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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건 교회 개혁] 서평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서평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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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독일신학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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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특강 - 크리스 와이드너200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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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클립아트2009.05.12
[생사를 건 교회 개혁] 서평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서평
저자는 1부에서 한국 교회들이 당회 중심적인 잘못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교회 안에서 각각 감당해야 할 역할들이 있으며 그 역할이 지위를 결정하는 사항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역할이 지위를 결정한다는 선입견들이 있어 역할마다 지위가 매겨져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며, 오늘날 교회 안에 잘못된 틀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목사와 장로 제도가 마치 특권층을 만드는 제도가 되었고, 이것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특수 계층으로 자리 잡으며 이러한 인간적 매력을 맛본 목사와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런 문제가 역할 혼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저자는 선한 싸움을 해야하고 그 싸움은 힘든 것이며 거짓된 안정과 타협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2부에서 저자는 한국 교회의 목회가 건강하고 질서 있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장로와 목사의 역할 정의가 필요하고 목사를 특별한 주의 종으로 섬기기보다 배의 선장과 같이 목사를 목회의 전문가로 인정해주고 전문가로서 교회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도 위험이 있어 목사의 독재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그렇지 않기 위해서 건강한 당회가 필요하고 위임 목사를 폐지하고 정기적으로 목사 재신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며, 목회를 전문화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속한 성장 위주를 위한 그 동안의 독재적 목회는 없어져야 하며, 팀 목회와 전문적인 목회를 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목회도 은사대로 해야하며 전문인 목회를 통해 교회 안에 직급을 세분화하여 전문화시켜 담임 목사의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야 하는데 이런 전문 목회의 질과 수준을 높이며, 영적인 목회를 가능케 하고, 건강한 목회의 계승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자는 전문목회를 실시하기 위한 교단적 준비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 신학대학 안에 전문 분야들을 가르치는 과정들이 생겨나야 하고 교단에서도 전문 목사에 대한 헌법이 정해져야 할 것과 이러한 전문 목회를 이루기 위해서 가져야할 구조로 담임 목사는 배의 선장의 역할 이상을 넘어서는 안될 것을 제시하고 있다. 3부에서 저자는 한국 장로 교회의 위기는 장로 제도와 당회를 통해 나타난다고 지적하며 장로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며 목사와 장로는 구별된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장로는 교인들을 대표, 목회의 비전문가, 목사의 협력, 교회의 봉사자, 세상이라는 선교지로 부름을 받은 선교사라고 말하고 있다. 당회에 대해서는 저자는 전제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삼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하며 민주적이어야 할 한국 교회 당회의 책임과 권한이 뒤바뀌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회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제직회와 함께 분담해야하고 장로들도 재신임을 물어야하며, 정확하고 깨끗한 은퇴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시급히 민주화되어야 하며 목사와 장로에게 권한이 편중되어 있는 제도와 조직을 개편하여 더 많은 교인들에게 권한이 돌아가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4부에서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것에 대한 개혁에 필요한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먼저 교회 개혁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에 대해 저자는 올바른 교육과 선한 싸움을 위한 바른 용기와 성령 충만함이 원동력이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교회 개혁의 3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개혁에 있어 타 교회들의 소망 있는 조짐들에 대해 소개하며 저자가 바라는 아름다운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러한 건강한 교회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기도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먼저 한국인들이 우리의 문화와 태도들에 대해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특히 한민족의 건강은 신토불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며, 한민족의 미래가 노자의 무위자연으로 열리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 가운데 조직 안에 있는 공돈을 사용하는 심리와 출세를 지향하는 경향과 법의 적용에 대한 공평성이 결여되어있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국 사회는 혈연을 중시하며 역사에 대해 자기 중심적인 해석을 하도록 했으며 이것으로 인해 문화적 폐쇄성이 만연하게 되었고, 지역성이 강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인들은 냉정해져야하고 버려야 할 것과 새롭게 해야 할 것을 차분히 골라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부에서는 시대적으로 유교가 더 이상 한국의 사상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유교는 정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유교의 이상 사회는 픽션이며 허구라고 말하며 유교는 출발할 때부터, 해석할 때부터 잘못되어진 것이고 이러한 것으로 세워진 문화는 가짜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로 조상 숭배의 