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네 길을 가라

2013. 6. 18. 22:26


 일어나 네 길을 가라(야이로의 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을 했다.

예수님은 회당장 집으로 가서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 쿰!" 외치셨다.

소녀는 즉시 일어나 걸어다녔다(막 5:21-43).


성경은 그 소녀가 '열두 살이나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강조한다. 이 말은 이 소녀가 단순한 소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성장한 여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그 당시 의식에 의하면 이미 이 소녀는 결혼할 나이의 처녀가 된 것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야이로의 '딸아이'는 죽은 듯이 자기 방에 누워 있다.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소녀 아니, 다 큰 처녀는 아빠의 귀여움만 받으며 자라 어리광을 부리며 아직도 의식은 '어린아이'다. 결혼 적령기의 처녀가 되었는데도 아버지에게는 귀여운 딸아이다. 딸은 한 여자가 되기보다 아빠의 편안하고 따스한 품에 안겨 영원한 아기로 머룰고 싶다. 바깥 세상과는 담을 쌓고 아버지 보호영역 안에서만 아무 문제없이 자란다. 이로써 이 딸은 성숙할 기회를 빼앗겨 버려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의존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인간, 산송장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딸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야이로가 딸을 포기해야 딸이 살아날 것이다. 딸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곧 딸의 죽음을 의미한다. 딸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것, 즉 독립하는 것을 성서는 '죽음'으로 설명한다. 의학적인 의미의 사망이 아니라, 내적의 의미의 '떠남'이다. 아버지 야이로에게 딸은 지금까지 독립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것' 이었다. 딸의 입장에서도 자기는 지극히 고맙고 위대한 아빠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의 '딸아이'가 죽어야 참 인격체인 한 소녀, 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자기답게 삶을 활짝 펼치고, 풍요롭고 다양한 삶을 시도할 수 있도록 자유와 용기를 주는 것이다. 상처받고 다치고 쓰러질까봐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랑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죽이고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 사랑할수록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 두고 성숙할 수 있도록 내보내야 한다.


예수님은 의존적이고 순종적인, 두려움으로 가득찬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네 길을 가라고, 스스로 네 삶의 방향을 선택하라고 외치신다.


"달리다 쿰!"(소녀야 일어나거라!)


주간기독교 10월 14일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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