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얍복강 회개  (창세기 32:22-25)

 

(창32:22-25)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야곱은 자기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것 때문에, 부모 형제 고향을 떠나 벧엘 광야에 홀로 처하여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잘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홀로 있는 광야야말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동안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아내 얻는데 14년 재산 모으는데 6년 세월을 보내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을 하다가 결국 빈손이 될 것 깨닫고 라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도망하였는데, 그 일을 안 라반이 형제들을 거느리고 7일 길을 쫓아가 야곱에게 이르나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제는 더 큰 문제가 있으니, 20년 전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일로 지금도 그 노가 풀리지 않고 에서가 400인을 이끌고 자기에게로 오고 있다는 보고에 두려움이 그를 억압합니다. 그의 두려움의 근원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3:10). 죄에는 이처럼 인간에게 두렵게 하고 마음을 약하게 만듭니다.

야곱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수단을 총동원해 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려움과 죄의식이 더욱 자신을 괴롭힐 뿐이었습니다.

(32:7-8) 두 떼로 나누고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하리라, (32:13-20) 뇌물작전을 세워보나, 범죄한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고, 벗어나려는 것은 마치 수렁에서 발버둥치는 것과 같아서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의지하던 재산과 처자식을 다 보내고도, 자신은 결코 얍복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처음 벧엘들에 홀로 있던 그 모습대로 다시 홀로 얍복강에 남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살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그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으며 바라던 형 에서와의 화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회개만이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되며, 굳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녹일 수 있습니다.

 

1. 야곱의 죄

 

1) 죄는 두렵고 답답하게 합니다.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평안했을 때에는 형을 속인 죄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몰고 온다하니20년 전에 내가 형 에서를 속였는데, 20년이 지난 오늘 그 죄 값을 받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죄가 없다면 형 에서가 400명이 아니라 4,000명을 거느리고 온다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만, 죄란 20년이 지나갔지만 죄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히고 정죄하며 두렵게 합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았고, 외삼촌 라반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30:41-43), 레아와 라헬 형제간과 몸종을 아내로 삼아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사람 야곱도 아내를 4명이나 거느리고 살았으니 믿는 자가 아내 몇을 거니려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18:18)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 형제를 취하여 하체를 범하여 그로 투기케 하지 말지니라 "라고 하시며 이러한 가증한 일을 행하면 토하여 버린다고 하십니다.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죄인임에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그를 붙잡으려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제야 자기의 죄가 생각이 났고 두려워하며 답답해합니다.

[32:23]“너희가 만일 그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줄 알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2) 회개는 아니하고 인간 방법만 생각하는 야곱

(32:7-8)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

 

철저한 인본주의입니다. 한때를 잃더라도 한때는 건지리라. 야곱은 자기 목적을 이루는 일, 아내와 재산 모으는 일에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행하여 외형적으로 성공을 한 것 같지만, 자녀교육, 사람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는 실패한자 입니다. 야곱은 인간의 수단 방법을 잘 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에 배부르리라

 

3) 야곱이 기도를 합니다. (32:9-12)

(32: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기도하므로 나의 하나님이 되지 않았으니 기도해도 힘없는 기도요, 11"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에서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야곱이 회개는 하지 않고 도움만 바랍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형과 삼촌을 속였습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회개기도 먼저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회개치 않은 기도는 응답하지도 아니하시지만 본인도 기도해야 확신이 없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회개하자.

야곱이 기도하고 한 일이 13-21절에 에서에게 뇌물작전을 쓴 것을 보면, 기도는 하되 확신이 없는 기도였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요일3:21) "사랑하는 자들아 !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4) 에서를 위한 야곱의 뇌물작전 (32:13-23)

에서를 두려워하여 야곱은 자신의 소유 중 상당량을 떼어 용서와 화해를 위한 선물로 삼았습니다.

(32:13-15) "야곱이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

에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각본을 그 종들에게 말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모든 무리를 얍복 강 건너에 보냈습니다(21-23).

욕심 많은 야곱이 이 많은 뇌물을 죄 때문에 잃는다 생각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 그러나 그것으로도 죄는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위기를 당했을 때에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도움을 구하지 않고 소와 양과 값진 예물들을 종에게 들려서 형 에서에게 전하고 그 노여움을 풀어보려고 하였으나, 그런 뇌물로는 에서의 마음을 돌릴 길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봉착하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뇌물을 들고 사람을 찾아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2. 하나님의 간섭

 

1) 빨리 깨닫고 돌아오라

야곱은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머슴사리 하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세상 재미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

[딤전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3141절에 라반이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 하였다고 불평하는데, 불평보다는 잘못된 삶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도, 구하지도 아니한 야곱을 불쌍히 보시고 그에게 오셔서 고향으로 가라하십니다.