기원과 문제점, 동양 사상의 엘리트인 유의 기원과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한 여성의 삶의 왜곡, 그리고 유교만이 최고의 진리라는 유교 사상의 우월 주의와 그로 인한 정치적 횡포, 정치적 안정을 위해 윤리와 과학을 혼란스럽게 뒤섞어놓은 주자학의 문제점, 민주주의와 자유 자본주의 안에 뿌리 깊게 배겨 있는 가부장적 구조, 올바르지 않은 권력의 사용과 인맥과 혈연에 영향받는 사회, “효”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효”를 위한 대책이 없는 사회, 유교 속에서 철저히 희생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3부에서는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본래적으로 원질관념 때문에 비슷하고, 동일한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서로에 대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곁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러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들을 바꾸어 일본을 용서해야하고 일본에 대한 문화 전파주의을 버리고 서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며, 일본 문화에서 유교의 현실과 엄숙함을 깰 상상력과 위트를 배워야하며, 문화적 배경차이를 이해해야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특히 유교의 정신적 억압이 만든 빈약한 상상력과 새로운 대체 윤리를 마련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 관해서 저자는 중국은 한국에게 커다란 도전인 동시에 기회라고 말하며 중국에 대해 한국은 철저한 장사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한문 혼용에 대해 이것은 별볼 일없는 상품에 유교를 끼워 파는 것이며,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한자의 가치와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4부에서는 유교의 틀 가운데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할 지침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공부에 대해 언급하는데 저자는 지식을 위한 공부가 아닌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지혜를 위한 공부가 되어야하고 효과적인 학습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야하는데 영어의 경우는 이른바 써먹는 영어가 되어야 하며, 영어 조기 교육이 필요하며 지정학적 위치로 봐서 우리는 최소한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는 할 줄 아는 땅에 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간판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이 아닌 실력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수동적인 한국의 교육 현실을 능동적인 현실로의 개선과 진정한 논술에 대한 것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부에 대한 신화를 깨어야 한다고 말하며 꿈이 있는 공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부에서는 마지막으로 틀에 박힌 한국의 문화적 틀을 갤 것을 말하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깨끗함과 신용, 야무짐이 필요하며, 유교문화가 낳은 왜곡된 정치적, 사회적 권위에 빼앗긴 인간다움을 되찾아야하고 이웃들의 따스한 가슴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공감할 시대정신이 사회에 필요하고, 조그만 이익을 모두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이 사회에 필요하며, 잠시 기다리면 모두에게 기회가 온다는 신뢰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저자는 우리 안에 참된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위의 두 책을 통해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문제점들과 원인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오늘날 한국 교회가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한국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발전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위 두 책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유교 문화에 틀이 잡혀버린 한국의 현실과 교회들의 현실 가운데 그 틀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책 모두 이러한 현실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바로 참된 용기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다. 작년(1999년) 국민일보에 위 후자의 책으로 인해 많은 글들이 실렸었다. 그 가운데 ‘기독교가 죽어야 민족문화가 산다’는 논지의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그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들은 주로 일제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살아남기 위해 선교사들이 일본의 제국주의를 묵살했으며, 선교와 더불어 사업가로써 활동도 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만약 역사적으로 이 사실이 옳은 것이라면 한국의 기독교는 참된 용기가 결여된 상태에서 세워졌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한국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나게 만든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것은 바로 잡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용기와 소명일 것이다. 그 용기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둘째, 오늘날 한국인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인 목사보다 계급이 낮은 “더 낮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목사 직분은 마치 유교에서 말하고 있는 유라는 계층과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제례적인 성격에서부터 그 동질성이 배겨 나온다. 오늘날 목사는 항상 신성한 사람으로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동호 목사가 지적하듯이 어려웠던 시대에서 점점 편안해지는 시대에 와서 현대의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안주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평신도들에게도 흘러갔고, 제자훈련 초기 때와는 달리 이론적이며 삶의 실천과 도전에 대해서 약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로 교회가 세상에 대해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 대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현실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 교회는 수동적인 신앙을 버리고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신앙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셋째,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시대를 향한 외침과 시대에 맞는 목회에 대해서 수동적이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을 보면 그들을 통해서 공통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가복음의 첫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것이 바로 잠자고 있는 유대의 잘못된 신앙에서 개혁을 외치는 소리였으며, 도전을 주는 소리였다. 