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로마서 4:19-20)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로마서 4:19-20)
(롬4:19-20)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그 말씀과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몸과 아내 몸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자와 같이 되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사람으로는 모든 것이 끝났으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식이 출생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모든 조건은 다 틀렸다 해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는,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데서 나온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되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해 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항상 불신만 나오게 되고 할 수 없는 것만 나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 그대로 믿었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되리라」자녀가 하나도 없는데,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모든 조건과 환경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1.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19절)
그의 육체는 이제 죽은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를 낳기에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대개 절망적이고 캄캄한 밤 같고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믿음가지고 하나님을 바랄 때, 하나님은 역사 하시고 응답의 축복을 하시게 됩니다.
(춘향전의 이 도령 나타나듯).
요셉도 총리 되기 전에 노예가 되어 감옥살이를 했었습니다. 도저히 꿈과는 반대적인 환경에서, 총리는 그만 두고라도 그 감옥에서 살아 나올 수도 없는 그때에,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출14:에 뒤에는 바로와 그 군대가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막아 절망적인 가운데 백성들은 불신과 원망의 말을 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 ...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똑같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
모세의 믿음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하시게 했습니다.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이 되고,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될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것은, 모르고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안다' 는 것은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다, 숙고하다, 발견하다, 지각하다‘ 라는 뜻으로 사람으로는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안에서는 될 줄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라는 경도가 끊어진지 오래고, 그의 태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믿음을 견고하게 가졌습니다.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을 알면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큰 믿음입니다.
세상에는 모르면 용감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자가 곰 잡는다고 곰을 잘 아는 자는 곰을 잡으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병자들도 “믿습니다”하고 기도 하다가도, 병원에 가서 사형 선고나 고치기 어렵다고 말하거나, 의사가 이 병은 무슨 병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믿는다던 믿음은 어디로 가고 불신과 근심으로 가득 하는 많은 사람을 봅니다.
행28:1-6 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에서 구원받아 섬에 이르니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
여기에서 바울이 독사에 물렸을 때 섬 주민들은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나 이제는 죽으리라. 그래서 그들이 아는 대로 바울이 몸이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알고 저희가 오래 기다려도 죽지 않으니 그들이 말하되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독사를 모를리 없고 물리면 죽는다는 것도 잘 알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독사에 물렸다고 소동을 피우지도 않았으며, 안 물린 자처럼 태연하였습니다. 독사에 물리면 즉시 죽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감기만 걸려 빨리 낫지 않고 며칠가면 폐렴에 걸리게 되고, 다음은 중병에 걸리게 되고, 그 다음은 합병증이 생기고 그리고는 죽으리라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병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한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대하16:12-13]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위에 있은지 사십 일년에 죽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
병원이나 약 이야기가 나오면 이상하리만큼 반박적인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약을 안 먹는 것이 병 낫는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나는 약 끊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되는데, 이 말은 나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낫지 않으면 원망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약을 초월하고, 의원보다 약보다 하나님을 더 믿는 믿음 되어 나음을 받음으로서 증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믿어지지도 안으면서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낫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행합시다.
[롬 12: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예 화> 미국 남침례교에 학장을 역임한 스카보로라는 유명한 박사님이 계십니다. 어느 날 박사님의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고 믿으세요. 과학적으로 얼른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그 이야기를 말예요. 이때 스카보로 박사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앞에 앉혀두고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나는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는 사실을 믿는단다. 뿐만 아니라 만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나가 물고기를 삼키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나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 일이 왜 불가능하겠니.
