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소원 - 서평


Ⅰ. 저자소개: 필립 야곱 스페너(1635 -1705)


스페너는 1635년 1월 13일 독일 라폴트스타인의 알사티안 마을에서 태어났고, 요한 아른트의 진정한 기독교와 함께 그리고 청교도적 경건 서적들과 더불어 성장했다.


16세에 예비학교를 마친 스페너는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 철학, 언어 등의 연구에 전념하였고, 2년 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그는 신학 연수를 계속하면서 역사학 강사로 봉직하였다.


1666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획득한 후에 31세의 나이에 라인 강변에 있는 독립적 제국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교회의 루터파 목사회의 대표직으로 초빙을 받았다.


1675년 봄 스페너는 요한 아른트의 설교집의 재판을 위한 서문으로 자신의 "교회 개혁 프로그램"을 펴냈다. 이 책의 서문에 실린 스페너의 교회 개혁안은 같은 해 제목을 [피아데시데리아 또는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복음적 교회의 개혁을 향한 간절한 요망]으로 하여 별책으로 발간하였다. 


1684년 스페너는 드레스덴의 궁전 담임 목사로 초빙을 받았다.


1690년부터 루터파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사이에 시작된 싸움들 가운데 스페너는 새로 일어나는 경건주의 운동의 탁월한 대변자로 활약하였다.


‘루터파 경건주의’의 설립자로서 충실한 스페너는 1705년 베를린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Ⅱ. 시대적 배경


1. 루터

초기 경건주의자들은 루터와 정통 개혁이 연관성이 있다고 믿었다. 경건주의 문헌들은 종교개혁의 아버지로부터 인용한 인용문들과 청년 루터의 인칭대명사의 용법에 대한 특별한 강조와 신앙이란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역동적인 힘이라고 보는 그의 묘사로 가득 차 있었다. 스페너는 그의 스승인 요한 단하우어로부터 루터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스페너의 다른 스승들은 루터로부터의 이탈을 선언했던 수많은 개혁파를 대표했으며 평신도 참여의 증가와 보다 깊은 성경 지식과 후에 스페너가 그의 저서 경건의 소원에서 명확하게 표현한 관심사를 옹호했다.


2. 칼빈주의

독일 경건주의의 발생은 개혁주의 전통에 특히 청교도적 요소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비록 경건주의가 전적으로 루터교의 영향에서 유래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성실성 성경 주의 및 보다 민주적인 정책 등에 대한 칼빈주의의 강조는 후에 경건주의의 원리가 되었다.


3. 신비주의

신비주의의 흐름은 네덜란드와 독일 경건주의에 관해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자료에 속한다. 일부 역사가에 의하여 이 경향이 지나치게 강조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모든 경건주의에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있다"라는 제베르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스페너는 실재적인 기독교에 대한 자연적인 성향은 갖고 있지 않으나 신비주의 신학과 그 교리가 개인의 경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 언제나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중세의 신비주의 논문 독일 신학에 대한 루터 자신의 장려가 이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경건주의는 13세기의 신비주의 민족 운동이 루터 교회 내에서 갱신된 것을 말한다는 리츨의 주 논제를 따랐다. 이와 같은 중세의 흐름에의 의존은 슈벵크펠트, 오지안더, 및 바이젤등과 같은 종교개혁 좌파의 영험 주의 대표자들의 영향에 의해서 보완되었음이 틀림없다.


독일 베를린독일 베를린의 개선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Ⅲ. 사회적 환경

17세기와 18세기의 기독교는 도덕적, 신앙적 갱신 운동을 경험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기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을 현대적으로 받아들여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의 새로워짐을 추구했다.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은 독일 루터교회 소속의 개혁자 스페너에게서 시작된다. 당시 독일은 3백여 개의 지역으로 분립되어 있었고, 교회 지도자는 국가의 관리가 되는 식으로 결합하여 있었다. 또 신분제도가 분명하여 위로는 귀족계급이 있고, 그 아래 법률가나 성직자, 부자 등이 있었으며 최하층

에 노동자와 농민이 있었다. 그런 계급 차별은 교회 안에서도 분명하여 신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한편 신학 연구는 여전히 라틴어로 향해졌고, 전수 받은 신학의 내용을 정리하는 데 급급했다.

이런 배경에서 새로운 운동이 탄생한 것이다.


Ⅳ. 경건한 소원 요약


제1부 교회의 타락상에 대한 개관

제1부에서는 스페너 시대 교회의 결점을 다룬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에 팽배해 있었던 도덕적 방탕함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 당시에는 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종교적 의무는 대체로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 행해졌다. 성직자들이나 평신도 모두가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글에서 세속 정부의 결점, 성직자들의 결점, 평민들의 결점 그리고 이러한 결점에서 비롯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제2부 교회가 선한 상태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가?

교회의 선한 상태를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유대인들의 회심에서는 교회의 거룩한 생활이 그 수단이 되며, 적어도 회심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회심하려면 교회는 지금보다 더 거룩해져야 한다. 유대인들을 회심시키고 카톨릭의 영적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무슨 일을 행하려 해야 한다. 에라스무스 사르세리우스는 참되고 진정한 종교를 보존하며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길 때, 참되고 진정한 종교가 붕괴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 특히 주께서 교회의 파수꾼으로 세우신 사람들에게는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문제에 있어 교회의 상황을 조사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의 본성을 지닌 하나의 몸이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제3부 교회 내의 올바른 상태 회복을 위한 제안

이 책의 세 번째 부분은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취해야 할, 여섯 가지 구체적인 제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더 진지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

2. 루터의 만인 사제 교리에 대한 새로운 강조가 있어야 한다.

3.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의 함양에 더 많은 강조가 있어야 한다.

4. 모든 논쟁이 유익하고 선한 것이라고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5. 목사 후보생들은 “그들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6. 설교는 아른트의 주석집 안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설교들이 선포되어야 한다.



Ⅴ. 독일 경건주의가 기독교 역사에 미친 영향

17세기 후반으로부터 18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경건주의 운동은 정통주의에 대한 반작용 종교적 개인주의를 기초로 삼았다. 경건주의는 독일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를 위한 막대한 공헌을 했다. 이들은 메마른 신학 논쟁으로부터 생생한 영적 체험과 열정적 신앙생활로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전환시켰다.


또 다른 면에서 경건주의는 회심과 중생, 그리고 윤리 등을 강조함으로써 기성교회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만이 참된 교회일 뿐 기성교회는 협잡꾼들의 소굴인 것처럼 경멸할 수 있는 소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분리주의자, 비교회주의자가 되어서 신비적인 내면의 빛을 강조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주의는 개혁자들과 정통주의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에 등한시하였던 선교를 실시하는 공헌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바로 경건주의는 현대 모든 부흥 운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건주의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생한 체험과 새로운 영적 활력을 얻는 것을 그 메시지와 사역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까지도 어느 누구나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복음주의적 교회를 상상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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