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견고하여져

 

(롬4:18-22)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믿음이 실현되기까지는 큰 시련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에는 반드시 믿음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끼지는 악한 불신앙과 싸워서 이겨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다시 말해,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못 믿을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본문 말씀보다 2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이 80세 전후가 되었을 때 있었던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들어 온지 5,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 약속이 이루어질 이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밤, 천사가 아브라함을 바깥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가리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본문 18절에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는 말씀으로 간략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하나도 없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놀랍게 다 성취되었습니다. 하늘에 별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많아진 것입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오늘날 문명의 과학은 세상말로 공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를 가고, 로버트가 일하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전화뿐 아니라 인터넷, TV, 컴퓨터까지 포함해서 손에 가지고 다니며 일하게 된 세상입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원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능자, 절대주권자로 알았기 때문에 아무조건 없이 믿을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지혜가 있어서 진리의 말씀에 선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3)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여기서 아는 것은 앞에서 말하는 진리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고 자기를 보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조건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지식입니다. 앞에 말한 지식은 불변하는 진리의 지식이고 여기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는 지식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를 볼 때 몸은 죽은 것 같고, 또 사라의 태도 죽은 것같이 아이를 전혀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조그만 파도에도 요동하는 믿음은 아닌지요?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 모습
약속 받은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

2.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20-2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1)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약속을 하시고 나서 20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자식을 주셨다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의 주변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자식을 잘도 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부러워했겠고 그는 자식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20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브라함이 의심을 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2-3)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17:17-18)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거짓말이냐 아닙니다. 보통 생각하기를 믿음이 좋다하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의심하며 믿음으로 나가려고 싸움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믿음입니다.

모세도

(11:21-22) 모세가 가로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엘리야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의심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2)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누구도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여러 의심과 시행착오들을 봅니다. 하녀인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얻는 것이나, 가나안 땅에 가서 흉년이 들므로 애굽으로 가며 아내를 누이라고 위장하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성장해 갔습니다. 결국은 믿음이 견고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2: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3)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이란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음을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지니 이제는 의심이 없는 확신의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도 점점 성장하여, 큰 믿음도 중요하지만 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의심 없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다고 하던 그가, 창세기 251-2절에 그 아내 사라가 죽고, 백세에 난 이삭은 자라서 장가보낸 후 아브라함이 장가를 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6형제나 낳았습니다.

(25:1-2)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3.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다는 말은 계산하다, 돌리다, 예금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계산하셨다는 말입니다. 의롭다 하심이란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믿음을 받으시고, 그것을 의로 여겨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의롭지 않습니다. 또한 그 자신의 의도 없습니다. 여전히 죄인된 인간으로서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불신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시고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나의 구세주 되심을 믿을 때 부족하고, 의롭지 못한 우리를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받아주십니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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