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삶을 위하여]를 읽고 - 윌리암 로오(William Law)
경건한 삶을 위하여 서평
저자소개 및 생애 : 윌리암 로오(William Law)
윌리암 로오는 미국 독립 직전 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성직자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임마누엘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그 대학에서 1711년 안수 받고 특별연구원이 되었다. 그는 조지 왕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지위를 잃고, 국교회에 의해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와 같은 상황은 그로 하여금 활동은 불가능하게 만들어 명상과 기도에 전념하게 하였다.
그 거룩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의 성질과 그 실천에 대하여 훌륭한 사상들이 산출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바로, 경건한 삶을 위하여 (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이다. 그 외에 사랑의 영, 기도의 영, 성령의 능력 등이 있다.
* 편집자 : 앤드류 머레이 (1828 - 1917)
앤드류 머레이는 1828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목사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교육을 받고, 1864년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 들어와 그곳에서 목회하였다. 그는 목회자, 전도자, 교사, 수련회 강사로 명성을 얻었으며, 여러 권의 책을 섰다. 그는 1917년, 69년 동안의 목회와 저술 활동을 하고 89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영적 체험과 통찰력이 매우 뛰어나, 그의 책들은 아직도 널리 애독되고 있다
* 옮긴이 : 서문강
안암제일교회 부목사,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총회신학대학 신학연구원을 졸업했다. 역서로, 일련의 로이드 존스 저서로 『로마서강해 Ⅰ~Ⅴ』, 『목사와 설교』, 『영적 생활』, 『영적 화해』,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능력』, J. I.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등이 있다.
저자의 사상적 배정
윌리암 로오는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화이트 박사는 그를 영국 최고의 신비주의자라고 부른다. 그의 후기 작품이 보여주는 대로, 영적 진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그것들이 증거하는 더 고상한 생활에 대하여 그는 모든 것은 독일의 위대한 신비주의자-그가 부르는 대로는, 하늘의 조명을 받은 복 받은 사랑-야콥 뵈메의 가르침에 공로를 돌리고 있다
신비주의는 자기와 절대자, 혹은 세계혼(世界魂)과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내연적 상태이다. 인간 정신과 실재의 근원이신 신(神), 그리스도와의 내밀한 직접적 결합이요, 직접적인 파악이다.
신비주의는 하나님, 절대자, 무한자 등으로 불리우는 최고의 실재를 인간 정신의 최고 기능에 의해 직접 인식하고, 그리하여 이 최고 경지는 인간의 이성주관(理性主觀)을 절(絶)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신비주의 특정은 어떤 상태를 체험함으로서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신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신을 체감(體感)하는 것이다. 실재를 증거하려는 일이 아니고 신 안에서 실재를 감득(感得)하는 일이다.
신비주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넓은 의미로는 인간의 이성을 초절한 듯이 여겨지는 어떤 숭고한 것을 막연하게 암시한다. 이것은 “직접적" 혹은 “직관적”인 접촉의 감각이다. 또 하나는, 자기와 자기보다 훨씬 위대한 세계혼이라 불리우는 것, 즉 “절대자”와의 결합이 나타내는 내연적 상태가 신비주의이다. 인간 정신과 실재의 근원과의 내밀(內密)한 직접적 결합, 즉 신성의 직접적 파악이 그것이다.
* 야콥 뵈메
야콥 뵈메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비가로 인류 역사의 기적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1575년 부유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겔리츠에서 구두점 직공으로 있다가 직접 구두점을 차렸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별로 외부적 영향이나 감화가 없었는데도 그의 천성이 종교적, 철학적 능력이 신속히 발달하면서 어느새 신과 세계에 관한 신비적, 견신적(見神的) 견해를 품고 서투른 문장으로 “태초의 새벽”이란 원고를 써서 친구들에게 배포하다가 지방의 주교 그레고리우스 리피텔에게 크게 미움을 받았다.
1612년 주교는 지방 행정관과 백성들을 선동해서 그의 저작을 중지시켰다. 뵈메는 5년간 글을 쓰지 않았으나, 그 후 다시 저작 생활을 하면서 약 30편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천구들이 그의 글을 “감각 이상의 생명" “참된 참회”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이로 인하여 리피텔과 행정관은 뵈메를 그 곳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뵈메는 드레스덴으로 쫓겨 갔다가 다시 실레지아에 갔으나 병이 심하여 고향에 돌아가 162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뵈메의 저작을 모아 출판하고 독일어로 번역했고 영국과 기타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애독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뵈메의 명성은 더욱 높아가고 그의 사상은 오늘의 신학에도 현저한 감화를 끼치고 있다.
뵈메의 신비설의 특색용 일종의 종교 철학에다가 자연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간의 자연적 성품과 새로 태어난 성품이 상대적임을 발견하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다.
