 일이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업도 남이 크게 하니까 따라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맞게 사업을 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에 과욕을 부리면 결국 그 돈 때문에 인생을 그르치게 됩니다. 사람이 일을 해야 하나 일도 지나치면 몸을 망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3)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되어야합니다.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3.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2절)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 젖 뗀 아이

대부분 어린아이는 어머니 젖을 오래도록 먹으려 하므로 젖 떼는 과정이 전쟁과 같습니다. 아이는 계속 울며 조르고, 때로는 자지도 아니하며 괴롭게 합니다. 그런데 왜 전쟁하듯이 그것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젖을 떼어야하는가? 어린 아이에게 젖은 절대적이나 장성한 사람에게는 젖은 합당치 아니합니다. 어느 분은 왜 신앙이 자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유는 젖을 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2) 젖 뗀 아이의 고요하고 평온한 만족한 심령

젖을 주지 아니할 때는 그러게도 원망스럽지만 일단 젖을 떼고 다른 음식에 맛을 드리면 나중에는 젖을 먹으라고 대어주어도 웃고 쑥스러워하며 밀어냅니다. 우리의 신앙도 세상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술 담배 끊는 것이 아이의 젖떼기만큼 어려울지 몰라도, 끊어야 하는 것은 장가가서도 어머니 젖 달라고 어머니 뒤만 따라 다닌다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어느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들 술 담배 먹지 않고 무슨 제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으며 만족하고, 새 술 성령의 술에 취하여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아이가 젖을 떼면 어머니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어머니 품에 있으려 합니다. TV 에 군부대 위문 가서 군대에 간 아들 찾아간 어머니 나타나면 어머니 부르고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커서도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두가 같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 젖을 혼자 독차지하려는 이기적이나 젖 뗀 후에는 나누어 먹을 줄도 알고 섬길 줄도 알고 고마워 할 줄도 사랑할 줄도 아는 자가 됩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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