신앙은 과학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과학을 초월합니다. 신앙은 초과학의 세계까지, 아니 초자연적인 영역까지도 다룹니다. 신앙에서 초자연적인 영역을 제거하면 신앙은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단히 재미있는 사실을 말합니다. 현대 과학은 처녀 탄생의 교리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까지 발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886년에 티코 미로프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인공적인 단성생식에 성공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인공적으로 처녀 쥐를 만드는 실험까지 성공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자인 볼튼 데이빗 하이스 박사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단성생식을 가능하게 할 정도까지 현대 과학이 발달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정녀의 몸을 통해서 인간에게 구세주를 보내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2.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19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그 약속을 믿되,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아내 사라가 죽은 뒤(백세 이후) 후처 그두라에게서 여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되 나이를 초월하는 믿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25:1-4]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을 낳았고 "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하는 앵무새의 믿음이요, 참 믿음이 아닌 믿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11:21-44) 마르다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잘 믿으며, 순종하며, 섬기며 따랐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그에게 오라비 나사로가 죽자, 그녀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었나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잘되고 평안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그런 때야 누구인들 믿음이 안 좋은 사람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일이 뒤틀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떤 믿음인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마7:24-27) "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보기에는 똑같은 집인데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의 결과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오라비가 죽자 그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오라비 나사로가 죽기 전에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 나사로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죽은 것과 병들었어도 살아있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같이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셨거나 죽은 후에 오셨거나 무슨 문제가 됩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는 죽은 것이나 자는 것이 일반입니다. 믿는 자 우리는 이제부터 모든 일을 크게 보지말고 지극히 작은 일로 보시길 바랍니다.
[마9:23-44] "예수님께서 딸이 죽은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었습니다.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살아났습니다. 모두는 죽은 것을 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자로 보시니, 자는 자 깨우면 되기에 문제될 것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
마르다 :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2절 )
여기에서도 그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14:8-10]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빌립은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면서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니, 예수님께서 “빌립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마8:23-26 절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주여 !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하며 무서워 할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믿는다는 제자들이 이 일을 기이히 여겨 말하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23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많이 틀리게 됩니다. 말씀 그대로 받자!
마르다 : 마지막 날의 부활 때에 살아날 줄을 아나이다.(24절) 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 하셨는데, 그의 생각은 현실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지막 부활 때나 살아나리라는 것입니다. 현재는 죽었다는 것과,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래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생활에서 부활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5절)'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러기에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을 믿느냐 하십니다.
마르다 : “주여,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7절)
마르다는 예수님을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시요(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마16:16-17] "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얼마나 완전한 신앙고백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아닙니다. 아래의 대화에서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 : "돌을 옮겨 놓으라"(38절)고 명령하셨습니다.
마르다 :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절) 라고 대답했습니다.
신앙은 무엇을 잘 안다고 그것이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마르다는 부활도 안다고 했고,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참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인간의 이성의 계산으로 죽은 자가 장사한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데 살아날 수 없으며, 이것은 상식에 어긋난 것이요, 경험과 체험으로도 안 되는 것으로, 안 된다 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맞지 않고 생각에 틀려도 하나님의 명령을 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예수님 :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절)
오늘날 우리가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으로 판단해서 맞아야 믿으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23절)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 말씀을 그대로 믿는 행위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면 내 생각으로나,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으라"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죽은 자를 우리가 살리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우리가 죽은 자를 살려야 하는 것처럼 어떻게 살릴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니, 우리가 주님보다 앞서 행하지도 말고 뒤서지도 말고 하라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행위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주님이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겔37:3-10] "여호와께서 -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3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견고하여 -‘강하게 하다, 힘을 얻다’ 라는 말로 그의 믿음이 연단을 통하여 더 강해지고, 그 믿음이 힘을 얻었다는 것으로,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그러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다보니, 믿음은 점점 견고해져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믿는 자의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시길 원하십니다. 견고한 그릇에 응답을 담을 수 있고, 견고한 받침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을 수 있는 것처럼 견고한 믿음 위에 큰 축복과 은사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다 하면서도 얼마나 변덕스럽고, 요동하는 신앙이 많은지 모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요동치 않고 믿음에 굳게 서는 성도 되어야 합니다.
◆ 이순 집사 :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나팔관이 성장하지 못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은 그의 남편(정수일)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하나님이 치료하는 것 보았고, 시어머니(김복희)는 백납 - 백전풍(白癜風), 살가죽에 허옇게 어루러기가 생겨 점점 퍼져 가는 난치병으로 치료될 수 없는 병을 하나님이 고쳐 주심을 보았으므로, 그가 믿음으로 아이를 갖기를 원한다 해서 새벽에 나와 기도하라 했더니, 그 해 아이를 갖게 되었고, 남․여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사 26 : 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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