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푸코의 사상에 대하여

 

1960년대 유럽 사회는 전쟁의 폐허로부터 탈출하여 고도의 물질적 풍요를 이룩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생산 체제가 구축되고, 노동자 역시 사회 보장 제도 덕분으로 유례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억압적 사회제도 (대표적으로 관료제)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다. 공장은 대규모 병영과 같았으며, 학교는 사회에 순응적인 인간을 만드는 제조창으로 되었다. 그러기에 물질적 풍요는 공허하게 느껴졌고, 진정한 삶의 회복은 아득한 것 같았다.

 

그 결과 1960년대 유럽에는 대대적인 사회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풍요에 만족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억압을 견디지 못하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었으며, 그 우선적 목표는 관료주의적 억압 체제의 파괴였다. 이 운동은 독일에서 전후 경제 재건을 달성한 기민당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프랑스에서는 마침내 드골 정권을 무너뜨리는 19685월 혁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혁명은 정권을 교체시켰으나 본래 목표인 관료주의적 체제와 인간 소외의 극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왜 억압이 더욱 강화되는 것인지를 파악하고,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시도한 대표적인 철학자가 독일의 하버마스이며, 프랑스의 푸코였다. 푸코와 하버마스는 동일한 시대, 동일한 문제와 씨름했다. 그들은 근대를 이끌어 온 이성에 혐의를 두면서,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 , 근대 계몽주의 철학으로부터 비롯되는 근대적 이성은 한편으로는 자연을 객관화하여 이를 지배하며, 이런 가운데 자연을 착취하는 대규모적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물질적 풍요를 달성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근대적 이성 때문에 인간 자신이 객관화되어,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근대적 이성은 그 자신을 주체로서 해방하면서, 동시에 그 자신을 노예화하는 이중적 결과를 자아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기서부터 전진해 나간 방향은 서로 대립한다. 하버마스는 근대적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하여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한계 내에서 대안을 모색하려고 하였으며, 그런 점에서 어디까지나 모더니즘의 지반을 떠나지 않았다. 반면 푸코는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이성의 권리를 회복시키려는 입장을 취하며,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기에 동일한 시대에 살면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들은 언젠가 한 번 대결을 벌일 운명에 처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하버마스는 1980년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저술을 출간하였다. 그는 [근대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1986)을 통해서 근대성을 비판하는 철학적 논의를 헤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검토하면서, 그 가운데 특히 푸코의 입장을 음미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제 하버마스가 푸코를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통해 삶의 소외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이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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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권력 - 지식체계

 

푸코는 앞에서 말했듯이 억압의 원천이 근대적 이성에 있다고 보면서, 근대적 이성이 생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결국, 그는 근대적 이성이 부르주아 권력의 산물임을 보여 줌으로써, 그 중립성 또는 비당파성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려고 한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하여 이전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이데올로기론으로서 권력이 지식에 어떻게 의존하는가를 보여 주는 비판이라고 하겠다. , 지식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이데올로기를 제공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오히려 지식이 권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은 지식에 그 대상을 제공하며,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푸코는 이런 지식의 권력 의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담론 분석[지식의 고고학]을 시도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그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단순히 어떤 판단을 내린다. 이 판단은 환자의 행위를 유발한다. 단순한 상황 판단이 어떻게 하나의 행위를 야기하는가? 여기에는 표면적으로 어떤 강제도 없다. 마치 환자는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는 이 근거를 권력에서 찾는다. 환자는 사실 의사들의 판단이 올바른 것인지를 스스로 확증할 수가 없다. 환자는 의사의 판단을 믿는데, 그 믿음은 결국 제도의 산물로서의 의사에 대한 믿음이다. 즉 의사는 공인된 교육 기관을 통해 국가가 인정한 시험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환자의 의사에 대한 믿음은 사실 국가 권력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제도로서의 의사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므로 권력은 의사를 낳으며, 의사의 판단은 환자의 행위를 낳는다. 사실 의사는 권력의 대행자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이 주체이고, 환자의 행위는 권력의 효과인 셈이다.

 

이같이 담론 분석을 통해 제시하는 권력-지식 관계를 보여 주기 위해 그는 구체적으로 근대 이성적인 인간 과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실증적 연구를 한다. 그는 이를 주로 광기의 역사, 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와 같이 기존의 역사에서 간과되었던 반이성(反理性)의 역사를 통해 분석한다. 우리는 그 가운데 예를 들어 광기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광인은 일종의 예언자로서 취급되었으며, 사회로부터 엄격하게 격리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사회의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절대주의 체제)에 이르면, 광인은 걸인이나 부랑아와 마찬가지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모두 노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부르주아 권력에 의해 반사회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다. 권력은 사회에 위험한 존재인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구빈원과 같은 곳에 수용했다. 여기서 비로소 광기와 이성의 구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근대 세계(푸코는 이를 18세기 말로 규정한다)에 이르면 이제 광인은 다른 반사회적 인간, 즉 걸인이나 부랑아와 구별되었다. 급속한 산업 혁명으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걸인이나 부랑아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노동자로 중용되었다. 그러나 광인은 노동이 불가능한 인간으로 간주하여 따로 수용되었고, 이들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인도주의(人道主義)의 이름으로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정신병원이 세워진다. 이런 정신병원에서 광인은 치료라는 핑계로 사실은 훈육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들은 일반인이 광인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거나 광인 앞에 거울을 세워둠으로써 광인이 그 자신을 스스로 객관화시켜 스스로를 인식하게 만들거나, 그에게 체벌을 가함으로써 광인이 자신을 주체적으로 지배하는 인간이 되도록 만들려 했다.

