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약신학의 동향
국내도서>종교/역학
저자 : 게르하르트 F. 하젤 / 장상역
출판 : 대한기독교서회 198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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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자 : G. F. 하젤

▷ 목 적 : 신약 신학의 기원 및 발전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개괄하여 현재가 과거에 뿌리박고 있음을 다시 상기 시켜주고, 신약의 중심과 연관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어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에 관계와 다양한 국면을 다루었다. 이것을 토대로 신약신학을 하기 위한 견해를 제시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친숙하지 않던 신약신학을 접해보고 더 나아가 현재의 논쟁들과 문제되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 보다 창조적이고 학문적인 사고를 하도록 돕고자 하는데 이 글을 목적이 있다.

▷ 내용 요약 및 비평

신약 신학의 방법론

1. 주제적 연구방법

1) 앨런 리차드슨『An introduction to New Testament』1958

리처차드슨은 신약신학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쓰여질 때, 그것은 반드시 사도적 신앙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믿음과 청종”이라고 부친 제 1장의 서두 문장에서 그는 “신약신학에 대한 고려는 신앙의 근본적인 개념에 관한 연구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방법론은 순수한 역사적 연구(기술적 연구)와 대치되는 것으로 구약신학에도 채택된 “고백적인 방법”에 가깝다. 리처드슨의 고백적인 방법에 관하여 비판적인 미해결의 문제는 신약신학이 “기독교의 신앙”의 틀로 쓰여져야 하는지, 또는 신약의 신앙의 틀로 쓰여져야 하는지, 나의 신앙의 틀로 쓰여져야 하는지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는 정의되지 않은 채로 “기독교의 신앙”을 말하기 때문에 학문적 객관성이 무너질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주제적 연구방법은 신약의 통일성을 나타내게 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그의 책은 주제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주제 선택의 주관성과 함께 다음의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각 장들의 연결성의 결여, 둘째 창조, 인간, 율법, 윤리와 같이 중요한 신약의 주요 주제들의 생략, 셋째 특히 주제적 연구 방법을 위한 방법론적 정당화가 문제된다.

2) 칼 쉘클레『Theology of the NT』1968

쉘클레는 통일된 신약신학을 제시하려는 꿈을 가지고 신약을 구성하는 각각의 문서들과 그 형성과 의미를 체계적으로 요약하여 서술하려고 비중이 큰 용어나 개념들, 주제들을 추구한다. 그는 “신약신학은 하나님이 새 계약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말씀, 그리고 이 계시에 대한 증언로서 신약의 책에 쓰여진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에 관한 말씀’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불트만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과 해석의 연구방법을 통해서 연구한다. 이 점에서 그는 가블러 -바우어-브레레-스텐달이 제창한 것과 같은 ‘기술적인 신약신학 연구방법’과 구별된다.

2. 실존주의적 연구방법

1) 루돌프 불트만(가블러-바우어-브레데 전통)

불트만은 그의 신약신학을 시작하면서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신학 자체의 일부분이라기 보다는 신약신학을 위한 전제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해 Stephan Nail은 “신약의 모든 신학은 예수에 관한 신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불트만은 바울을 ‘기독교 신학의 창시자’로 간주하면서 요약하기를 “바울의 신학은 신앙의 계시 이전에 인간에 관해 교리나 신앙아래서의 인간에 관한 교리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신약신학의 관심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즉 기억되는 예수의 영상이 아니고, 부활 이후의 예수에 대한 신앙적인 영상, 즉 역사에서 고백된 그리스도(historic christ)이다.

2) 한스 콘첼만『An Outline of the Theology of NT』1967

불트만에게 있어서는 “신약신학의 전제”인 예수의 메시지를 콘첼만은 완전히 생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콘첼만에게 있어서도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은 새로운 자기 이해를 초래한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은 2천년 전의 사건들이 오늘 어떻게 의미있는가를 생각케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실존주의 해석에 알맞는 신약의 부분만을 취급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갖는다. 즉 이 연구 방법에 맞지 않는 신약의 부분들은 “내용-비판”을 당하거나 또는 전혀 고려에서 제외되었다.

