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낙심은 죽음을 부릅니다 (열왕기상 19:1-5)
엘리야는 승리와 좌절, 형편과 무능력을 경험하면서 낙심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며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의 낙심과 좌절은 여러 이유에 대해 알아봅시다.
낙심은 죽음을 부릅니다 (열왕기상 19:1-5)
(왕상19:1-5)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기손 시내에서 죽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냈고, 기도하여 3년6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승리의 기쁨도 한 순간이요 그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유다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좌절을 봅니다.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인 엘리야 에게도 심히 좌절에 빠져 죽기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은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알게됩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서 5장 17절에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온전한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보잘것없는 그릇입니다. 이 약한 질그릇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을 때는 강한자로 나타나게 됩니다.
바울은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엘리야가 왜 낙심하게 되었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자기의 형편을 보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3절)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1) 여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2절) 이세벨이 보낸 사자의 말 듣고 낙심했습니다. 아합왕이 온 나라를 동원하고 죽인다 하여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던 그가 여인의 소리에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드는 것은 지극히 작은 소리에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이 마음에 파고들면 상처를 가져오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우리 귀는 할례를 받아 세상소리에는 닫아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만 들어야합니다. 우리는 들어서 유익이 없는 말은 아예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서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
(왕상19: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
2) 형편 바라보면 낙심합니다.
(3절) “저가 이형편을 보고 일어나“ 제자들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며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물에 빠졌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에서 모아 950대 1로 대결할 때, 자기 형편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왕상 18:27) 우리는 너무나 환경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형편의 지배를 받아 형편이 나으면 웃고, 그러지 못하면 낙심합니다.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편을 초월하는 믿음 가지기를 바랍니다.
(왕상18: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
(마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
3)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합니다. (4절) "나는 내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이루면 자신이 남보다 우월해서 된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엘리야가 아합왕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이요 엘리야가 열조보다 나아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틀리는 것은 믿음이 다를 뿐입니다.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2. 스스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4절)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1)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가야합니다.
엘리야가 전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가라” 하실 때 가고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하시면 그리하고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낙심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하였습니다.
(왕상17: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왕상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스스로 행하였습니다.
(4절) “스스로”는, 내 뜻, 내 생각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악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심히 타락한 시대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시대입니다.
사울을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고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아야합니다.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3)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4절)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요 거기에는 뱀과 전갈이 있고 사나운 들짐승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시험에 들면(낙심) 사람을 피하고 권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뱀과 전갈에 물리는 사단의 시험에 들게 됩니다. 사람을 싫어하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귀신들림의 미치는 병이 잘 들게 되는 것입니다.
(렘2: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
㉡ 광야에는 할 일이 없는 곳입니다.
할 일이 없으니 먹을 것도 없습니다. 사명자가 할 일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막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크고 작고를 떠나서 할 일을 찾아 일하기를 바랍니다.
장수의 비결을 조사했더니, 첫째는 부하게 사는 사람보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늙어도 무엇인가 일하면서 사는 사람,
둘째는 평안하게 사는 사람보다 무엇인가 자극을 받으며 사는 사람 (자극이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되고 적당한 자극),
세 번째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거나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적당하게 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일을 떠나면 편하고 좋을 것 같으나, 세상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제일 불행한 것입니다.
(민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
㉢ 물이 없고 길이 없는 곳입니다.
물이 없으니 얼마나 목말라 고통이 되겠습니까? 성도가 광야에 들어가면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인데 성령의 물이 없으니 기갈이요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는 곳입니다. 영적인 광야를 만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 광야는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안 좋은 일만 있는 곳입니다.
좋은 일은 없고, 불행만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성도가 믿음이 없어지고 시험에 들면, 광야에 자기스스로 들어갑니다.
(렘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
3. 죽기를 구했습니다.
(4절) “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1) 마음이 죽은 자 되었습니다.
아합왕 앞에서도 담대하게 외치던 패기와 용기는 없고 갈멜산에서의 승리감은 간데 없고, 낙심과 좌절에 빠져있는 엘리야입니다.
승리후 불과 하루만에 도망 길에 오른 보잘것없는 패잔병 같은 모습은 악한 왕비 이세벨이 바알 선지자의 죽음과 같이 너를 죽이리라는 협박에 낙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골리앗 앞에도 담대히 나아가나, 믿음이 없으면 작은 사람의 소리에도 도망을 가게 됩니다.
죽기를 구하면서도 죽지 아니 하려고 도망을 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망하여 브엘세바에 까지 갔습니다.
(왕상19: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
2)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4절)
엘리야는 하나님께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많지 아니합니까? 이만치 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합니까?
하면서 일한 것에 대한 불만이요, 모든 일을 끝내고 더하지 안겠다는 것입니다. 일할 의욕을 다 잃어버린 할 일없는 사람, 쓸모 없는 인생, 이제는 죽을 일만 남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죽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일을 생각하고 일을 찾아 만들어서 해야합니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 하거나, 자기가 하던 일을 누구엔가 맡기고 일에서 물러나면, 먼저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다음은 의욕을 잃어버리며, 다음은 인생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므로 쉽게 죽는 것입니다.
(빌3:14-16)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3)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합니다
(4절) 엘리야가 자신의 무능력을 절실히 느끼고 낙심합니다. 그는 자기의 열조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졌던 영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이세벧을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금까지 세워서 능력을 행하셨는데 그 일을 잊어버리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낫기 때문에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나의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님을 바라보면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4) 낙심은 잠을 자게 합니다.
(5절) 어려 울수록 깨여있는 믿음 됩시다. 낙심의 잠은 더욱 시험에 들게 합니다. 우리는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땅에 가는데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군대가 다시 잡으려 올 때 좌절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나는 절망하고 좌절하여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
5)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5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여 있을 때 찾아와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들이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위로해 주시고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할 때 치료해 주시고 배고파하며, 목말라 할 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주셔서 일으키시려고 오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낙심합니까?
내가 어려운 일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멀리계시고 돕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은 어려운 일 당할 때 제일 가까이 계십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고생할 때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은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를 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풍랑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망할 때에 하나님은 바로 내 앞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14:24-25)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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