 

이렇게 하여, 광기와 이성의 엄격한 구별이 완성되며, 동시에 이성에 의한 광기의 지배가 시작된다. 광인은 강제적으로 부르주아 권력이 요구하는 주체(자기를 스스로 지배하는 인간)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권력이 대상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자, 이제 인간에 관한 이성적인 과학이 출현했다. 이 과학은 인간을 객관적 대상과 같이 관찰하며,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푸코에 의하면 근대 이성적 인간 과학은 부르주아 권력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풍요의 시대에 억압의 원천은 풍요를 산출하는 이성 자체가 본래 억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억압이 없는 해방된 사회는 무엇을 근거로 세워질 수 있는가? 근대 주체 중심주의적 이성이 아니라면, 반이성에 근거를 둔 사회인가? 푸코는 계보학적 연구를 통해 권력과 지식의 체계를 단순히 기술하며, 그 자신은 어떤 권력 지식체계가 다른 것보다 더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는 어느 편을 든다는 것을 거부한다. 심지어 권력은 악이고, 그에 대한 저항은 선이라는 무정부주의적 교의조차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계보학은 비판이 아니라, 억압적인 권력 지식체계에 대하여 투쟁하려는 경우에, 그 전술이며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술과 무기 이전에 싸워야 하는가 아닌가가 결정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하버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적의 약점과 강점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분석은 투쟁을 하고자 원하는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다. 그러나 왜 싸워야 하는가? 왜 투쟁이 복종보다 좋은가? 왜 지배는 저항되어야만 하는가? 오직 일족의 규범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만, 푸코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

 

어떤 지식도 권력의 산물로서만 이해하는 계보학자 푸코의 입장으로서는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하버마스 비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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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대화(對話)적 이성

 

새로운 사회의 규범은 어떻게 정초 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규범을 합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하버마스 역시 근대적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 비판한 바 있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를 여전히 억압하는 관료 제도의 근거이다. 인간 이성이 원래 이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합리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규범을 마련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푸코처럼 상대주의를 택할 수도 없다. 이런 난처한 문제를 하버마스는 대화적 이성, 또는 상호주관적 이성의 개념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도구적 이성과 다른 대화적 이성을 갖고 있다. 그는 이것이 가능함을 일상적인 의사 소통행위에서 찾는다.

 

우리의 언어는 명제적 내용과 더불어 비언표적(非言表的)인 힘을 갖는다. 그것은 자(話者)가 그런 명제적 내용을 말함으로써 청자(聽者)의 어떤 대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무엇을 주장한다. 그러면 그런 주장은 청자로 하여금 진리 탐구라는 인정한 인간관계로 들어오도록 한다. 또는 나는 무엇을 명령한다. 그러면 청자는 어떤 실천적 인간관계로 유도된다. 이 같은 것을 일컬어 그는 의사소통 행위라고 말한다.

 

의사소통 행위는 단순히 언어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떤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즉 의사소통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푸코는 이것이 결국 권력의 효과임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 힘을 의사 소통행위 자체에서 찾으려 애쓴다. 그에 의하면 이런 의사소통 행위의 힘은 화자가 언어 행위와 더불어 일정한 의무를 스스로에게 가하고, 또한 그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것 속에서 찾는다. 즉 내가 만일 무엇을 주장한다면, 나는 나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에, 그 주장을 지지할 수 있는 경험적 근거를 세울 것이며, 그를 위해 심지어 더욱 근본적인 이론적 전제들에 대해서 기꺼이 토의할 것이라는 의무를 지고 책임을 떠맡는다. 또한, 내가 무엇을 명령한다면, 나는 나의 명령이 정당하다는 것을 그 규범적 전제들을 통해 입증할 것이며, 그를 위해 기꺼이 그 규범적 전제 자체를 다시 토의할 수 있다는 의무를 지며 책임을 떠맡는다.

 

이런 스스로에게 의무를 가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 의사소통 행위가 가능한 보편적 근거이다. 그는 이를 대화적 이성이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우리는 의사소통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 그 보편적 근거인 대화적 이성 역시 실재한다. 그것은 방법론적으로 촘스키가 인간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으로부터 그 가능성의 조건인 선천적 언어 구성 능력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이런 대화적 이성을 가지므로, 도구적 이성에 의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사회 규범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사실 어떤 주장이 진리냐 아니냐 하는 것도 단순히 경험적 증거에 의해서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원초적인 경험적 문장조차도 이미 이론적 개념들을 함축하고 있으며, 따라서 단순히 경험을 통해서 입증되거나 반박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 과학의 역사를 본다면 과학적 진리가 사회적으로 합의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도 인간의 본성을 전제하고 (자연주의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간에), 이로부터 끌어내는 것을 반대한다. 이 역시 자유로운 의사소통 행위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산출된다고 본다. , 규범은 이미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합의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난다는 것이다.


맺는말

 

이상에서 우리는 푸코와 하버마스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오히려 근대적 이성, 즉 주체 중심적이며 도구적인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억압시켜 온 원인이고, 그러기에 삶의 소외, 내면적 공허의 원인이 바로 이성에 있다고 보았다. 푸코는 그러기에 반이성의 입장을 택하였으며, 반면 하버마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적 이성을 통해 삶의 회복을 주장하였다는 차이는 있다. 어떻든 이들은 주체적 인간관을 전제로 하는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셀푸코의 사상에 대해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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