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소명문

2009. 7. 15. 10:53

선교사 소명문

(선교사 시취)


본인은 모태신앙입니다. 모태신앙을 나쁘게 보거나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축복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매순간 기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과 교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놀라운 역사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나 옆에서 아버님을 통해 목회란 무엇인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에 항상 조용하고 수줍던 어린아이가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 작은 입술의 고백은 사춘기를 지나 신학교를 들어가기까지 전혀 흔들림 없이 달려가도록 도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좋은 조건과 환경들은 신앙 형성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지금에 돌아보니 아버님의 신학과 신앙도 본인의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영양을 끼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상적인 고백에서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이루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다양한 수련회와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회자의 자녀였기에 하는 습관적인 종교 활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식적으로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들은 무기력한 신앙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무기력하던 어느 날 성경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동안 익숙히 들었던 질문이었고 그 질문에 분명한 정답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입에서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오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에 얼굴은 더욱 붉어지고 초조해질 뿐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대답들을 여전히 가슴으로는 대답하지 못하면서 정해진 길처럼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고백 없이 시작한 신학교 1년은 커다란 혼동과 충격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무기력한 신앙인을 철저하게 발견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제물로 제출한 신앙 간증을 보던 교수님은 피상적인 고백뿐인 본인을 불러 상담해 주셨지만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고백은 끝내 견딜 수 없는 무게감으로 나를 짓눌렀고, 1학년 2학기를 마칠 무렵 서둘러 군 입대를 지원했습니다. 그 동안 오로지 나의 길이라고 달려온 이 길을 군 입대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자신감을 잃고 모든 것을 회피하고 군 입대를 한 시점에서 하나님은 다시 저를 만나시고 세우셨습니다. 2년 2개월이라는 짧은 군 생활은 그 동안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지식으로 알던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탕자가 어려움을 경험하고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군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미리 예비하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으로 사로잡혀 있던 목을 꺾으시고, 철저히 낮아지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죄인임을 분명히 알게 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죄인 조차 사랑하시고 쓰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병들의 신앙을 이끌어 가야 했던 군종이었지만 오히려 믿는 사병들을 붙여 주셔서 그들의 입술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앞선 군종들이 신앙의 본이 되지 못하여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그 자리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더 이상 피상적인 고백을 기초로 하고 보여주기 위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사병들을 섬기고 보살폈습니다. 남들이 전혀 알아주지 않는 아주 작은 일에도 개의치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달렸습니다. 특수한 환경과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 틈 속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다양한 사역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학습의 장’이었습니다.

 

제대 후 신학교 과정을 은혜롭게 마쳤고, 동시에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 전이라면 분명히 피하고 싶고 미루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진정한 고백 이후에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는 주님의 일이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서 더욱 견고해진 이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역 속에서 실수도 있고, 부족함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좋은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 주셨고, 사역의 열매들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시련과 아픔 그리고 그 경험들이 앞으로의 사역에 큰 밑거름과 되고 훌륭한 목사자의 자질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초석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님은 죄 많은 나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참 목자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이 되어 영원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또한 ‘선한 목자’가 되어 주님의 양을 가르치고 섬기고 헌신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그 소명에 따라 양을 돌보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단순히 육체의 필요를 공급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라, 영혼의 필요를 공급하고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 삼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나의 생명과 나의 일생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이 잊지 말아야 할 절대 가치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① 기도하는 가정. ② 말씀 보는 가정. ③ 예배하는 가정. ④ 선교하는 가정.

어쩌면 가장 기본 적인 가치들이지만 이 작은 시작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바라보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강물이 우리 가정을 통해서 퍼져가는 것이 삶의 큰 기쁨이며, 부족한 우리를 통해 구원의 주님을 만나고 앎으로 죄로부터 참 자유를 얻도록 돕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이 해야 할 가치를 세워 놓고 보니 한쪽 마음에 자꾸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교하는 가정 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선교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알기에 적어는 놓았지만 너무도 피상적이고 막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목회만을 보아왔고, 그 목회의 길을 걷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걸어왔습니다. 그렇기에 선교에 관한 수업을(선교학, 선교 전략, 타문화권 선교, 선교와 문화인류학) 들었지만 한번도 선교지에 나가서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이론들을 어떻게 나의 목회에 잘 접목시킬 수 있을까로 고민했습니다. 이처럼 선교를 나와는 무관한 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냥 단순히 선교비 지원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먼저 선교 비전을 품고 있던 아내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가정이 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터인데, 그 가운데 인생의 어느 부분은 선교에 헌신했으면 좋겠다며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기도하는 동안 아내는 선교에 대한 여러 책들을 선물해 주었고, 비전 트립을 한번 다녀 올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어 도저히 갈 수 없을 상황이었고, 이국에 대한 두려움과 음식에 대한 걱정으로 쉽게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몽골의 자연과 천막 이미지Pixabay로부터 입수된 jacqueline macou님의 이미지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몽골(비전 트립)을 다녀올 것을 허락하셨고,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떠나는 당일에 해결 되었습니다. 또한 비전 트립의 모든 일정 속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도 결국 사단의 권세 아래 눌린 몽골 민족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지 못하는 말처럼 죄의 굴레에 묶여 허덕이는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계속해서 가슴을 쳤고,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방의 빛으로 써주길 원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행전 13:47)

 

이후 조심스럽게 선교에 대해 마음과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청년들에게 지상 명령을 설교하기 위해 인용했던 본문 말씀에 재차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 20)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가라’, ‘제자로 삼아’, ‘침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방의 의무가 있듯이 천국 백성으로서 선교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단에서 청년들에게는 믿음을 가지고 ‘가라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하라고’만 했지 스스로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신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아버님은 물어왔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도 가라고 하면 갈 수 있겠니?”, 그 물음에 선뜻 대답했습니다. “네.”

주님도 말씀과 환경을 통해서 여전히 물으십니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가라는 곳을 갈 수 있겠니?”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길 원합니다. “네.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런 중에 뜻하지 않게 체코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함께 사역을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드디어 선교에 대한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임 사역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정을 앞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히 인도할 것을 확신하고 주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선교사 시취를 준비하면서 아직도 포기 못한 쓴 뿌리들을 발견 합니다. 그것들을 제거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로의 결정은 분명 쉽지 않았지만, 이 작은 반응이 시작이 되어 ○○를 거점으로 세계 선교의 일조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쓸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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