바로 이 시대에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외침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그 동안 시대에 대해 무관심하였다. 실제로 기독교가 처음 들어 왔을 때 선교사였던 존스와 스크랜튼은 이토 통감을 만난 자리에서 “선교사들은 통감의 시정에 동정을 갖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초연한 태도로 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군부독재와 연결되었고, 한국 교회는 항상 현실에 대해 초연해왔다. 김동호 목사와 김경일 교수도 언급을 하였지만 이러한 현실들이 바뀌어가고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현실에 초연해야 했던 태도를 바꾸어야 할 때가 오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로 현재의 많은 교회들을 보면 교인의 눈치를 보며 교인이 떠나가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목회자가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곧 현실에 눈이 어두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해 계시지만 시대를 따라 활동하신다고 믿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안주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넷째, 새로운 리더십의 변화에 수용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가 한국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여 많은 약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가장 커다랗게 변해야 할 것이 바로 리더십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진정한 리더십이 부재하고 있기에 한국 교회가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리더십에 관련된 책자와 세미나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마이클 유셉이 쓴 [예수님의 리더십]이란 책에서 오늘날 목회자들이 가져야할 리더십에 대해 잘 지적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꼭 필요한 리더십을 소개한다면 성육신적인 리더십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는 것이 필요하다. 즉, 리더의 권한을 내세우는 것보다 먼저 리더로써의 책임을 지고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전문성이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이며 기술이 앞선 전문성의 필요성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전문성이 한국 교회에 필요한 부분이다. 김동호 목사는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종합병원과 의사에 대한 적절한 예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예처럼 한국 교회는 전문성 있는 사역을 위해 전문 목회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동호 목사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전문 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생각하고 신자의 제자장론에 입각하여 교회 안의 평신도들의 전문성에 관한 훈련도 있어야 하며 은사에 맞도록 배치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인 교회 정치일 것이다. 여섯째, 민주적인 정치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고 있는 반민주적인 교회 정치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김경일 교수가 역대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행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들이 처음 개척했을 때와 달리 교회가 성장하면 그 교회에 대해 지나치게 삐뚤어진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 마치 교회의 주인은 그 교회를 세운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특별히 개교회 주의를 악용하는 침례교 목회자들이 이러한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교회를 하나의 사업으로 자신은 그 교회의 사장이 되어 많은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목회학 입문과 목회 행정학에서도 공통적으로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을 것인데 똑같은 교육을 받았을 일부 목회자들 사이에서 민주적 회중 정치라는 미명아래 반민주적인 독재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 진정한 침례교 정신이 교계 신문이나 세미나를 통해서 전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한국 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교회 의식에 관한 것, 행정에 관한 것, 사회 참여에 관한 것, 헌금에 관한 문제, 각 교회 절기에 대한 의미 등 한국 교회가 다시 성서를 중심으로 되짚어 봐야할 것들이 상당수이다. 이러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잘못된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 깊이 뿌리 내려 있는 것들은 뿌리가 드러날 때까지 그리고 그것이 뽑힐 때까지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역사를 살펴볼 때 각 시대를 망하게 했던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각 시대를 주름 잡고 있었던 종교들이었다. 통일신라도 그러했고, 고려도 그러했고, 조선도 그러했다. 그것은 바로 각 종교들이 각 시대에 맞는 역할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종교는 무엇인가? 바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역사 안에 종교가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는 각 교회들은 초대 교회의 마음으로 돌아 가야하고 순수성을 잃지 말아야하며 늘 도전적이어야 할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정결케 했던 사건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의분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 서평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서평Pixabay로부터 입수된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 입니다.
