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독일신학

2009. 5. 19. 22:52

   

1. 이 책에 관하여

   이 책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느냐에 대한 대단히 심오한 책이다. 어느 익명의 작가가 1350년에 쓴 책을 마틴 루터가 1518년에 출판하였으므로 [마틴 루터의 독일신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루터는 이 책을 출판할 때에 서문에 "내가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및 만물에 관하여 배우기를 원하고, 또한 배우는데 있어서 [독일신학]은 성경과 어거스틴 다음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호프만 역시 이 책에 대해 "이 책과 요한 타울러 및 중세 말기의 신비주의자들에 과한 루터의 친밀한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곳에 임하신다는 지식을 통하여 교회적 한계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과의 합일을 암시해준다"고 했다.

   

2. 저자: 익명

   저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느나, 저자가 튜오톤 기사 수도회(Teutonic Order)에 속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에 있는 중앙 본부에서 신부로서 그리고 교장으로서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 튜오톤 기사 수도회 - 이 기사 수도회는 십자군 원정고 예루살렘에서의 활동 후에 두 가지 목적, 즉 병든 자를 돌보고 거짓 신앙에 대적하여 싸우는 목적을 가지고 봉사와 전도하는 군내단체로 개조되었는데, 이 수도회의 제복은 흰색 가운데 검은 색 십자가였으며, 회원들은 기사, 신부, 그리고 봉사자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오직 독일 귀족들만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이 수도회는 많은 영토를 하사 받았다. 1300년대에 이들 사역의 중심지가 독일의 서부 도시들에서 동프러시아로 옮겨졌는데, 아마도 루터가 1516년에 입수한 축소판 [Theolgia]는 프러시아에 있던 튜오톤 수도회를 통하여서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3. 내용전개

   본서는 서론과 본론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에서는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이 간단하게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실존과 자신의 거짓 교만의 완전 용해와의 관계 또한 동시에 이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윤리적 과제들을 다루고 있다.

본론에서는 56개의 간략한 장들을 통해 영혼과 그리스도의 관계, 우리의 본성을 통해 역사하는 마귀의 간계, 영적 삶을 찾는 자의 길에 놓인 장애물들, 독신과 교만, 구속 받지 못한 본성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거룩해지는 과정,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적들, 규범으로부터의 자유와 규범으로서의 속박 등에 관해서 묘사 되어 있다.

   

4. 독일신학의 배경

   독일신학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14-15세기 경에 영적, 도덕적 삶의 혁신을 부르짖던 단체인 하나님의 친구들(Friends of Brothers and sister of the Free Spirit)의 가르침과 비슷하나 자유로운 영적 형제 자매들(Brothers and sisters of the Free Spirit)이라고 불리 우는 윤리적 해방운동과는 상관이 없음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독일신학의 근본 배경은 1300년대 초기에 있었던 교황 사이의 갈등, 즉 성직과 왕권 사이의 싸움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의 프레드릭과 바바리아의 루이 사이의 전쟁 때에 있었던 역사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프레드릭은 뚜렷한 이유 없이 교황 요한 22세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그 근본은 교황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이는 지방 선거후들의 지지를 얻어 제국의 왕위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주권을 주장하는 교황의 요구와 이에 대항하여 독립국가가 되려는 야망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 있었다.

1322년 프레드릭이 사망한 후에 루이는 교황과 화해를 시도했으나 교황 요한 22세는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루이는 북부 이태리를 공격해 또 다른 교황을 임명했으며 곧 이것이 '파문'으로 이어졌다. 1324년 루이와 그에게 충성하는 자는 모두 파문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이가 정당한 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것을 백성들이 선언했으나 루이가 사건을 더 악화시켜 곳곳의 도시에서 쫓겨났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도미니칸와 프란시스 수도회가 있다.

이러한 추방의 과정 중에서 성직자들과 수도승들이 유랑을 하다가 "하나님의 친구들"이라고 불리는 부흥운동에 가입했다. 그와 더불어 "속박에서 풀려난 자들", 곧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이라고 불리는 단체가 생겼다.

