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9-14 절은 엘리야의 상황과 그로 인한 넘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넘어진 이유를 파악하여 중요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넘어지는 이유 (열왕기상 19:9-14)

 

(왕상19:9-10)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자청한 엘리야를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떡과 물을 먹여 힘을 얻게 하여 하나님일 하라고 은혜 베푸니까, 겨우 하는 일이 사십 주야를 죽을 힘 다해 사막을 지나 호렙산에 이르러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습니다. 호렙산 굴속에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죄악 세상에 빛과 등대 되어 불을 비춰야하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것은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엘리야를 이처럼 넘어지게 하였는가?

넘어지는 이유 (열왕기상 19:9-14)
넘어지는 이유 (열왕기상 19:9-14) 말씀 구절

 

1. 기대에 어긋날 때 넘어집니다.

(왕상19:1-2)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 기대와 반대로 나타남으로 넘어집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의 승리는 통쾌한 승리요, 이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리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반대로 자기를 죽이겠다하니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일이 우리의 기대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여러모로 체험하지만 그것이 모두를 예수 믿게 하는 것이 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합니다. 나는 병자들을 기도해 주면서 때로는 죽을 병에서 하나님의 치료를 받으면, 그때는 감격하며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다짐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죽을 병에서 살아나서 석달동안 예수 잘 믿으면 잘 믿는 것이라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머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 두려워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고 애굽 군대는 수장(水葬) 하셨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였습니다. 그리고 수르 광야로 행하여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고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3일도 신앙 지키지 못하고 원망의 본색이 들어 났습니다.

(15:22-25)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

 

2). 자기 한 일에 대한 잘못판단

(왕상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헛수고했다고 느껴질 때 넘어집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한 것 때문에 좌절한 것입니다. 그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 일을 특별히 열심히 했는데 여기에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고 "헛수고 했다." 고 느껴지므로 넘어졌습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결과에 대하여 너무나 집착하지 말고 결과는 주님께 맡겨야합니다. 내가 판단하고 결과에 대하여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바로 눈앞의 일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최선을 다할 것뿐입니다.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혼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할 때 넘어집니다. 우리는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무엇인가 하나님께 했다고 생각될 때 교만해 넘어집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지 아니한 것은

(3:12-15)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성도는 자기가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했다는 지나친 자만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무익한 종"의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17:7-10)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성공 뒤에 오는 허무함이 넘어지게 합니다. 성공 뒤에 찾아오는 허무감과 좌절감을 조심하고 고독감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끝없는 도전을 해야 하며 일을 만들어 해야 합니다.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3) 남을 바라보므로 넘어집니다.

(왕상19:10)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주의 언약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살랐고 바알 선지자를 죽이므로 백성이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안았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바라보므로 실족합니다. 좋은 신앙은 본받지 아니하고 잘못된 신앙은 본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으로 실족하지 말아야합니다.

(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

 

"주의 단을 헐었"다 하였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저들로 인하여 제단인 교회를 헐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같이 보여 집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교회를 헐도록 하나님은 잠잠하시는가? 범죄 할 때는 교회도 성도도 용서치 않으시고 무너뜨립니다.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 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선지자들을 지키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신가 라고 의문을 가집니다.

그러나 많은 순교자의 피가 복음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침례요한이 감옥에서 자기를 구원치 않은 것에 회의가 생겨 예수님께 묻는 말씀입니다.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하라' 하매 "

 

2. 오직 나만 남았거늘 (10)

 

1) 나만 의롭고 나만 진실하고 나만이 잘 믿는다고 생각할 때 불만과 불평이 생기며 교만해집니다.

다른 사람은 다 잘못 살고 자기 혼자만 잘 믿는다고 생각할 때 넘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엘리야에게 너만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칠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10: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

 

2) 오직 자기혼자라고 느낄 때 넘어집니다. 자기혼자라고 느낄 때 고독하게 되며 약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버리고 떠날 것을 말씀하시며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43:1-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

 

3)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지금까지 아합왕이 엘리야의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였지만 그때는 엘리야가 이런 말을 하지 아니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바깥뜰에 앉았다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맙니다. 그가 성령 받고 믿음이 있을 때는 관원과 장로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할 때

(4:19-20)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

 

3. 하나님을 잘못된 곳에서 찾으므로 낙심합니다.

