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박사는 25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기독교 예전과 설교 방식에 문제점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은 [그것은 이것입니다]를 통한 빈야드에 대해 알아보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빈야드 운동이란

그것은 이것입니다 - 정장복

정장복 박사의 다른 저서로는 <예배학개론> <한국교회의 설교학개론> <설교의 역사> <교회력과 성서일과> <설교사역론> 등 다수가 있다. 

 

1. 빈야드 운동에 대한 문제 제기


나는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을 사랑한다. 어떤 특정한 신학과 교리에 절대적 권위를 두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에만 절대적 권위를 두고 성경만을 주장하는 그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오순절 교회의 이상과 주장도 사랑한다. 오순절 교회의 이상과 주장은 "성령의 현재성", "그리스도의 현재
성", "은사와 능력의 보편성"이다.

 

즉 쉽게 말하면 사도행전과 초대교회에 있었던 신령한 역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무슨 병이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할 수 있고 지금도 그 이적과 표적이 동일하게 역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령의 현재성이다. 또한 성령이 내주 해 있는 자 예수의 이름과 믿을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런 능력올 동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능력과 은사의 보편성"이다. 나는 이 주장에 100% 동감한다.

 

빈야드 운동

 

참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순절 교회는 세계최대교회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빈야드는 오순절교회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빈야드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존윔버는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을 불렀던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편곡자였고 한 때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가 은혜를 받고 교회에 나가서 보았지만 교회가 성경에 나오는 그 이적과 표적이 없음을 실망하고 말씀과 회개뿐 아니라
사도행전의 복음사역을 실행하기 위해 빈야드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빈야드 운동은 마이너스 성장과 영적 무기력에 시달렸던 미국 교회에 영적인 센세이션을 제공하였다.


빈야드 교회는 폭발적 교회 성장을 이루었고 전 세계 빈야드 교회가 600개가 넘을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다. 전도 방식에 있어서도 논리적인 말로 전도하는 것도 좋지만 사도행전의 이적과 표적올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실제적 살아계심을 보여주자는 것이며 관념적이 아니고 그것을 체험케 하자는 것이다. 빈야드는 너무나 빠른 교회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도 치음에 이 빈야드를 부정적으로 보다가 후에 존 윔버의 안수로 고혈압을 치료받고 그 예배 상황을 본 후에 이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써서 빈야드를 변호해 주었다.


그러나 빈야드의 취약점이 있다. 이것은 모든 오순절 교회의 취약점이다.  그것은 자기의 체험과 성경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체험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모든 빈야드의 문제점을 예로 들면 성령웃음. 짐승웃음. 뒤로 넘어지는 것, 입신 등의 문제가 이 전제 아래 나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와 자기의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 그런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즉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없는 상태에서 성령만 충만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리와 성령이 같이 충만해야 한다. 여기에서 좀 더 발전하면 신비주의가 된다. 자기의 영적인 체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감정적 충만 상태에서 찾으려고 하며 신비한 것만을 추구하려는 그 추구함이 이런 빈야드의 모든 문제를 낳았다.

빈야드 교회 예배의 요주의 사항은...(p 75 -)


최근에 이르러 한국 교회에 생소한 이름을 가진 예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빈야드 운동의 예배를 비롯하여 열린 예배라고 알려진 구도자의 예배와 같은 새로운 이름과 내용을 가진 예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목회자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과 캐나다까지 진원지를 찾아가 보고 그 수용 여부에 고심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예배 형태에 대하여 지금까지 지켜 온 전통적인 예배 형태를 벗어나도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과, 최근에 번지고 있는 찬양 중심의 새로운 예배 형태를 도입해도 부작용은 없는 것인지에 관한 관심과 질문들이 많습니다.

 

본 발표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빈야드 운동에서 진행하는 예배와 열린 예배를 깊이 이해하고 살피려 합니다.

 

빈야드 교회의 예배는 1983년 존 윔버 목사가 자신의 교회에서 시작한 예배로서 전통적인 예배의 형식이나 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사도행전적인 성령님의 역사와 기사를 동반한 복음 전파를 하면서 교회의 양적인 성장을 시도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시도된 이들의 예배 현장은 파격적으로 이어집니다.

