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사들의 고충에 대해 - [장미의 이름] 중에서

 

베난티오의 서안은, 커다란 벽난로를 등지고 있었다. 따라서 문서 사자실 안에서는 상석인 셈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문서 사자실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후일 문서 사자실을 자주 출입하면서, 혹은 문서 사자실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학승, 필사사, 주서사들에게 추위는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추우면 우필을 쥔 손가락이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평상 기온 아래서라도 6시간 정도 계속해서 쓰고 있으면 손가락에 경련이 이는데, 특히 엄지손가락은 누구의 발에 밟히기라도 한 것처럼 얼얼해지는 법이다.

 

옛 필사본의 여백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 어둠의 빨리 내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 질 좋은 포조주 한 잔이여], [날씨는 춥고, 방안은 침침하다, 오늘따라 양피지에는 잔털이 왜 이리도 많은가] 따위의 낙서는 다 문서 필사사들의 이러한 고통의 호소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있듯이, 우필 잡는 것은 손가락 세 개라도 일을 하는 것은 온몸이다. 그래서 온몸이 쑤시고 뒤틀리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 세트 (양장)
국내도서
저자 :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 이윤기(Lee EyunKee)역
출판 : 열린책들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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