3. 역사적 연구방법

1) 베르너 큄멜 『Theology of the NT』 1969

큄멜은 현대의 역사적 연구 방향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그의 과제는 “나는 예수의 설교, 원시 공동체를 배경으로 바울의 신학, 그리고 요한복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각각의 특징을 중심으로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이 진술을 근거로 이런 선포 형태에서 나타난 통일성에 관하여 질문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큄멜은 해석보다는 역사적 재구성을 강조하면서, 신약의 고대 저자들의 말들을 그 당시 독자들이나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하여야만 하였던 것과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불트만과 콘첼만에게는 “해석”은 재구성과 분리되어 실존주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반면에 큄멜은 재구성과 해석을 결합시킨다.

2) 요아킴 예레미아스

그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경건’주의에 역사적 연구 방법을 첨가시키고, 후자의 경우에는 순수한 역사적 연구에 신학을 포함시킨다. 그의 탐구는 역사적인 진리를 제공하고 가현적인 증발로부터 말씀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또한 현대인들로 하여금 예수 당대인들이 들었던 예수의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하여 “예수가 한 말 그 자체”(ipsissima vox Jesu)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예레미아스는 신약의 모든 주요 주제들과 예수의 선포사이에 연결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통일성) 여기서 메르크는 예레미아스가 각 복음서 기자들의 차이에 대해서 예수의 메시지와 형식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뒤로 숨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예수의 선포를 신약신학의 한 부분으로 제시하는데 대한 정당화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4. 구속사적 방법

1) 오스카 쿨만

쿨만은 구속사를 역사와 나란히 있는 역사로 이해하지 않는다. 구속사는 역사 안에서 펼쳐지고, 세속사에 속하는 사건들이 구속사적으로 해석된다. 쿨만에 의하면, “신약에서 의도하는 신앙의 결단이 우리로 하여금 사건들의 결과와 체휴하도록 요구한다면, 그 결과는 비신화화,비역사화 또는 비객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쿨만은 신약의 케리그마의 풍부함을 여기와 지금에서의 “점적인 종말론”으로 붕괴시킴으로써 종말론을 실존적으로 재해석하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는 대조적으로 “이미”와 “아직”의 구속사적인 긴장이 신약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2) 조지 라드

라드는 성서신학은 성서에 담긴 신학을 그 자체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 자체의 형식, 범주 그리고 사생형태에서 설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신약신학은 일차적으로 기술적인 연구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해석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라드는 불트만에 가깝다. 성서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역사의 무대 안에서의 인간의 구속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활동에 관한 기술이며 해석이다. 라드의 신약신학에서도 콘첼만, 예레미아스와 마찬가지로 마태, 마가, 누가의 신학이 제공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신약신학은 히, 막, 유, 벧후등 신약성서 연구에 있어서 의붓자식격인 신학까지도 취급하고 있다. 구속사 연구방법으로 인해서 그는 신약과 신약신학이 구약의 신학과 연결됨을 또한 해명하였다.

3) 레온하르트 고펠트

고펠트는 구속사를 일차적으로 약속과 성취의 틀에 한정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 비판 방법의 원칙들이 신약의 자기 이해와 비판적인 대화를 하도록 노력한다. 그는 재구성이나 기술적인 과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현대인과 현대사회는 단순히 신약성서의 증언의 “글자”와 직면될 수 없다. 따라서 “신약과 오늘날의 인간은 둘 다 서로 비판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더욱이 신약 신학이라는 것이 나의 기존의 개념들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약신학 연구 방법에 있어서의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나의 서평을 줄이고자 한다. 먼저 예수의 위치가 신약 신학의 전제(콘첼만, 페린)이냐 아니면 내용(예레미앗, 큄멜, 코펠트, 나일)이냐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기독교 신앙은 실제로 예수님 자신으로 부터의 시작인가 초대교회의 산물인가에 대한 것을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세 번째는 경전적인 문서에만 제한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초기 기독교 문헌들도 연구해야 하느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약신학이 기술적인 연구냐(역사적인 재구성) 아니면 신학적 연구냐(해석) 하는 것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많은 부분 상당히 혼란함을 주고 있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하고 여러 각도에서 그것을 보게 될 때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고, 또한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성경에 대해 많은 부분이 의문으로 남아 있으며 아직 맞추어지지 않은 퍼즐이나 혹은 조각들로 남아져 있다. 그것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맞추기에 많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혹은 맞추었지만 전혀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퍼즐이나 조각을 만든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무엇이 옳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보다 많은 것들을 조합하고 맞추어 보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가장 적합하고 가장 올바른 형태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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