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밧 과부 왕상 17:8-16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합왕 시대와는 비교될 수 없이 부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가난을 이기는 법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엘리야 시대에 대표적인 악한 왕은 제 6대 왕 오므리의 아들 아합입니다. 아합왕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과 아세라 신을 온 백성들에게 숭배토록 하였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3년 6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하늘에는 이슬도 내리지 않았으며, 모든 산천초목은 말라 죽고, 짐승은 물론 사람까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합 왕은 이 가뭄의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한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 전 지역을 군대를 동원해 수색하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아합의 낯을 피해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낼 때 하나님께서는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를 보내어 떡과 고기를 주셔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내가 마르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으리라”(9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르밧으로 내려갔습니다.

1.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

1) 시돈에 속한 사르밧 땅

사르밧은 '사렙다'로 불리며(눅 4:26) 두로와 시돈 가운데쯤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이세벨의 부친 시돈 왕 엣바알이 다스리는 지역입니다(왕상16:31).

하나님은 여러 나라 중에 보낼 곳이 그리도 없어 사르밧입니까? 그러나 역으로 하나님은 이세벨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 때 엘리야를 원수 이세벨의 고향에 보내어 숨겨 아합왕이 군대와 백성을 동원하여 찾아도 찾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여 아이를 낳으면 (출1:22)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할 때 모세를 바로의 딸의 손에 붙여 바로의 궁에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양육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과부에게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9절)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이 사는 이방 나라에 그것도 그 당시 부자도 있었을 것이요 권세자도 있을 터인데 과부에게 가라하십니다. 농경사회에서 과부는 남편이 없으므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대 그때는 더욱 기근의 시대에 과부에게 가서 살라는 것은 너무나 맞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과부는 보살펴야 하는 대상입니다.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3) 엘리야의 순종

하나님은 과부에게 엘리야를 붙이겠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사람의 생각과 환경을 초월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환경을 생각하며 형편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탓하고 형편을 원망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은 이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모든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되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야합니다.

(시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 가나난 농군학교를 창설한 김용기 장로님은 가난한 백성을 복 받는 백성 만들려고 평생을 받쳤습니다. 어느 날 강의 중에 “여러분, 오늘 내가 복 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렵니다”라고 말하자 모두 큰 기대를 하며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복 받을 짓을 하면 복 받고 망할 짓을 하면 망 합니다”라고 말하자 교육생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진리는 지극히 상식적인데 있습니다.

 

2. 사르밧 과부

1) 과부는 매우 가난하였으나 엘리야를 영접하였습니다.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밖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마지막 먹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그와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12절). 그러기 위해 여인은 길거리에서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10절). 엘리야는 이런 여인에게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그 여인에게 보내신 것은 과부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셨음이며 그 여인에게 구걸하려 함이 아닙니다. 세상이 모두 기근이 들어 자기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 형편에 손님 한분을 더한다는 것은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여인은 가난과 기근에 엘리야를 공궤한다는 것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나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 없이 엘리야를 거절하지 아니하고 영접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되고 좋을 때는 나의 하나님 하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예수님 없는 계획과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점점 더 멀어집니다. 우리는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예수님을 가정에, 마음에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멀리하는 것은 환란을 더 가져오는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이 여인은 성품이 온유했습니다. 이 낯선 이방사람이 마실 물주기를 청할 때 즉시 가지러 가려합니다.(10, 11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 우물에서 물 깃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했는데도 그 여인은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여기 여인은 우물에서 물을 달라는 것이 아닌, 가물어 물이 너무나 귀한 그때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 남자에게 물을 준다는 것이나 또한 이 여인은 먹지 못해 기력도 없고 마지막 먹고 죽으려는 상황에서 세상말로 환장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도 온유한 것은 그 여인의 평상시 온유한 좋은 성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이 잘 안되고 살림이 어려우면 사람들의 성격이 거칠어지고 세상을 막으로 살려합니다. 자살은 왜 합니까? 마음이 어려워 거칠어지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살의 글자를 바꾸면 살자. 자살하지 말고 잘살아보세 노래하며 삽시다. 온유한 성품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3) 그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마지막 떡을 만들려는 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오라. 그리하면 기근이 지나기까지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겠다"라고 했을 때 믿음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기꾼으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한다는 기적을 들은 적도 본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선지자 엘리야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습니다. 지금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부자간에도 성도와 목사사이도 믿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이 마음에 자리하여 하나님 말씀도 믿지 아니하려합니다. 이런 때에 세상은 못 믿을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마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막16: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3.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

1) 적은 것으로 심고 많은 것으로 거두는 역사입니다. 육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거두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요 할 수 없는 일을 요구 하지도 아니하시는 지극히 작은 떡입니다. 평상시 같으면 누구라도 선뜻 달라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떡 하나는 크게 보일 뿐입니다. 어차피 죽는 몸이라면 떡 하나 더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별것 없겠으나 느끼는 마음은 큰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이 연보 궤에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칭찬하신 이유는 (눅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2)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므로 받는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은사와 기적 특별한 축복을 받길 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고는 아니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최악의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13절). 떡을 만들어 먼저 엘리야에게 드림으로 그 여러 식구가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이 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순서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수단방법 다해보고 또한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 교회에, 예배에 참석안하고 돈도 없어서 못한다합니다. 순서만 바꾸면 시간 없어서라는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일 자기일이 시간 없어 못한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여인은 조금 있는 양식을 '먼저'하나님께 드려질 때 넘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환경이나 형편이 어떠하든지 어느 시대, 어느 장소가 되었든지 '먼저'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 당시, "내가 먹어도 부족한데 이걸 하나님께 드리라고 해 하고 안 드렸다면 그는 한 번 더 먹을지 몰라도 그것이 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먼저 드림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며 대접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 하나님이 엘리야를 공궤하게 한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입니다.

이 여인의 축복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6절). 퍼낼 때마다 그 통과 병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다 많은 양이 보태어졌던 것이다.

이 과부가 한 끼밖에 먹지 못할 것을 요구할 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왔느냐고 원망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주시려는 부요함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수많은 과부들이 이스라엘에도 이방에도 있었지만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손해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통에는 밀가루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할 것 같지만 부족함이 없고 언제나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믿는 자들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믿음의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눅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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