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장 1-10절 도우심을 입는 사람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 권리나 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우리는 권한이라고 합니다. 권한을 부여 받은 사람은 그 범위 안에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근무 했던 부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제대하기 전에 유격 훈련을 2번 이상 다녀와야 했습니다. 저 또한 제대를 하기 위해 2번째 유격 훈련 명단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그 모든 것이 행정관의 권한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군종병이면서 주임원사 당번이었는데, 주임원사는 전화기를 걸어 행정관에게 전화했습니다.

“이 주간에 할 일이 많으니 이 친구는 명단에서 제외 시켜주게…”

 

여러분의 누구의 권한 아래에 있습니까? 아니 누구의 도움을 입으면서 하루를 살아 가십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사람이라면 분명 매순간 행복할 것입니다.

전혀 뜻밖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1. 진정한 권위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왕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7장 6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왕이 내린 조서를 보니

① 에스라처럼하늘의 하나님을 공경하고, ② 모든 헌물을에스라에게 부탁하고, ③ 에스라저를 위하여 모든 필요한 것을 제공할 것, ④ 성전 봉사자에게 모든과세를 면제할 것, ⑤ 정권을 에스라에게 위탁할 것(에스라 7:1 ~ 8:1).

 

예루살렘과 바사 왕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유대인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왕에게 도와 줄 권력이 있지만, 도와 줄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왕은 에스라에게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스라의 청을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권한 밖의 일이였습니다.

 

간혹 우리는 이런 말들을 듣곤 합니다.

 

 “그일은 저의 권한 밖의 일입니다."혹은 "저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탁했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권한 밖의 일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권한 밖의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사단도 권한 밖의 일이 존재합니다.

욥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기 2:6)


사단에게 욥의 생명은 권한 밖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생명만은 안됩니다. 사실 그 다른 든 것 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권한 밖의 일이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왕의 권한에 시선을 집중하지만 사실 그 권한을 부여한 진정한 권위자를 보지 못한다면 엉뚱한 행동만을 할 것입니다.

뒤에서 그를 지휘하고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진정한 절대 권위자를 만나야 합니다.

 

왕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그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 7장 6절을 잘 읽어 봐야 합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인정이 없었다면 왕에게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라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니 그 아래 있는 세상의 왕도 그를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권한 밖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왕이지만 자신의 권한으로 에스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 권위 아래 있는 세상 권한 밖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입니다. 세상의 왕이 아닌, 세상의 권력자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권위 아래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2. 진정한 권위자를 만났다면 그 도우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집에 과장된 권위자가 있습니다. 마치 모든 권한이 그에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심부름을 결정하는 가위 바위 보를 절대 응하지 않습니다. 설사 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심부름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의 아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 부부가 허락한 한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 하나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그의 손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저가 항공기를 타고 여행을 하고 돌아 오고 있었습니다. 저가 항공기의 특징은 싸다는 것과 모든 서비스에는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아들의 눈에 저가 항공기의 로고가 새겨진 자동차 세트가 들어 왔습니다. 자동차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모으던 시기였기에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10유로를 주고 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백화점에서 그 돈으로 더 좋은 것을 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조엘에게 그럴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 좁은 비행기 안에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동양인이 그러면 그렇지…

가뜩이나 저의 아들 손에는 몽골 반점이 있어 몇 번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점점 얼굴이 달아 올랐습니다.

더 이상 그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스튜디어스를 따라 갔습니다. 그 대가로 저는 10 유로를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제가 지불한 10 유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마음씨 착한 아가씨로 기억할 뿐 입니다.

그녀가 왔다 다 하면 싱글벙글이고, 10유로를 지불한 저에게는 온통 신경질적이고, 장난감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분명 제가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엉뚱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내가 뭐 했기 때문에 뭔가를 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을 때에…

그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기억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돈을 많이 들여서 비싼 1등석에 타고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1등석을 타고 하늘을 난다고해도하늘 보좌로 직행할 수 있는 특권까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식당 전체를 예약해서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천사의 수종을 받을 특권까지 얻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안락하고 편안한 의자에서 연주회나 경기를 관람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진정으로 예배하는 천국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특권이자 선물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라 7장 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바벨론을 떠나 4개월의 긴 여정 끝에 예루살렘을 도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에스라는

 

'나의 건강한 체력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운이 좋아서, 아니면 운송 수단이 잘 마련 되어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왕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지만 '왕'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 버립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했다가, 정작 사람들 앞에서면 입술을 얼어 붙도, ~ 뭐 때문에, ~ 누구 때문에, ~ 어떻게 했더니…

 

그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의 도우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으면 성장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10절에는 ‘키라’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 때문에, ~이기 때문에…
위에 상황들을 다 묶어서 에스라는 결단하고 결심했습니다. Devoted 돈을 시간을 노동을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1) 에스라는 율법을 더 연구 하고 준행하기로 헌신했습니다.

 

1절에서부터 6절까지 에스라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사장 가문의 준비된 학자 였습니다.

이미 성경에 대해서 정통한, 조예가 깊은 사람입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심했습니다. 헌신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율법을 더 연구하여 더 잘 준행해야지….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더 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반응으로 말씀 안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즉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말씀을 통해 현재 나를 발견하고, 말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말씀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그들을 돌보고, 말씀으로 나의 욕심과 두려움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위해 말씀 연구에 헌신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축복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움직일까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잘 이해하고, 더 닮아 가기 위해 헌신한 것입니다.

 

2) 연구하고 준행한 율법과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헌신했습니다.

 

가르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말은 쉽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잘 포장해서 전달하면 됩니다. 그러나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설탕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들이 있어 아이의 부모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별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래도 마을에서 존경 받고 따르는 어른의 말을 따르겠지 싶어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불러 놓고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음 주에 다시 오라며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 주… 다음 주에 다시… 그렇게 여러 번 돌려 보내더니 드디어 입을 열어 아들에게 충고했습니다.

 

 “설탕을 무분별하게 먹으면 몸에 안 좋으니 앞으로 설탕 먹는 것을 자제하거라.”

 

그리고 그 아들은 그 충고를 받아 들입니다.
부모님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아니 그 말 몇 마디 하려고 그렇게 뜸 들였나...
아니 진작에 말씀하시지 몇 주가 지나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어 보니 하는 말…

 

"싫은 나도 설탕을 좋아해서 말하기 전에 끊어야 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말에 지쳐 있습니다.
더 이상 말로만 하는 신앙과 설교에 지쳤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자녀들이 불신자들이 원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여전히 설탕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상대방에게는 먹지 말라는 허튼 수작에 지쳤습니다.

 

설탕을 의존하지 않더라도 설탕을 먹지 않더라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설탕의 먹지 않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든지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설탕을 취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도우심을 입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할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 앞에 에스라가 섰습니다. 이미 설탕이 찌들어 있는 그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가르치기로 헌신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헌신하길 원합니다. 말씀으로 살고 그것을 삶으로 가르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 에게 에스라가 가르치기를 결심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가르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권력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권위자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며 그것을 몸소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