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지름길 출13:17-18

 

본문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 후에 라고 말합으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출애굽 사건은 바로의 큰 권세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10가지 재앙으로 바로는 자의가 아닌 하나님의 힘에 굴복하여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을 그 능하신 하나님이 가까운 길을 버리고 힘들고 먼 길로 인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본문을 통하여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지름길의 복된 길을 갈수 있는 가를 배워야하겠습니다. 블레셋 길

1.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합니다. (출13:17)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전쟁의 시작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애굽왕 바로 밑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종살이지만 이제는 바로인 마귀가 하라는 대로가 아니라 거스려 싸워야하고, 전에는 죄와 친구가 되어 죄가 끄는 대로 행하였습니다. (엡2: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우리가 이제는 죄와 싸워야합니다.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2) 두려워 떠는 자는 합당치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에게 (민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오히려 돌로 쳐 죽이려하고 10명의 정탐꾼의 불신자들의 말만을 따르는 그 백성에게 하나님은 40일 정탐한 날수대로 하루를 일년으로 하여 40년 동안 광야에 헤매이다가 결국은 광야에서 죽게 했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에서 나오며 불신은 멸망을 가져옵니다.

미디안과 기드온의 300명 용사의 싸움에서 미디안 군대는 삿7:12절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았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니 3만2천명 다해도 안 되는 싸움인데 두려워서 떠는 자는 필요 없다 보내라고 하나님은(삿7:3)에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는 믿음의 사람 300명으로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3) 예수의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합니다. 모세를 통하여 비록 애굽 바로의 손에서 해방된 사람들이였지만 그들은 군대라기보다는 옛 모습 그대로 노예의 근성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보았지만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불신자요, 애굽의 힘든 종살이는 잘 견딘 그들이 이제는 조그만 일에도 불신과 원망과 불평을 일삼고, 애굽왕 바로의 밑에서는 복종을 잘하더니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말에는 따르기 보다는 대적하기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도 40년 동안 광야에 헤매이다가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가 인도한 그 후대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명을 따라 움직여지는 훈련된 군대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나 여리고를 함락 하는 일 가나안 땅에 사는 여러 족속 (신7:1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들과 싸워서 이기는 군대였습니다.

 

2.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13:17)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먼저는 애굽을 떠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다 하면서 양다리 걸치는 신앙이 있습니다. 교회 오면 신자요 밖에 가면 세상 사람이고 박쥐같은 사람은 어느 편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신분이 분명해야합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자며,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블레셋 길로 가는 길이 가나안에 가장 빨리 들어가는 길이나, 그 길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가장 염려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멀리 돌아가는 광야 길일지라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를 건너게 하여 애굽과 경계를 하고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출16:3)“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12정탐꾼의 사건 때(민14: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신앙생활이 싫어지고, 믿음이 떨어지면 믿음 생활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갈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고 실족하여 예수를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을 가야하는 것은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바로밑에서의 종살이는 아무리 좋은 것 같아도 마지막은 멸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6:67-68)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3) 우리가 예수를 믿었으면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3.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출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광야가 아니고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1) 군인으로 훈련시키려고, 광야는 훈련장입니다. 광야길이 편한 길이고 쉬운 길이라 그길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길은 홍해를 건너야합니다. 그들에게는 건널 수 있는 배도 없습니다. 광야는 그들이 먹을 식량과 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을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➀ 믿음의 훈련입니다. 그들은 우선 당장 먹을 식량과 물이 없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해야하는 기도훈련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하는 믿음의 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보다는 원망불평이었습니다. (출16:8)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그들은 믿음보다는 항상 불신이었습니다. (민14:22-23)“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➁ 하나님의 법(율법)이 주어지고 지키나 아니 지키나 보는 시험장입니다. (신8: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➂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21-22절) 광야 길은 안내자가 꼭 필요한곳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민9:22-23)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2) 복 받기에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곳입니다.

➀ 광야는 낮추어 겸손하게 합니다. 광야가 여러분에게 닥치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유다왕 므낫세가 악정을 하므로 하나님이 앗수르왕에 붙여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에 그때야 하나님 앞에 겸손한자가 되었습니다. (대하33:12-13)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한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➁ 광야는 시험이 있는 곳으로 시험에 승리자에게 복을 주려하심입니다.

예수님도 (막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에서 시험하는 것은 결국은 (신8:16)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십니다. 아브라함도 모리아 산의 독자 이삭을 바치는 광야시험은 (창22:16-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3) 그러므로 축복의 지름길을 가려면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또한 주님을 의지하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적들과 담대히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며 따르려는 사람이 될 때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자기 생각과 경험 고집대로 가려하기 때문에 광야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적인 광야에 머물고 있는데 그것은 (사1:5-6)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울처럼 (고전9:26-27)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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