<위 책을 통해 본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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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독일신학
1. 이 책에 관하여
이 책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느냐에 대한 대단히 심오한 책이다. 어느 익명의 작가가 1350년에 쓴 책을 마틴 루터가 1518년에 출판하였으므로 [마틴 루터의 독일신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루터는 이 책을 출판할 때에 서문에 "내가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및 만물에 관하여 배우기를 원하고, 또한 배우는데 있어서 [독일신학]은 성경과 어거스틴 다음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호프만 역시 이 책에 대해 "이 책과 요한 타울러 및 중세 말기의 신비주의자들에 과한 루터의 친밀한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곳에 임하신다는 지식을 통하여 교회적 한계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과의 합일을 암시해준다"고 했다.
2. 저자: 익명
저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느나, 저자가 튜오톤 기사 수도회(Teutonic Order)에 속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에 있는 중앙 본부에서 신부로서 그리고 교장으로서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 튜오톤 기사 수도회 - 이 기사 수도회는 십자군 원정고 예루살렘에서의 활동 후에 두 가지 목적, 즉 병든 자를 돌보고 거짓 신앙에 대적하여 싸우는 목적을 가지고 봉사와 전도하는 군내단체로 개조되었는데, 이 수도회의 제복은 흰색 가운데 검은 색 십자가였으며, 회원들은 기사, 신부, 그리고 봉사자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오직 독일 귀족들만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이 수도회는 많은 영토를 하사 받았다. 1300년대에 이들 사역의 중심지가 독일의 서부 도시들에서 동프러시아로 옮겨졌는데, 아마도 루터가 1516년에 입수한 축소판 [Theolgia]는 프러시아에 있던 튜오톤 수도회를 통하여서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3. 내용전개
본서는 서론과 본론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에서는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이 간단하게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실존과 자신의 거짓 교만의 완전 용해와의 관계 또한 동시에 이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윤리적 과제들을 다루고 있다.
본론에서는 56개의 간략한 장들을 통해 영혼과 그리스도의 관계, 우리의 본성을 통해 역사하는 마귀의 간계, 영적 삶을 찾는 자의 길에 놓인 장애물들, 독신과 교만, 구속 받지 못한 본성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거룩해지는 과정,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적들, 규범으로부터의 자유와 규범으로서의 속박 등에 관해서 묘사 되어 있다.
4. 독일신학의 배경
독일신학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14-15세기 경에 영적, 도덕적 삶의 혁신을 부르짖던 단체인 하나님의 친구들(Friends of Brothers and sister of the Free Spirit)의 가르침과 비슷하나 자유로운 영적 형제 자매들(Brothers and sisters of the Free Spirit)이라고 불리 우는 윤리적 해방운동과는 상관이 없음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독일신학의 근본 배경은 1300년대 초기에 있었던 교황 사이의 갈등, 즉 성직과 왕권 사이의 싸움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의 프레드릭과 바바리아의 루이 사이의 전쟁 때에 있었던 역사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프레드릭은 뚜렷한 이유 없이 교황 요한 22세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그 근본은 교황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이는 지방 선거후들의 지지를 얻어 제국의 왕위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주권을 주장하는 교황의 요구와 이에 대항하여 독립국가가 되려는 야망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 있었다.
1322년 프레드릭이 사망한 후에 루이는 교황과 화해를 시도했으나 교황 요한 22세는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루이는 북부 이태리를 공격해 또 다른 교황을 임명했으며 곧 이것이 '파문'으로 이어졌다. 1324년 루이와 그에게 충성하는 자는 모두 파문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이가 정당한 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것을 백성들이 선언했으나 루이가 사건을 더 악화시켜 곳곳의 도시에서 쫓겨났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도미니칸와 프란시스 수도회가 있다.