뵈메는 또한 세계의 창조를 7단계로 나눠 만유가 생기는 최초의 단계에서 정차 진보하여 감각과 지식 작용이 생기기까지를 설명했다.
뵈메는 “신의 계시에 의해 자기가 본 것만 글로 썼다"고 했다. 그는 사물의 핵심을 투시할 수 있었고, 자기의 영적 시력에는 신의 본질까지 열려져 있다고 말했다.
뵈메는 하나님과 세계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 존재의 법칙으로서 대우(對偶, Antithesis)를 고조했다. “만물은 ‘옳다’와 ‘아니다’로 성립됐다”면서 밖에 나타나지 아니한 신성의 숨은 생명안에서 조차 인력(引力)과 그 반발력이 대립 역사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또한 육체의 심령과 정신을 정(正, Thesis), 반(反. Antithesis), 합(合, Synthesis)으로 셜명했고 똑같은 방식을 써서 선과 악과 자유의지를 설명하고 천사와 악마의 세계도 그런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주적 과정이 목적하는 바는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는 사실임을 보여 주려고 했다.
뵈메는 시간적으로 하나님에게 진화가 있다는 학설을 부인한 점은 주목할 만하며 다른 프로테스탄트 신비가들과 마찬가지로 뵈메도 그리스도의 내재에 대해서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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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요약
1장 경건의 본질과 범위
경건은 정해진 때마다 어떤 종교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정신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바쳐진 삶을 의미한다. 경건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삶을 영위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만 위하여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의무임에 분명하다.
2장 경건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
기독교의 제일되고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모든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마음 먹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참된 경건에 크게 부족한 것은 그러한 의향을 전혀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지한 의도를 가지는 것은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부분인 것이며 보편적인 의향이다.
3장 경건의 마음의 부족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행을 실행하는데 탁월하며 모본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아니하는 것은 크게 위험하며, 어리석은 일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의 부족으로 참된 경건에 미치지 못하면 전혀 핑계될 수 없다.
4장 참된 경건의 마음
우리는 삶의 모든 지위와 직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존귀함을 드러내겠다는 의향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떤 지위와 어떤 직업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참된 경건은 어느 장소에 있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국면에서 참된 경건의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5장 경건과 시간 사용
노동이나 어떤 일에 매여 종사하지 아니하고도 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더 높은 정도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자기들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시간을 전적으로 바쳐 드려야 하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6장 경건과 재물 사용 (1)
그리스도인은 재산과 행운을 지혜롭고 신앙적으로 사용할 큰 의무감과 그에 따른 큰 유익이 있다. 참된 경건은 우리로 하여금 돈이나 세상에서 주어지는 물건들을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사용하게 하여준다.
7장 경건과 재물 사용 (2)
재산을 신중하지 못하게 사용하는 것은 마음의 생각들을 부패시키며 가련하고 괴이한 정욕으로 마음을 채우되, 삶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러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자기들의 돈을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사용히는 일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8장 경건과 재물 사용 (3)
재산을 지혜롭고 경건하게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속한 모든 덕행의 온전함을 이루는데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 모든 다른 것들 중에서 엄격한 원리의 통제를 가장 받지 않으면서도, 바르게 사용이 되면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가장 큰 복락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돈과 시간이다. 이 은사들은 선을 행하는 부단한 방편과 기회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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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경건한 삶의 한 예
8장에서 언급한 미란다의 삶을 한 예로 들면서 미란다의 삶에 대한 몇 가지 숙고와 모든 여성들이 미란다의 삶을 본받을 수 있고 응당 그래야함을 증거하려 한다. 이는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의 복됨을 나타내는데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한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0장 경건의 의무
남자나 여자나 막론하고, 어떤 지위와 계층에 있든지 나이가 적든 많든 간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바다.
11장 위대한 경건
위대한 경건은 우리의 삶을 이 세상에서 맛 볼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화평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우리의 경건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행복도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2장 경건한 삶의 행복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삶의 행복은 자기 자신의 유흥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허영과 선정적인 감흥과 괴이하고 가련한 일들로 더욱 잘 반증된다. 이는 세상적인 즐거움의 헛됨을 말해주고 있는데 행복은 오직 종교의 소망들 안에서만 발견된다.
13장 경건하지 못한 삶의 불행
허망하고 감각적인 데만 몰두하는 삶뿐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삶이라 하더라도 위대한 경건에 의하여 다스려지지 아니하는 것은 충분하게 그 나름의 비참과 부족과 허망함을 드러내되, 온 세상 사람들의 눈에 다 드러나 보이게 나타난다.
14장 경건과 기도
기도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하여 있고, 거룩한 소원은 은혜의 보좌에 올려보낼 그 때, 우리는 가장 높은 상태에 있는 것이고 인간에게 가능한 최선의 높이에 이르러 있는 셈이다. 우리는 왕이나 방백들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의 주님 앞에서 아뢰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영광에 삼켜지기까지 우리는 그보다 높은 차원에 이를 수 없다.