"하나님의 형제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인간 안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과 인간의 최종적인 연합 등에 대해 가르쳤으며, 두려움이나 보상의 약속에 근거한 종교를 배격하였다. 특히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 모임의 자유주의적, 반 율법적, 비교회적 사상을 대적하였다. "하나님의 친구들"의 교회의식은 내적 방법을 강조했다. 반면 "자유로운 영의 형제들"은 모든 사건, 창조된 모든 것은 필요, 즉 아무 것도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에 함축된 필요에 따라 발생한다는 확신에 뿌리를 두었고 인간 영혼의 극치는 하나님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독일신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양상은 물리적 유형의 재앙들이다. 1300년대 초반은 지진, 강한 태풍, 흑사병의 피해 등으로 어려움을 겼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탕에는 르네상스라는 기본신념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앙을 당했을 대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인간의 심리여서 유대인들이 화형을 당하는 희생이 발생했다. 즉,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 15:8 말씀처럼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하고 찬양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멀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파문"사건을 정리하면 사람 밖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안에서 영생의 경험과 표적을 찾게 되었다.

 

5. 내용 요약

   이 책은 하나님 안에서의 생활을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으로 즉, 영원한 영적 세계와 피조세계를 구분함으로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삶은 영원한 목적지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에 의 도전과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이 유일하고 마지막인 것처럼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도전으로서 이해 되어진다.

"성경과 어거스틴 말고는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그리고 만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해 이 책만큼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없었다."라고 루터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다루기 위해 저자는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죄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저자는 하나님과 인간에 관해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 가운데 그 영원한 원칙들을 적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과 인성을 취하심으로 타락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3장).

즉, 시간과 영원, 하늘과 땅, 영원한 영적 실재와 세상적이며, 인간의 삶을 완전한 방법으로 조화시킨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된 것들이다. "온전치 못하고 부분적인 것들은 바로 이 온전함으로부터 유래된다."(제1장은 저자의 말과 일맥 상통한다(물론 둘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정결해지고, 깨끗해지고, 자유로와 지기 전에는 아무도 비추임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비추임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세 단계인데, 첫 번째는 정결함이고, 두 번째는 비추임이며, 세 번째는 연합이다." 저는 신비적 체험의 세 단계. 정화, 조명, 합일에 대해 익숙한 것 같다(정화, 조명, 합일은 신비주의의 구원의 순서이다).

또한 11장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경험은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믿고 행할 수 있는 두 개의 길과 같으며 그 두 길을 올바로 걷는 자는 행복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두 상태 중 어느 한 상태에 있다면 그는 바른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두 길이라는 것은 지옥(죄에 대한 참다운 애통과 회개)과 천국(영원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평과, 기쁨, 황홀, 즐거움 등을 알게 되는)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자신에 관해 알고, 그의 무가치함과 그에게 임할 저주를 피부를 통해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그는 "영원한 선외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그 영원한 선이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11장).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즉 참 사랑 안에서의 선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막강한 장애물이 있다. 이 근본적인 악의 이름은 곧, "나", "나의 것", 그리고 "나를"이다(2장). "자신을 깨끗하고 분명하게 잘라 버리라"(제20장). "자신", "나", "자아"의 망각,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세상의 가치와 인상에 의해 형성된 "낮은 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고 많은 불완전한 관심으로부터 떠나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선을 추구라는 권면은 일상적이고 세상적인 삶을 부인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서나 그가 존재하는 그곳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데 더욱 열정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일시적인 이 세상도 만유 안에 계시고, 동시에 만유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으시는 곳이 없으니, 곧 영원하신 뜻이 아닌 것을 바라는 그것이다."(제42장). "나 없이 행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지 않고, 나와는 다른 것을 원하는 자는 나를 거역하여 원하는 것이다."(42장) 하나님의 의를 떠난 모든 뜻은 죄이다.

인간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상태로 회복시키고 "나", "자신"을 앞세우는 불순종을 극복하는 것이 이 책의 관심사이다. 그래서 선은 "오직 영원하시고 선하신 그분께만 있다"(제4장)는 것을 강조하고, "나", "나를", "나의 것"이라는 자기 중심적 가정이 바로 타락이요, 배신이며 불순종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죄라는 것을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바 곧 선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두 가지 "삶의 양상" 즉 순종과 불순종, 참 사랑과 거짓 사랑의 대조로서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그 한편의 배후에는 루시퍼가 서 있고, 다른 편의 배후에는 그리스도가 서있다.

 

6. 토의 내용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또한 "경건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정결함, 비추임, 연합의 단계에 이르는 특히 연합에 이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25장). 연합이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수한 휴식, 자기의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외적인 것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책 전반에서 "나, 나의 것, 자아"는 잃어버린 바 되고 버린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과 경건은 은둔이나 도피의 의미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삶과 부딪쳐 자신들이 변화되고,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의 삶과 더불어 경건의 모습은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할 때 그 살아 계심이 우리 안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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