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과 최면(催眠) 겔13:1-4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제일로 삼고 건강에 좋다면 어떤 것이라도 서슴없이 먹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대,․아무리 먹을 것이 없던 때도 먹지 않았던 벌레나 짐승까지, 정력제라면 돈이야 얼마를 하던 남이야 뭐라 해도 무시해 버리는, 부끄럼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국에 관광을 가서 곰 농장에서 산 곰의 몸에서 주사기로 쓸개즙을 뽑아내서,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을 보았으며 그뿐 아니라 뱀이든 벌레든 가리지 않고 먹어댑니다. 요즘은 건강요법으로 기(氣)를 살리는 요법에 관심이 많고 최면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TV 에서도 다투어 방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氣)와 최면(催眠)이 우리의 믿음과 다른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에는 육 속에 영이 있습니다. 육은 흙으로 만들고 영은 하나님이 코에 넣어준 생령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된지라 "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만들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천한 흙으로 만드시되 몸은 기이하게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시 139:14]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묘막측 하게 지음을 받았더라도 질그릇 같은 육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넣어 주심으로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전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

인간의 영혼은 흙집에 거하며, 흙덩이의 생명과 관리자가 되고 있습니다.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으며,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영혼이 육체 속에 생기를 넣어주지 않는 한 인간의 육체는 무가치하고,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영혼이 떠나면 송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혼이 떠나면 썩어질 육체를 영혼보다 더 중요시하여 몸이 우상이 되고 몸에 많은 돈을 허비하고 살면서도, 영혼을 위하여는 아무 생각도 않을 뿐 아니라 무시하며 미련하고 어리석게 살고있습니다.

 

1. 최면이란 ?

사람 속에 있는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 최면술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 하시매 빛이 있었고 " (요1:1-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하나님 같은 ‘말씀의 권세’가 있으므로 말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게 명령하면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최면을 걸 때 마음에게 명령과 암시를 합니다.

예(例) 나는 몹시 피곤하다. 졸린다. 잠이든다. 깊은잠에 빠진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진다(송장처럼) 등 말하는 대로 그대로 마음이 육을 지배하여 말한 대로 행합니다. ‘눈을 잠근다’ 는 암시를 했을 때는 눈이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눈이 떠지지 않고, 최면을 풀 때는 ‘하나, 둘, 셋 하면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는 암시를 하던지 ‘눈을 뜬다’는 식으로 최면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또는, “내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저 멀리서 자동차가 오고 있다. 그 차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나를 치고 달아났다. 나는 오른발을 치어 몹시 아프다.”라고 암시합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신기한 것은 생각으로만 다리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검사하는데 성한 발인데도 최면으로 아프다한 그 발을 기계로 검사하는데 진짜 사고나서 아픈 발과 똑같은 발에 고통과 증상을 일으킨다고 하며 불가사이한 일이라 과학으로도 의학으로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없다고 전문의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내가 청년의 때 교회 부흥회를 하여 참석했는데, 마지막 날 밤에 부흥 강사님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준다고 하더니 몇 사람을 나오라 하고서 그 사람들에게 눈을 감도록 하고 “나는 에덴동산에 거닐고 있다 생명 과일들이 열려있다 나는 그 열매를 손을 내밀어 따서 먹는다”고 암시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손을 내밀어 따는 흉내와 입에 넣어 먹는 것처럼 입을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마치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말했으나 그것이 최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도 개발을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의 신비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최면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예(例) 두통환자가 있다면 최면을 걸고 그 상태에서 암시를 줍니다. “잠시후 머리는 맑게된다” 라고 반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두통에서 돌려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낫게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알던 모르던 원하던 원치 않던 자기에게 최면을 걸고있고 또 최면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너는 멍청이야” 라고 반복하게 되면 자기 자신도 자기를 멍청이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에게 매사에 “나는 멍청이야” 하면서 최면을 걸게되어 진짜 멍청이가 되는 것입니다.

“너는 쓸모 없는 아이야” “너는 나쁜 아이야” “너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야” 등 어떤 것이든 반복하여 말하게 되면 그것이 최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마음에 매사에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고 행하는 삶이 될 때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으나 최면은 놀라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영은 영적인 면보다는 세상적이요 육적이어서 보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는 대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2. 마귀의 지배에 속한 영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성령의 사람이 되고 마귀의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이 있으며 선의 하나님이 있는 반면 악신 마귀가 있습니다.

악한자 마귀는 악한마음 잘못된 마음을 주어서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어두움의 악한 영의 지배아래 살아서 믿음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길들여있고 선보다는 악에 붙들려 있습니다.