15장 경건과 찬양
개인의 경건 시간에 영창을 부르고 시편을 노래하는 것에 대하여, 이러한 류의 경건이 가지는 탁월성과 유익, 그것이 우리들 심령에 미치는 큰 효과에 대하여 가장 선한 방식으로 그 일을 수행하는 방편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감사와 찬미의 부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한 모든 기도는 시작할 때 시와 찬미로 하라는 것을 바를 뿐만 아니라 경건에도 큰 유익이 있고 우리의 심령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쳐주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원리로 주장 될 수 있다.
16장 9시 기도 : 겸손
성경에 제 3시라고 되어 있는 바, 지금 우리들이 부르는 시간으로 하면, 아침 아홉시에 경건의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그 때의 기도 제목은 겸손이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이 시간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자기의 기도행위를 새롭게 하라고 주신 시간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오라고 부르시는 시간으로 알아야 한다. 영혼의 겸비한 상태가 종교 상태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17장 경건과 겸손
자기나 세상의 정신을 버리지 아니하고는 겸손이란 있을 수 없나 누구나 겸손의 덗행을 실행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자신을 배우는자로 생각하여야 한다. 진실로 겸손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상의 이 부패한 영으로부터 줄곧 배워왔던 모든 개념들을 다 지워버려야 한다.
18장 겸손의 어려움
겸손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받은 교육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교육은,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덕있고 진지한 부모들과 학식있는 교사와 통치자들로부터 받는 그러한 교육이다. 기독교는 사물들이 새로운 위치에 있게 하였고,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철저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인간이 창조됨 목적들과 인간의 조건 상태를 알려 준다. 또한 기독교는 우리의 모든 선과 악을 지적하여 주었고,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되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었다
19장 교육과 겸손
딸들을 교육하는 방식이 기독교적인 겸손의 정신을 가지는 데 얼마나 큰 장애가 되는지를 보여주며, 그런 교육하는 정신 속에서 교만이 자라는 것에 대한 저자의 염려와 경건 속에서의 양육의 중요성을 설명함.
20장 12시 기도 : 중보
성경에서 제 6시로 되어 있는 이른바 지금 시간으로 12시에 경건회를 갖기를 추천한다. 이렇게 경건회를 자주 가지는 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같이 바람직하다. 이 시간의 기도제목은 누구나 다 사랑할 수 있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드리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행동으로 중보의 기도를 드리라고 촉구한다.
21장 중보기도의 필요성과 유익
중보의 기도는 모든 차이를 무마시키는 가장 좋은 중재자일 뿐 아니라, 참된 우정을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촉진제이며, 가장 좋은 치료제이며 모든 불친절한 기질들과 모든 분내고 거만한 정욕들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그리고 역시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참된 상태가 어떤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크게 소용되는 것이다.
22장 3시기도 : 순종
성경에서 제 9시로 명시되어 있는 오후 3시에 경건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시간에 다루어질 경건의 제목은 하나님이 기뻐하심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단 마음으로 순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인정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단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두 방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를 감사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3장 저녁기도 : 회개
성경에서 제 12시는 지금의 저녁 6시이다, 삶의 모든 상태의 수고와 행동이 일반적으로 이 시간에 끝나는 그 시간까지 행한 모든 행실들을 점검하고 재고할 아주 좋은 시간이다. 이 점검의 필요성은 회개의 필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행하는 모든 행동들을 부단하게 주목하며 헤아려 보아서 게으름때문에 회개하지 아니하는 죄행을 스스로 쌓는 일을 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큰 죄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은 바른 일이다.
24장 경건의 위대함
우리 복되신 주님과 그의 사도들은 아주 빈번하게 경건의 시간을 가진 탁월한 본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크게 경건을 실행한 것은, 경건과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참된 지식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면,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의무에 대하여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극히 지나친 무지에 빠져 있음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선이라면, 하나님의 은총 안에만 선이 있고, 악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가장 선한 일이라고 판단하는 사람,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는 사람, 세상에 있는 모든 존귀와 영예보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기 원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혜의 최고 높은 지점에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지혜롭다거나, 위대하다거나 고귀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 단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진심으로 경배하는 것이, 하늘에서나 땅세서나 모든 영혼들의 지주이며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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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점
“경건한 삶을 위하여”의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강한 권위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의무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련 의무를 매우 강조하는 반면, 그리스도인이 이 의무를 실현하는 노력에 있어서 겪을 만한 어려움, 세상과의 투쟁에서 오는 무능과 회의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인간의 연약에서 오는 무능과 회의는(이것이 경건을 이루는데 변명이 되지 못함은 이미 내용에서 다루어졌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서, 믿음으로서(로오의 말을 잘못 이해하면 선한 일로 구원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길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이루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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