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태복음 5:13)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세상 사람이 아닌 예수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며,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내가 사는 이 땅의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예수님이 세 제자를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신 모습과, 모세와 엘리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신비의 체험을 하니까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그러나 예수님은 산 아래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가 있고, 문제가 있는 세상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 밖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있고 부패하는 죄악이 있는 이 땅에 소금이 되어 소금의 사명을 다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 은사 받았다고 하면서 가정을 등지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꼭 필요한 사람, 소금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이 쓰일 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죄악 된 이 세상입니다. 이 시간 소금의 사명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도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13)

 

1) 소금은 흔한 것입니다.

 

소금은 값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말리면 소금이 됩니다. 유대나라는 사해바다가 모두 소금입니다. 소금은 사람들의 관심 밖의 물건이면서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같이, 흔하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하나님은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만드십니다. 이런 소금이 되라 하셨습니다.

(6: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

 

사람을 만드실 때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흙은 먼지를 일으키며 모양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금으로 만들지도 아니하시고, 하다 못해 돌로도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천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신뢰하지 말자. 교만하지 말자. 우리는 다만 흙일뿐입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천한 자 어부를 불러 제자 삼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 귀족이나 부자들을 부르시지 아니하시고, 세상에서는 대우받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 없는 천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여 쓰임 받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합시다.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적은 양의 소금이, 많은 양의 음식을 썩지 않게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셨고,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것입니다.

바닷물에는 소금이 3.4%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합니다. 소금이 3.4%밖에 안 되는데 바닷물은 그 소금으로 썩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예수 믿는 사람이 천만이라 합니다. 25%나 되는 소금인 믿는 자가 있는데, 여기저기 썩는 것 뿐이요 교회 안에까지 썩는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보다는 세상과 함께 같이 썩어 가는 자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령 받은 120명으로 로마가 무너져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에서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썩기 쉬운 생선에 소금을 뿌려 놓으면 썩는 것을 막아 주듯이 우리 성도들은 죄악으로 타락해 가는 세상에서 죄악으로 썩어 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15)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소금은 변치 않습니다. (불변)

소금은 그 형질이 녹아 없어져도 그 맛, 그 본질은 음식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약속을 소금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좀 잘되고 나아지면 나의 하나님하며 찬송하다가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없다고 돌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변하지 않는 믿음 됩시다.

(대하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

 

소금은 살아있는 것에 뿌리는 것이 아니요, 죽은 것에 뿌리는 것입니다.

소금이 필요한 곳은 죽어있고 썩어 가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너희는 소금이 되라고 하십니다. 죽어있는 세상이기에 소금이 된 성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필요하듯이, 육적으로 부패하고 영적으로 이미 죽은 세상에 들어가서 소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3) 소금은 희생하므로 맛을 냅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지고 없어짐으로 맛을 내어 소금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것을 위해 스스로 녹아 없어져야만 합니다. 소금은 녹지 않는 그 자체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 소금을 밥 먹듯이 먹습니까 그리하면 오히려 해를 받습니다. 소금을 금과 은같이 장식용도 아닙니다. 소금은 다른 것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다른 것을 위해 녹아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녹아 없어지는 것은 희생과 헌신을 말합니다. 내가 손해보고 희생되므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주님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소금은 접촉되는 것에 스며들어 접한 것들을 변화시킵니다.

믿는 자들도 이와 같이 접하는 사람마다 변화를 시켜야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면서도 예수 믿지 않는 이유는, 내가 소금이 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금은 전체에 퍼져 맛을 냅니다. 믿는 자들의 소금의 역할도 멀리 복음을 퍼져 나가야합니다. 또한 성도가 있는 곳에는 화목이 이루어져야합니다.

(9:50) "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 하시니라 "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소금이 한번 뿌려지면 소금은 일을 끝까지 수행합니다.

젖을 담으면 일년이든 이년이든 소금으로 말미암아 고기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됩니다. 믿는 자들의 하는 소금의 일도 한번 행하였으면 꾸준히 중단 없이 사명을 수행하여 완수해야합니다.

(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

 

2. 소금이 맛을 냅니다. (13)

 

1) 소금이 들어가는 곳에 맛을 냅니다.

 

소금이 음식을 짜게 하여 맛을 냅니다.

믿는 자들은 그들 속에 짠맛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짜다하면 구두쇠 자린고비등 안 좋은 면으로만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후하게 하면 좋다하고 그러지 안으면 짜다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먹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지나가도 붙들어 술 먹으라고 줍니다. 우리는 술 담배 음식 후하게 주는 것 같아 짜지 아니한데, 무슨 일을 하려면 자기이익을 따져서 아주 비협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헛되고 무의미한 일에는 후하고 과소비적이요 자기 얼굴 내는 대는 기분파이나, 모든 일에 자기에게 조금만 피해가 되면 죽을 힘 다해 반대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심든 이유가 이익을 위해 극단으로 노 사간에 대립하여 얻은 것이, 소경 제 닭 잡아먹듯이 임금 올려놓으니 물가도 같이 오르고 상품들은 별 좋지도 못하면서 가격만 비싸니,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기아도 망하고 대우도 망하고 그러게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국회의원들 하는 것이나, 의사들 하는 것을 보면, 말은 그럴듯하게 남을 위한 것 같이 포장하고 속에는 아주 이기적입니다.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9:50)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소금은 맛이 없는 음식을 맛나게 합니다.