이러한 추방의 과정 중에서 성직자들과 수도승들이 유랑을 하다가 "하나님의 친구들"이라고 불리는 부흥운동에 가입했다. 그와 더불어 "속박에서 풀려난 자들", 곧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이라고 불리는 단체가 생겼다.
"하나님의 형제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인간 안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과 인간의 최종적인 연합 등에 대해 가르쳤으며, 두려움이나 보상의 약속에 근거한 종교를 배격하였다. 특히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 모임의 자유주의적, 반 율법적, 비교회적 사상을 대적하였다. "하나님의 친구들"의 교회의식은 내적 방법을 강조했다. 반면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은 모든 사건, 창조된 모든 것은 필요, 즉 아무 것도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에 함축된 필요에 따라 발생한다는 확신에 뿌리를 두었고 인간 영혼의 극치는 하나님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독일신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양상은 물리적 유형의 재앙들이다. 1300년대 초반은 지진, 강한 태풍, 흑사병의 피해 등으로 어려움을 겼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탕에는 르네상스라는 기본신념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앙을 당했을 대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인간의 심리여서 유대인들이 화형을 당하는 희생이 발생했다. 즉,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 15:8 말씀처럼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하고 찬양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멀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파문"사건을 정리하면 사람 밖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안에서 영생의 경험과 표적을 찾게 되었다.
5. 내용 요약
이 책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으로 즉, 영원한 영적 세계와 피조세계를 구분함으로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삶은 영원한 목적지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에 의 도전과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이 유일하고 마지막인 것처럼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도전으로서 이해 되어진다.
"성경과 어거스틴 말고는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그리고 만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해 이 책만큼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없었다."라고 루터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다루기 위해 저자는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죄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저자는 하나님과 인간에 관해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 가운데 그 영원한 원칙들을 적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과 인성을 취하심으로 타락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3장).
즉, 시간과 영원, 하늘과 땅, 영원한 영적 실재와 세상적이며, 인간의 삶을 완전한 방법으로 조화시킨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된 것들이다. "온전치 못하고 부분적인 것들은 바로 이 온전함으로부터 유래된다."(제1장은 저자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물론 둘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정결해지고, 깨끗해지고, 자유로와 지기 전에는 아무도 비추임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비추임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세 단계인데, 첫 번째는 정결함이고, 두 번째는 비추임이며, 세 번째는 연합이다." 저는 신비적 체험의 세 단계. 정화, 조명, 합일에 대해 익숙한 것 같다(정화, 조명, 합일은 신비주의의 구원의 순서이다).
또한 11장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경험은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믿고 행할 수 있는 두 개의 길과 같으며 그 두 길을 올바로 걷는 자는 행복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상태 중 어느 한 상태에 있다면 그는 바른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두 길이라는 것은 지옥(죄에 대한 참다운 애통과 회개)과 천국(영원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평과, 기쁨, 황홀, 즐거움 등을 알게 되는)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자신에 관해 알고, 그의 무가치함과 그에게 임할 저주를 피부를 통해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그는 "영원한 선외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그 영원한 선이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11장).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즉 참 사랑 안에서의 선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막강한 장애물이 있다. 이 근본적인 악의 이름은 곧, "나", "나의 것", 그리고 "나를"이다(2장). "자신을 깨끗하고 분명하게 잘라 버리라"(제20장). "자신", "나", "자아"의 망각,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세상의 가치와 인상에 의해 형성된 "낮은 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고 많은 불완전한 관심으로부터 떠나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선을 추구라는 권면은 일상적이고 세상적인 삶을 부인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나 그가 존재하는 그곳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데 더욱 열정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일시적인 이 세상도 만유 안에 계시고, 동시에 만유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으시는 곳이 없으니, 곧 영원하신 뜻이 아닌 것을 바라는 그것이다."(제42장). "나 없이 행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지 않고, 나와는 다른 것을 원하는 자는 나를 거역하여 원하는 것이다."(42장) 하나님의 의를 떠난 모든 뜻은 죄이다.