(31: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20년 동안 수고하여 얻은 모든 소유를 라반의 손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

 

2)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인(24-28)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제일 먼저 홀로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교만도 자랑도 버리고, 자신의 무능을 알게 되고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됨도 알게 되어 겸손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인이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자기부인이란 ?

 

재물을 의지하지 말아야합니다.

20년 동안 피와 땀을 들여 모은 재산입니다. 많은 소유를 얻었습니다. 사람은 재물 있으면 그 재물을 의지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자.

어리석은 부자 (12:15-20)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11:28]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사람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 열두 명의 자녀, 그리고 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위험을, 또는 생명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할 수 없도록 야곱을 홀로 남겨 두었습니다.

[17: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자신을 의지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안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와 힘으로 살아가려는 교만한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더 이상 자신을 믿고 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아는 죽고 하나님 앞에 포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20년 동안 부모와 고향을 떠나도록(모세를 출2:15-에서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몰아내 훈련을 시키듯)하여 훈련을 받았는데도, 오히려 꾀와 속임으로, 또는 자기노력과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을 부르지도, 의지하지도 아니합니다. 여전히 자기 방법대로 자기 계획대로 살아갑니다.

 

환도뼈를 치심

얍복강변에 홀로 있게 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야곱을 상대로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이기려고 온힘을 다합니다. 꺾어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 자기아집, 끝까지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스러움이 꺾이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밤이 새도록 야곱의 인간의 의지와 고집으로 살았던 것을 벗겨보려 했지만, 야곱의 인간의 잘못된 고집스런 성품을 이길 수 없으므로, 마지막 방법이 환도뼈를 쳐서, 자기 힘과 수단 방법거짓으로 살수 없도록 했습니다.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

환도뼈는 상체와 하체를 연결해 주는 골반뼈입니다. 이 뼈가 손상을 당하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이렇게 위골이 되자 야곱의 자세가 바뀌어 집니다.

우리의 환도뼈는 무엇입니까? 나의 재능과 지식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나의 고집과 내 방법과 내 뜻의 환도뼈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환도 뼈를 하나님께서 치시기 전에, 바울처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자신을 치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께서 치실 때까지, 고집스럽게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손보시기 전에 우리 스스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것은 씨름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것은 환도뼈가 위골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와 계속 씨름을 한 것이 아니라, 인간생각으로는 쓴잔을 마실 수 없으나, 아버지의 뜻이라면 잔을(십자가 죽음) 마시기로 자신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축복해 달라고 애원하는 야곱

26절 이제는 씨름이 아니라 애원합니다. 지금까지는 재물과 많은 처자식과 짐승, 그리고 종들이 있으면 그것이 복이요 힘인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요,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도움을 바라지도 아니하고, 인간 힘과 꾀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두 손을 들고 항복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환도뼈가 위골 된 야곱 씨름은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 후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에서와 싸워야 할 경우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서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사람이 되고만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환도뼈가 성해도 에서를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두려워 떨었는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엘리사 같은 능력주어 형 에서의 군대를 이기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야곱을 도와주심이 아니라 환도뼈를 절단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야곱처럼 우리들의 환도뼈가 위골이 되지 않으면 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아직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믿습니다. 이 뼈를 치신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힘에 의지해 왔던 야곱을 완전히 꺾음으로써, 이후로는 하나님만을 의지케 한 것입니다. 즉 이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때 곧 강함이기 때문입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

 

축복하는 석상 이미지
성도는 마땅히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3 . 축복의 사람 야곱

 

1) 이스라엘이라 부르라. (32:28)

야곱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란 뜻으로 자기만을 아는 이기적이고 속이는 자 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묻습니다 . 몰라 묻습니까 ? 아닙니다. 그 입으로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내어놓고 회개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이름이 야곱입니다. 사기꾼, 속이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이 말은 다시는 야곱이란 이름같이 살지 말고 이스라엘같이 살아라 해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멸시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교만, 거짓, 욕심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회개를 미루지 말고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합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예수 믿는다 면서도 거짓말하고, 사기도 치고, 자기 힘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이 지금까지 노력하면 안된 것이 없습니다. 장자의 권한, 원하는 부인, 양과 나귀의 새끼들도 좋은 것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계획대로 다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잘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잘되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 하나님 없이 삽니다.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부족함과, 내 연약함을 알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의지하며 살 때가 바른 삶이요, 그때에야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게 됩니다.

