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

전도서 4장 9절 ~ 12절 설교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며 사람은 더불어 살아갈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하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아담을 지으시고 난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시고 하와를 만들어 주셔서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협력하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불행입니다. 감옥에서도 제일 큰 형벌은 독방에 수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야기할 친구가 있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혼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든 다해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1.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1)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기 때문입니다 9절. 두 사람이 연합하여 수고함은 혼자 수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이 4개통이냐 8개통이냐에 따라 차의 힘이 크게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LG, KT, SK등이 서로 통합하여 살아갈 힘을 키운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소멸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성도가 연합하여 힘을 키우지 못하면 문을 닫습니다.


2)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는 곳에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원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가 되기를 그렇게 원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마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3) 분쟁하는 곳에는 요란함과 황폐만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어디든 다투고 분쟁하는 것을 보면 별것도 아닌 것으로 다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다툼은 결국은 방축을 무너트리는 새는 물과 같은 것 입니다. 적은 물구멍이 방축을 무너지게 하며, 방축이 무너지면 많은 피해와 죽음을 가져옵니다.

(잠17:14)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 옛날에 이름난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스승 밑에는 언제나 많은 제자들이 모여와 가르침을 받고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한 제자가 말했습니다. "저것 봐.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군" 이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제자가 "어허 무슨 소린가, 저건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입씨름을 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한 마디씩 참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뭇가지가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 급기야는 서로 격렬한 논쟁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스승이 그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라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네들 마음일세.

(잠26: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 넘어질 때 일으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10절)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나, 불행과 절망의 시기에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친구가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도만난 사람에게 사마리아인 같은 좋은 이웃이 필요합니다. 신앙에도 길동무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이기적인 마음과 물질 만능주의로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고 정말 좋은 이웃이 없어지고 참 친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 남이 나에게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내가 이웃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눅10: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2) 어떤 사람은 서있는 사람을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제일 피해자로 나타 나기도합니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20명이상 많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고도 자기가“시작 단계에서 붙잡혔다”고 하면서 만일에 잡히지 아니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어느 맹수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나는 어느 편입니까? 일으켜 세우는 자입니까 - 넘어뜨리는 자입니까? 살리는 자입니까 - 죽이는 자입니까?

(욥4:4)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마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① 예수님은 낙심한자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시145: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시113:7)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② 질병에서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병든 자를 고치시려 오셨습니다.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③ 죄에서 일으키십니다. (마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3.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11절)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 팔레스틴 지방의 겨울밤은 춥고 여행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낮에 입던 겉옷이 유일한 침구로 사용되었는데 그때에 친구와 함께 누우면 사람의 열로 더 따뜻하게 됩니다. 11절 말씀을 요즘말로 바꾼다면 전기장판과 함께하면 따뜻하려니와 없으면 추우리라 하였을 것 같습니다. 병아리를 보면 더우면 흩어져 자다가도, 추우면 서로 뭉쳐 잘못하면 많은 병아리가 밟혀죽게 됩니다. 아궁이의 잘 타던 불도 장작을 하나하나 따로 하면 화력이 없는 불이됩니다.

(출22:26-27)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2) 두 사람이란 서로가 의지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방이 아무리 따뜻해도 혼자 누우면 마음이 얼마나 춥겠습니까? 사람은 먹는 것 입는 것이 다가 아니요 서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도와줄 수 있다면 거기에서 진정한 따뜻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홀로 있다는 것은 춥고 외로운 마음이요, 두 사람은 위로와 협력의 삶을 말합니다.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


3) 둘이 누워도 추운 방이 있는데, 그것은 고슴도치 같은 관계일 것입니다.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더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가 많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반대가 된다면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잠21: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4.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1)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엄청난 무거운 짐을 끌어올리는 기증기의 쇠줄은 한가락으로 만든 것 아니요 여러 철사 줄을 합쳐서 만든 것입니다. 까치 때가 매를 이기는 TV화면을 보면서, 그렇습니다! 사실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고, 들 수 없는 것도 친구들이 함께 들어 준다면 충분히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음으로 뭉치기만 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나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교회 모두가 협력하여 하나 된다면 큰일을 이루고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2) 두 사람이란, 경쟁의 상대가 있어 우리 인격과 신앙을 바르게 세워줍니다. 나무가 혼자 자라면 옆으로 쓸데없는 가지만 뻗고 삐틀어지게 멋대로 자라고, 바람이 불면 한쪽으로 쓸려 삐틀어지게 자랍니다. 그러나 숲속의 나무는 곧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혼자는 우물 안 개구리 같아서 자기만 보므로 자기가 잘못하는 것도 잘하는 줄 알고 자만하고 교만하여, 옆으로 가지만 쳐서 옆에 피해만 주고 위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자라면 서로가 견제하며 경쟁력을 키워서 승리자를 만듭니다. 신앙도 선한 경쟁을 하여 인격이 바르게 자라게 해야 합니다.

(잠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기독교에는 여러 교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는 이유는 서로가 선한경쟁의 상대가 되어 분발하여 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남 교단 비방이나 하고 마치 특정 교단이나 장로교 교리가 구원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생각하는 우매한 교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침례교회라 하면 무조건 이단처럼 거부하고 비방의 대상이 됩니다. 천국 문에 들어갈 때에 너는 어느 교단에 속하였느냐, 어느 교회 교인이냐 묻는 게 아니라 예수를 어떻게 믿었느냐 말씀의 잣대로 심판하십니다.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 하느니라

(마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3) 분리는 해체를 의미합니다. 기계가 여러 톱니바퀴와 나사와 여러 부품이 결합되어 많은 일을 하지만 이것이 하나씩 분리가 된다면 기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바퀴가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하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일이 생길 것이요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나 현실은 그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마12: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리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공동체의 삶입니다. 연합의 삶입니다. 너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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