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유용성에 대한 정보

  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손으로 옮겨 적는 것이 유일한 인쇄 방법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인쇄기로 찍기 시작한 15세기부터 인쇄기술은 나날이 발전했습니다. 이제 컴퓨터로 누구나 손쉽게 복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베껴 쓰기, 필사(筆寫)는 필요 없나요? 당연히 아닙니다. 필사는 인쇄방법일 뿐 아니라, 아주 오래되어온 글쓰기 공부법이기 때문입니다. 

 

  필사는 단순히 글자를 옮겨 적는 것이 아닙니다. 필사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필사를 정독 중의 정독, 아주 정밀한 '읽기'라고 말합니다. 200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안녕, 피터>의 황지운 작가는 '필사를 하면서야 책을 세세하게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끝에서 시작되는 세밀함은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는 필사를 할 때 양감이 훨씬 뚜렷하게 감지된다고 합니다. '눈이 내리는군요'라고 쓰면 진짜 눈이 내리는 듯하다고 하네요. 손으로 읽을 때 소설 속 장면 하나하나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필사를 할 땐 원문의 마침표 하나도 똑같이 베껴 써야 합니다. 평소 사소하다고 생각해 오던 것, 구두점, 띄어쓰기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정자로 또박또박 베껴 써야 합니다. 필사하고 끝이 아닙니다. 다시 원문과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대로 베껴 쓴 것임에도, 다시 살펴보면 틀린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쓰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필사 전 한번이라도 원문을 정독 해야 합니다. 제목, 구조, 주제 파악, 문맥의 흐름을 주의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눈으로 한번, 손으로 또 한번, 원문과 대조하면서 다시 한번 읽으면 명문은 시나브로 내 것이 됩니다.

  필사는 머리로 알던 것을 손으로 끌어내립니다. 필사를 하면 글의 얼개, 문단구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쉽게 명확한 문장쓰기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또 다양한 문체를 경헙하게 됩니다. 맞춤법, 띄어쓰기, 단락구분 등 기초적인 교정교열 실력도 좋아집니다. 이론서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필사는 해결해줍니다. 황지운 작가는 소설에서는 묘사법과 문단 구성을, 시에서는 시인의 감각을 배웠다고 하네요.

 

책과 커피가 있는 이미지
책 이미지

 


  여러 장점 중에서 최고는 나의 글쓰기를 돌아볼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필사한 작품은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입니다. 문장은 짧고 표현은 간결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인물, 상황 묘사는 세밀하더군요. 세밀한 묘사에는 많은 형용사와 부사를 써야 한다는 저의 고정관념을 깨주었습니다. 정황하던 문장도 간결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잡았습니다. 글쓰기에서 이보다 더 좋은 학습 방법은 없습니다.

  필사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택입니다. 명문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고 그 수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건 인간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쩌다 선택하더라도, 더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곁눈질 하다 '다른 걸 선택할 걸' 하며 곧 후회합니다. 필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법은 단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필사하세요. 한번 읽었던 것 중에서 골라보세요. 장르는 상관없습니다. 길든 짧든 개의치 마세요. 어색한 표현, 성긴 구성, 빈약한 내용이 가득한 글을 선택하게 되면 어쩌냐고요?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필사를 하며 자신의 글쓰기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바로잡는 것이니까요. 배우는 과정에서 좋은 것은 받아 들이고 좋지 않은 것은 자연스레 가려내게 될 거예요. 어려분이 베껴 쓰고 싶은 것을 베껴 쓰세요. 몸으로 겪는 시행착오는 여러분을 성장하게 합니다.

  종이와 연필(혹은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여러분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실행에 옮기는 것 뿐. 매일 30분, 고정된 시간에 필사하세요. 매일 하기 어렵다면 2~3일에 한번도 좋습니다. 바쁜 일상에 짬을 내서 손으로 읽어 보세요. 성경을 베껴 쓰는 수사(修士)처럼, 대장경을 옮겨 적는 승려처럼 여러분도 따라 쓰며 갈고 닦으세요. 글이 여러분 몸 안으로 스며듭니다.

 

글쓴이: 유진 (주)행복한 상상 독서경영 컨설턴트, 대학저널 2011년 12월호 수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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