 

예배 인도자는 정장 대신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현대 악기를 들고 나와서 복음성가와 유사한 음악을 계속 인도합니다. 때로는 전자 매체를 이용하여 시각적인 도움을 주면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며, 회중들은 자유롭게 열망적인 표현을 합니다. 예배 가운테 선포되는 메시지는 아주 짧으며, 예언의 은사와 성령 안에서의 안식을 강조하면서 손을 이마에 대면 그대로 쓰러지고, 알 수 없는 웃음이나 동물의 소리도 내게 됩니다.


이러한 예배를 관찰하면서 교회 성장 학자인 피터 와그너는 빈야드 운동이 기독교의 "제3의 물결"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극찬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예배가 고정된 틀에 머물러있어 예배하는 회중들의 심령이 메마른 현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성령님의 가시적으로 주관하는 예배를 강조합니다. 성직자 한 사람의 고정된 모습보다는 다양한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예배를 추구합니다.

 

이러한 예배 형태의 등장은 하향 길을 걷고 있던 미국 교회 적지 않은 충격을 주면서 교인들이 몰려들게 되어 선교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예배의 내용과 형태가 하나님을 중심아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예배의 창시자인 존 윔버는 대학의 신학부 학사과정만을 마친 사람으로 교리적인 측면이 빈약하고, 제세례파의 예배 전통에서 나온 퀘이커 교회 계열에서 협동 목사로 사역했던 사람으로서 예언의 은사와 전율과 진동, 표적과 기사 등을 우선시하는 예배에 몸담았던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빈야드 예배는 이성보다 감정과 경험에 우선하면서 짜인 프로그램대로 따르게 하는 반지성적인 경향으로 흘렀고, 자신을 돌아보는 이성이 필요한 참회의 기도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지하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열심히 보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예배의 모습이 한국에서 행해질 때 한국 교회 예배 내의 기복 신앙적 요소와 기사와 이적을 추구하는 신앙 형태와 혼합된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의 뿌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성령님의 역사는 1906년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Azusa) 길가의 작은 교회에서의 은사 폭발의 역사로 시작하였습니다. 방언과 치유의 은사는 매스컴을 타고 미국의 전역과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성령님의 역사는 1907년 평양에서 말씀에 의한 철저한 회개 운동으로 시작되어 오늘의 한국 교회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발생한 성령님의 역사는 정서적인 면이 강했지만 한국에서는 이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였습니다. 말씀 위에 기초하여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예배해 온 전통이 우리의 뿌리임을 밝히 알아야 합니다.


현대 교회의 모델인 초대 교회에서 조차도 성령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은사 받아 방언하고, 통역하고,  예언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스스로 만족하고, 더 깊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즐겁고, 만족하고, 기쁨이 넘치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성령을 받아 권능을 받고, 나가서 가르치고, 침례를 주어 제자를 삼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행 1:8). 현대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부인할 수 없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위험할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균형을 이루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체험을 논리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즉 신학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나 존 윔버의 빈야드 원조는 그런 동물웃음이 목적이 아니었고 "성령의 현재성", "은사와 능력의 보편성"이 있어야 하며 그 이적과 표적을 통해서 교회의 양적인 성장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동물웃음, 성령웃음올 받아야 은혜받았다고 하는 토론토의 빈야드는 빈야드가 변질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빈야드의 문제점으로 말이 많은 것은 일정한 형식과 틀이 없는 자유 예배이다. 그들 말로 따르면 예배의 형식과 의식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일정한 틀이 없이 예배를 드린다. 예배의 스타일은 모든 오순절 교회의 특징이라서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말씀 중심의 예배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빈야드 운동에 대한 결론


예수님은 복음올 증거 하는 데 있어서 말씀을 증거 하시고 또한 병에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치유해 주셨다. 막 16장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이적과 표적올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셨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죄뿐만 아니라 질병에서도 자유할 수 있다고 (사 53장)에서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뿐만 아니라 질병에 억눌린 자들도 치유하는 사역을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질병올 담당하셨다.

 

빈야드(오순절) 교회가 주장하는 영적 체험만을 주장하고 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런 영적인 체험이 없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관념적 신앙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을 추구하는 빈야드를 무작위적으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왜 나에게는 그런 영적인 체험이 없고 그런 은사와 능력이 없는가를 한 번쯤 뒤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인 오직 성경적이고 복음적 설교와 체계적인 성경교육 시스템과 오순절교회의 이상과 주장인 "성령의 현재성", "은사와 능력의 보편성"이라는 "체험적", "실상적", "현상적"영적인 체험을 접목시킨다면 21세기 가장 능력 있고 영적이며 파워풀한 교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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