인간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상태로 회복시키고 "나", "자신"을 앞세우는 불순종을 극복하는 것이 이 책의 관심사이다. 그래서 선은 "오직 영원하시고 선하신 그분께만 있다"(제4장)는 것을 강조하고, "나", "나를", "나의 것"이라는 자기 중심적 가정이 바로 타락이요, 배신이며 불순종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죄라는 것을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바 곧 선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두 가지 "삶의 양상" 즉 순종과 불순종, 참 사랑과 거짓 사랑의 대조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 한편의 배후에는 루시퍼가 서 있고, 다른 편의 배후에는 그리스도가 서있다.
6. 토의 내용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또한 "경건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정결함, 비추임, 연합의 단계에 이르는 특히 연합에 이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25장). 연합이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수한 휴식, 자기의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외적인 것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책 전반에서 "나, 나의 것, 자아"는 잃어버린 바 되고 버린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과 경건은 은둔이나 도피의 의미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삶과 부딪쳐 자신들이 변화되고,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의 삶과 더불어 경건의 모습은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할 때 그 살아 계심이 우리 안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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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특강 - 크리스 와이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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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art2me.org
'다비드'상을 본 것은 교과서의 사진을 통해서이다.
입체적인 조각상을 사진(단면)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별로 관심있게 보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아르다운 육체를 잘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후로 몇년이 지난 지금 '다비드'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 주인공(톰)은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낯선 노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다가와서 문제를 짚어 주며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 만을 위한 '특별한 강의'를 준비한 것이다.
이미 쉽게 지나쳐 온 '다비스'상을 되돌아보며 삶의 지혜를 전해 준다.
'미켈렌젤로'가 그 걸작을 만들 수 있던 비결과 '다비드'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인가?
그 대답에 특강을 통해서 하나씩 전해준다.
'미켈란젤로의 천사'
'긍정적인 다비드 되기'
'섬세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
'천천히 서둘러라'
'변화의 두려움을 사랑하라'
'나만의 정과 망치를 지녀라'
'인생은 코리요스 같은 것'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다비드'상이 조각되기 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몰랐다.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보았기에 그 크기 또한 짐작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채석된 이 돌은 너무 커서 쓸모없는 돌덩어리였다.
'아고스띠노 디 두치오', '안토니오 로셀리노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차례로
이 커다란 돌덩어리를 조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무도 하지 못했다.
오직 그 돌의 가치를 알아차린 미켈란젤로만이
28개월에 걸친 작업을 통해 5.49미터에 이르는 '다비드'상을 조각했다.
과연 우리는 인생의 커다란 문제 앞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무도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조각하다 실수로 조각품을 두동강이 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큰 실수는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그냥 잠들게 놔둔다는 것일 것이다.
발견하자. 연마하자. 달련하자. 빚어내자.
책 중간 중간에 '다비드'상에 감추어진 비밀을 들으며 자꾸 사진을 확인한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다비드'상을 조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끝으로 책에도 소개 된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작품 '피에타'를 첨부해 본다.

이미지출처 : dialogu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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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
그가, 훗날 생애 최고의 걸작으로 남게 될 [다비드]를 빚기 위해
거친 대리석 조각에 매달려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근처를 지나던 어린 소녀가 우연히 작업실로 들어섰다.
미켈란젤로는 구슬땀을 흘리며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고 있었다.
곁으로 다가온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돌을 두리리지요?"
소녀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었다.
미켈란젤로는 정과 망치를 두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꼬마야."
미켈란젤로는 소녀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저 바위는 그냥 돌덩어리가 아니란다."
소녀의 눈망울이 점점 커졌다.
"저 바위 안에는 천사가 들어 있어."
"천사가요?"
"그래, 아저씬 지금 잠자는 천사를 깨우는 중이야."
"왜죠?"
소녀가 신기한 듯 대리석 조각을 쳐다보며 물었다.
"천사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거든."
미켈란젤로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다시 사다리를 올라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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