 

2) 브니엘 하나님 (32:30)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뵈었다는 것입니다.

29절 야곱이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찌 감해 내 이름을 묻느냐?"고 책망하고 야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30"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었더라"

 

야곱이 이름을 물었던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는데,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아니해, 혹 하나님이 아닌가 해서 물었습니다.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더군다나 야곱은 하나님을 대할 때 죄인이었습니다.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말합니다. 30절에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었더라" 이말의 뜻은 환도뼈만 위골이 되고 죽지 아니했으니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야곱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아니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환도뼈 하나만 치시고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나를 치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와 고집을 봐서는 죽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야곱은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할 자기를 하나님께서 자기 죄를 용서하시고 살려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사는 것은 죽은 나의 삶으로 사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3) 절지만 승리자입니다.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병신 만들어 절뚝거리며 걸어가게 했습니다. 꼭 그리해야만 복 받은 사람입니까?

꼭 죽을병 걸려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 해야하고, 사업이 망해야 주님께 오는 것 아니라 병들어 기도해 하나님이 치료하심도 은혜지만 병들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은혜요, 사업이 망해서 회개하고 회복해 주시는 것도 은혜지만, 사업이 망하지 않고 축복 안에 사는 것이 더 은혜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홀로 세우시기 전에 내가 먼저 골방에서 기도하여 하나님 앞에 잘못은 회개하고 바로 살며, 환도뼈 하나님이 치시기 전에 내 스스로 나를 쳐 굴복시키는 것이 복입니다. 절면서 새 사람 되어 하나님 섬기는 사람도 있지만, 절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사는 사람이 더 복됩니다.

[18:9] “만일 네 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야곱은 절뚝이며, 형 에서 앞에 나갑니다. 지난날에는 성한 몸 가지고, 야곱이 형 에서에게 자기를 형이라 부르라고 놀리던 그가 아닙니다. 아무리 악한 형 에서 일지라도, 옛날 야곱이면 몰라도, 다리를 절룩이며, 오는 병신 된 아우를 어찌 칼로 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내 몸을 쳐 회개하고,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문제가 아니라, 나 때문이요, 내 탓인 줄 알고, 나의 죄를 주 앞에 고백하고, 회개할 때 야곱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4. 변화된 야곱 ( 33:1-20 )

 

1) 회개한 야곱과 옛 사람 (33:1-2)

(33:1-2)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

 

얼마나 철저한 사람냄새가 납니까? 앞에는 사랑치 안는 자, 뒤에는 사랑하는 자, 야곱이 왜 이렇게 줄을 세웠습니까?

혹 형 에서가 공격을 하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도망칠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아직도 야곱은 자신의 옛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그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한 증거요, 온전히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머리를 사용해서 마지막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32:20 에 야곱이 맨 뒤에 있어 다 죽어도 다 희생이 되어도 자기는 살아야 하겠다는 이기주의에서, 이제는 자신이 맨 앞으로 나갔다는 것이 변화된 모습입니다.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삼촌 라반에게 20년이나 맡겨서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래도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칼로 위협하십니다. 얍복강에서 홀로 남아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그래도 안되니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이만치라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방법이 나오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세겜에 땅을 사 자리잡고 살려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딸 디나 강간 사건을 통하여 (34:1-) 결국 벧엘로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꼭 무슨 일 당하고 변화되지 말고 미리 회개하고 행하자.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셔서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부르셔서 온전히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2) 일곱 번 몸을 굽혀 절함. (33:3)

3그는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형 에서 에게로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전에 하던 거만한 모습이 아니라, 야곱이 형의 용서와 은혜를 입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일곱 번 그것도 땅에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왕에게나 하는 행위요, 완전히 굴복의 표시며, 주로 섬김의 표가 됩니다.

그러자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

 

20년 동안 원수로 살아온 쌍둥이 형제가 극적으로 상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수로가 아닌 입 맞추고 우는 사랑의 관계로, 그것은 야곱이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혀 형 에서 에게 절하는 엄청난 변화 때문입니다.

 

3) 형님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로 보았습니다. (33:10)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옛날, 장자의 축복권 때문에 다투던 형제입니다. 하나님 얼굴로가 아나라 형으로도 인정치 않고, 나에게 형님이라 부르라고 하던 야곱입니다.

(33:10)"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이다 "

 

이제는 옛날의 야곱이 아니라 마음이 바뀌니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야곱이 형을 하나님으로 보는 야곱이 변하니, 옛날의 에서도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 이 엄청난 은혜는, 야곱의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로, 20년이나 맺힌 에서의 원한을 녹여, 에서도 하나님 얼굴 같은 얼굴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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