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30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리 시대가 발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슬픔과 고통이 항상 존재하는 곳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도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 야곱도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도 이 땅에서는 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전에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나 지금은 일년이 못되어 강산이 변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옛날이면 쌀밥만 먹어도 만족하였으나 지금은 많은 것을 먹으면서도 만족이 없고 또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을 따라가자니 피곤케 합니다. 전에는 경쟁의 대상이 적었으나 지금은 개방정책으로 지구 모든 사람이 경쟁의 대상이 되었고 세상은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며 옛날에는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없어도 만족했으나 지금은 많은 것을 가진 자로인하여 불만 등 우리를 피곤케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치 무엇에 쫒기는 사람들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없이하고 잊기 위해 담배도 피워보고 술도 먹어 보고 더나가서는 아편도 맞으며 도피하려 하나 순간 지나면 더 허전한 것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진정한 쉼과 안식을 주리라고 하십니다.

 

I. 우리들의 짐

1) 수고의 짐을 진자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수고 없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일을 먹고 살게 되었으나 인간의 죄가 수고를 가져왔습니다.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셨고 (시104:23)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수고가 저주만은 아닙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했으나 그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고 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주안에서 수고 하는 것을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였습니다.

(딤전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2) 무거운 짐을 진자들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무거워서 죽고 싶을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믿음의 사람 의인 욥도 (욥3:23-26)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왕상19:3-4)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오는 무거운 짐을 우리가 어떻게 질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기에 곤비한 짐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겨야합니다.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② 주님을 사모하여 위로부터 주시는 힘으로 이겨야합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③ 믿음을 가지고 이겨야합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믿음이 약하여지고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이런 때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3) 우리가 지기에 무거운 짐은?

죄악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시38: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그 무거운 짐은 예수님이 져 주셨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② 마음에 분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마음에 분을 담지 말아야 합니다. (엡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분을 마음에 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분한 마음에 마귀는 들어와 그를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분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남을 해할 수 있습니다.

(잠27:3)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욥6:2-3)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 하였구나“

 

③ 세상 것을 얻고 누리려는 욕망이 무거운 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마음의 짐을 지고, 젊은이들은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몸과 마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분깃에 만족하며 다른 데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과 비교하므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아야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족하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전5:11-12)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2. 우리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무거운 짐과 아셔서 참 쉼과 안식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다 네게로 오라 누구를 오라하십니까?

 

1) 목마르고 돈 없는 자를 부르십니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쉼과 영혼의 평안을 목말라하는 사람은 주님의 초청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가면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 고통 받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질병과 사망으로 인한 사별의 고통 세상일로 인한 마음의 고통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고통에서 구원 하시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시107:13-14)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삼상10:19)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3) 죄인을 부르십니다.

(눅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4) 예수님의 부름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잔치에 참여치 못합니다.

(마22:1-14)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3.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서 얻는 쉼 (마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왜 무거운 짐이 됩니까? 나에게만 이런 무거운 것을 지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보상과 대접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참 평안을 얻으려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빌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였습니다. 그런 겸손이 되면 (눅17:7-10)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2)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을 오라고 하시고는 그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멍에를 짊어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셔서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로부터 온 죄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의 멍에를 벗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에게 멍에를 메라하는 이 멍에는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메우고 쟁기를 끌게 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가되 예수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갈 때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르듯이 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인생길을 주님이 친히 인도 하실 것 입니다.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①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혼자 힘으로 세상 짐을 지고 갈 때는 너무나 무거우나 주님이 같이 멍에를 메고 거시면 우리는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옛날 상여를 맬 때 키가 큰 사람 뒤에 작은 사람이 메면 실상은 키가 큰 사람이 멘 것이고 작은 사람은 그냥 따라만 가면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외롭고 세상사람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 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난 속에서 더욱 강하여지고 예수님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것 같이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환난의 때 낙심치 말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약속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 예화 >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자기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발자국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이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는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내짐은 가벼움이라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가 또한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주님을 사랑함으로 말씀을 따른다면 결코 예수 믿는 것이 무거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가정의 짐도 교회의 짐도 주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지고 갑시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을 향하여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와서 당신의 멍에 아래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갈 때에 진정한 쉼과 평안과 휴식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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