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찬과 성찬의 차이점: 교회 공동체와 성찬 예배의 역할 이해
애찬과 성찬은 교회 공동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 목적과 역할이 다릅니다. 애찬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강조하며,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과 새 언약을 기념합니다. 두 의식의 차이점을 알아봅니다.
애찬이 성찬을 대신할 수 있나?
교회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주님의 부탁대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를 통하여 먼저 공동체 의식을 확인함으로써 사랑의 실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식사를 아가페 식사라 이름하고 이 식사를 통하여 한 교회 식구로서 교제하였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이러한 애찬과 은사의 나눔 등이 예배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안수를 받지 않은 지도자들에 의해 애찬식이라는 것이 한때 크게 유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애찬의 향수를 느끼며 여름 수련회와 같은 곳에서는 그것이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이 예배하는 공동체에서 왜 지속될 수 없는지에 대하여 많은 의문이 제기됩니다. 애찬의 현장을 살펴볼 때 그것은 성만찬 성례전과 비슷한 형태를 밟으면서 제정의 말씀도, 성령 임재 기도도 다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애찬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약식 성만찬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가 참여자들에게 결코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 형제자매 되는 그리스도의 식구로서 확인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습니다.
원래 초대교회는 애찬 또는 아가페 식사라고 하여 주일 저녁에 정규적으로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식사는 단순한 식사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가운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데까지 연장된, 예배하는 공동체의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2세기 중반부터 교회는 이 애찬과 은사의 나눔 때문에 기독교 예배에서 많은 긍정적인 요소보다도 부정적인 요소를 더 많이 일으키게 됨으로써 2세기 후반에 이르러 은사의 나눔과 애찬을 교회에서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한국교회에서 청소년들의 지도를 위해 애찬이 필요하다는 전도사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사실 그 부작용은 적지 않습니다. 먼저는 거룩한 성만찬과의 혼돈을 가져옵니다. 그 결과 안수받은 목사가 집례하면 성만찬 성례전이고 안수받지 않은 지도자가 진행하면 애찬이 되는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둘째는 성만찬 성례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이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그 새 언약에 대한 확인의 장이지만, 애찬은 단순히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다짐하는 식사입니다. 그러나 성만찬은 제정의 말씀까지 봉독하면서 이어지는 그 현장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의식의 다짐은 단순한 감사의 기도와 우의를 다지는 찬송과 함께 이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한국 장로교의 큰 줄기를 이어 온 통합측 교단은 애찬식의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부정적인 현상들을 보면서 연구 검토한 뒤, 애찬식이라는 이름으로 일체의 유사한 성만찬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결의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가 예배에 관하여 가지고 있었던 지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엿보게 됩니다. 예배란 예배자들의 마음과 뜻과 정성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집중해야 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역시 예배란 인간의 교제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교제를 위해 애찬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제는 교제 나름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성찬과 비슷한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닌, 또한 예배와는 별개의 것으로 예배와 상관없이 애찬이 아닌 교제를 만듦으로써 논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조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찬은 교제의 성격을 띤 애찬과는 엄연히 다른 신성시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배와 교제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찬은 예배 시에 행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애찬은 예배 이후의 시간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찬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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