소금이 무미한(싱거운) 음식을 짜게 하여 맛을 내듯이, 성도는 세상에서 무미한(싱거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 삶의 맛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삶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 새로운 삶 소망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음식에 간을 맞추듯 성도는 행동과 말에도 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되 소금 맛이 아니라,

음식의 각각의 가지고 있는 맛을 더욱 드러냅니다. 소금은 더욱 맛있는 음식이 되게 하는 것은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는데 협력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 소금은 갈증을 일으키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 더욱 갈증이 나서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소금도 먹은 놈이 물을 켠다는 말과 같이 은혜를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갈증이 날일도 없습니다. 은혜의 소금을 먹은 사람만이 갈증이 나서 더 은혜 받으려고 쫓아다닙니다.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119:123)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성도들을 접촉하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싶은 갈증이 나도록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저들이 불의 한 삶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고픈 충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신앙 생활하여 그러게 복 받기를 원한다는 마음이 생겨야합니다.

그러나 내가 오히려 신앙생활이 복되지도 못하고 본 되지 못하게 살므로 거룩한 삶의 갈증이 아니라, 잘 믿던 신앙의 사람들에게 나로 인하여 병들게 하고 실족하게 하지는 아니하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3) 정제된 소금은 더 귀하게 쓰임 바 됩니다.

 

맛소금은 소금자체로서 식탁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더 깨끗케 하였으므로 얻는 영광입니다. 우리도 자신을 깨끗케 하는 만큼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성도는 성령 받아 회개하여, 불순물을 제거된 깨끗한 소금 되어야 더 크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소금은 활력을 줍니다.

우리는 피가 모자랄 때, 링게르(소금물) 주사를 맞습니다. 사람의 피 속에는 0.9%의 염분이 있어서 우리 몸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 줍니다. 성도는 가정이나 교회에 소금이 되어서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금이 죽으면, 죽염(竹鹽)이라 하던데. 죽염이 치약으로 사용되듯 내가 죽어야 주님께 쓰입니다.

(왕하2:21-22) "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

 

소금 이미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3. 소금이 맛을 잃으면 (13)

 

(1)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짠맛을 다른 어떤 맛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단맛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짠맛이 들어갈 때를, 단맛 설탕을 넣으면 되는 것 아닙니다. 쓴맛이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십일조 하는 것이 기도를 대신하지 못하며, 주일날 교회오지 아니하고 십일조 교회에 보내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요, 봉사는 봉사지 봉사하면 기도 아니 해도 되는 것 아닙니다. 헌금이 믿음을 대신하지도 못합니다.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짠맛 잃으면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맛 잃은 소금을 음식에 넣으면 아무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소금이 음식에 있어 씹게 되면 기분만 상하게 됩니다. 맛 잃으면 거름에도 소용되지 않고 흙으로도 사용되지 못하므로 길에다 버려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삼년 동안 열매를 구하나 얻지 못할 때 찍어버려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하십니다.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3: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짠맛 잃으면 값 없는 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맛 잃은 소금을 돈 주고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값이 나가는 것은 그 물건이 자기 나름대로의 특성이 드러날 때 값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면서 교회 오면 소금 같고, 나가면 소금 맛이 없는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분간이 잘 가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값 있는 모습은 믿음으로 살고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나타날 때입니다.

 

2) 버림받게 됩니다.

소금의 사명에서 벗어나면 버림받습니다. 버림받는 것은 가장 큰 저주의 결과입니다. 무엇이든 버림받으면 천한 자리에 처하게 됩니다. 사명 다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우리 모두 영광스러운 성도의 본분의 다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떠난 천사들을 타락한 천사라 하고, 다른 말로는 마귀 사탄이라 하며 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

 

3) 맛을 잃으면 밟히게 됩니다.

사람에게 밟힙니다.

성도가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맛을 잃으면 사람에게 밟힘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원수를 발로 밟으며 살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바로 살 때는 골리앗을 하나님의지하고 나가 넘어뜨리고 발로 밟고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사명 잃으면 세상 사람들로 멸시천대 받게 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 범죄 했을 때는 반대로 그의 아들 압살롬을 통하여 아비 다윗을 짓밟게 했는데, 맨발로 도망가게 하셨고, 온 이스라엘 무리가 보는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게 하여 철저히 밟도록 하셨습니다.

(삼하 16: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28: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이방나라에 붙여서 밟히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할 때마다 이방나라에게 짓밟힘을 받게 하셨습니다. 10-70년 동안을, 불레셋, 애굽, 아말렉등에 붙여 이스라엘 백성을 짓밟게 하셨습니다.

(23:13)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마귀에게 내어주어 밟히게 하십니다.

내어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에 있던 것을 그 보호에서 떠나게 하고, 사단의 지배아래 준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호가 없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비극입니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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