 

1) 하나님의 산 호렙에 왔습니다.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계명을 받은 곳이요, 호렙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백성이 마시게 한곳입니다. 낙심한 엘리야가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니 호렙산 하나님의 산에나 가야 만날까하여 왔습니다.

지난날 환난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특정한 장소에 가야하는 줄 알고 40 주야를 행하여 호렙에 왔습니다. 헛고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각산에 가야 만나는 것 아닙니다. 용문산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왕상19: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 만나려고 하나님의 산에 찾아온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원하시는 장소는 특별한 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과 일상 생활에서 함께 하십니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5: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

 

2)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나 만날 수 없습니다.

(왕상19: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은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려고 하니 실망합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바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바람은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몸으로 체험됩니다.

또 나무의 나부끼는 것을 통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바람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면 사라지는 느낌에서 하나님을 찾으니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때는 나의 하나님 하다가 지나가고 감각이 없을 때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합니다.

 

성령이 임할 때 온몸이 진동하고 뜀박질을 하도록 요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슨 큰 능력을 받은 줄로 착각합니다. 다만 성령님이 임할 때 일어나는 하나의 징조는 되나, 그것이 성령충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바람은 어디든 있습니다. 바람은 바다든 산이든 들이든 어디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며 멀리계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139:7-10)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바람은 임의로 불며 사람이 거스릴 수 없습니다. 바람은 우리에게 시원하게도 하나 때로는 사나운 광풍이 되어 나무를 뽑아 버리고 집을 무너뜨리며 농작물의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만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3) 지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바람이 지나간 후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지진 속에 하나님이 계신가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기적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마술사들이 마술을 행하듯이 행하여 보여 주시고 믿어라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11:40]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믿을 때 죽을병에서 치료되고, 믿을 때 기적적인 역사로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4) 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왕상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 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사람들은 불을 좋아합니다. 또 강단에서 불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불을 받아야 성령 받은 줄로 생각합니다. 또 큰 불덩이를 받아야 능력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성령 받으면 뜨거워야합니다. 마음도 뜨겁고, 기도와 전도도 뜨겁게 해야합니다.

그러나 육체적 감각의 뜨거움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영육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나 뜨거운 것이 없으면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이냐 아닙니다.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하고 "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

 

불은 능력이 있습니다. 불은 기계를 움직이며 자동차 비행기를 가도록 합니다. 폭약은 바위를 부숩니다.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하나님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작은 일일뿐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한다 해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행하고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불은 일상생활에 필요하며 태우고 녹이는 일을 합니다.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녹아 부드럽게 됩니다. 쇠도, 돌도, 어떤 것도 다 녹아 버립니다. 태우는 것은 심판의 특성이며, 녹이는 일은 연단으로 말미암아 부드러운 심령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 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 하시느니라 "

 

5) 엘리야는 "세미한 소리" 를 들었는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셨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를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는 주님은 계시지 아니하십니다.

산이 갈라지고 바위가 부서지는 강한 폭풍이 불고, 다음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환란의 바람이 불고 고난의 불이 오는 것은 겸손하라고 또한 하나님 앞에 합당한자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왕상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절과 14절의 대답이 같으나 10절 말할 때의 엘리야의 마음과 태도와, 14절의 말을 할 때의 마음과 태도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말로 하나님께 기도할지라도 말과 태도에 따라서 듣지 않을 기도와 들으시는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왕상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면 마음의 귀를 기울여야 듣습니다.

똑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도 어떤 사람은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지만 바로 곁에 있다 해도 세미한 음성이기 때문에 듣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둥소리가 아니라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말씀하십니다.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시므로 보는 것에서 하나님을 만나려 하거나 세상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실족합니다. 영원히 있고 살아있는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벧전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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