[엡 2: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5: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 마음이 잘못된 마귀 것을 받아들이면 마귀의 지배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

[잠 23: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요일 3: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현대병은 신경성 위장병, 신경성 장염, 신경성 ○○병 등, 이름만 붙이면 병이 되는데 진찰해야 몸은 이상이 없는데 본인은 고통을 당하는 병들이 많습니다. 그를 주장하는 악한 것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중 위암에 걸려 죽었으면 아들은 위에 조금만 고통이 와도 나도 위암인가 보다, 부모가 회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으면 자기도 회갑 넘기지 못하고 죽으리라고 굳게 믿고있는 것을 봅니다. 거기에는 마귀도 역사하고 텔레비젼도 한몫을 크게 합니다. 유전적으로 그렇게 될 확률이 많다고 말하고 식생활이 같기 때문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하면, 성경 말씀은 안 믿어도 의사의 말은 잘 믿는 것입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으로 죽었으면 아들인 자기도 그런 병으로 죽을 것을 잘 믿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대로 되어서 과부 집에 과부가 생기고, 두 번 장가가는 가정에 자식도 그리되고, 병도 같은 병이 대대로 이어갑니다.

세상에는 유전의 법칙대로 될지 몰라도 그것은 의사들이 하는 말이며, 우리에게는 믿음의 법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전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경험․체험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지난밤 수고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경험이 있어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함으로 고기를 심히 많이 잡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계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따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 잘 믿었는데 망했다느니, 누구는 예수 믿고 믿음으로 병 나으려 했는데 죽었다느니 하는 말은 어디서 잘 듣고 잘도 믿습니다. 우리의 참 믿음은 그 사람들이 잘 믿었는데 망했는지, 믿음으로 했는데 병이 낫지 않고 죽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망할지라도, 나는 주 믿는 믿음에서 망하지 않고, 다 죽었다 할지라도 살 것’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시 91:7]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사위가, 인품으로나 인격으로나 신앙으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면(그 입에는 늘 찬송과 오직 예수 복음전하는 일이 직업의 일보다 먼저였음)이나, 어디에 내놓아도 모든 사람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간 경화에 걸려 고생할 때 장인 되시는 목사님(이분은 여러 은사가 있는 이름 있는 부흥강사였음)이 서울에서 오셔서 기도해 주시면서 “너는 양심가이지 믿음의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만한 믿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어찌 믿음이 없다 하시나’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분이 기도원에서 병으로 죽어 시체로 왔을 때, 나와는 서로 좋아했고 서로 잘했기에 나의 신앙도 흔들리는 충격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에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일까 ?

내가 목회자가 되어 병자들을 기도해 주면서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열심히 한다고 그것이 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 어느 사람은 열심히 교회 나오고 봉사하는데 그 속에 믿음은 심히 적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보며, “열심히 하는 것하고 믿음하고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도덕군자가 많고 사회봉사활동에 온힘을 다하고 자기 재산드려 선한 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믿는 믿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은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동거동락 하면서 자기들은 잘 믿는다고 하는데, 막11장의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막11:20-21]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따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아직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막11:2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

[막 4:40] 풍랑만나 무서워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행함에 대하여 반박할 것이나, ‘믿음이 없는 행함’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이 모두가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수레의 양 바퀴 같아서 한 바퀴에 이상이 있으면 신앙의 수레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맴돌게 됩니다. 믿음이 빠진 바퀴가 행함으로 열심히 갈려하나 빠진 바퀴가 축이 되어 돌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 행함 없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하지 않는 것도 역시 죽은 믿음입니다.

[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인데, 자기 생각으로 계획하고 (어리석은 부자, 눅12:) 하나님의 뜻을 거듭 어길 때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깨닫고 죽을병 들기 전 매맞을 때 돌아서자.

앞에서 말한 죽은 분이 목회 나와 장로들에게 고통 당하고는 목회를 그만두고, 목회 하면서도 직장을 놓지 않고 다녔는데(상당한 직장 수입 때문에), 직장생활로 온전히 돌아가면서 ‘나는 미국 유학 다녀와서 하나님 일 하겠다’고 끝까지 고수하다 미국 가기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토정비결이나, 꿈, 점쟁이가 말하는 것을 그리될 것 같은 마음에, 조그마한 무슨 일이 생겨도 꿈이나 점쟁이가 말한 것을 생각하므로 자기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는 그 꿈대로 당하고 점대로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맞았다고 합니다.

주님은 사주팔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 하십니다. 믿음의 법으로 삽시다.

또한 우리는 귀신 들려 미친 사람을 그 사람이 완전히 기계가 망가지듯이 어떻게 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나(我)라는 영에 다른 것이 더 있어서 나(我)라는 영을 억압하고 다스리게 되어서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친 짓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정신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이 있는 사람이며 다만 다른 것 -귀신이 그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또한 그런 사람의 말을 미친 사람의 말이라 하며 전혀 인정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분명 귀신이 주장할 때는 미친 자의 말이지만 아무리 귀신이 들린 자도 순간순간 본인의 영의 말도 나옵니다. 다시 말해 그 안에는 두 영의 싸움이 있는데 자신의 영이 침범을 당하여 패배자가 된 것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귀신은 꾸짖되 사람은 미친 자로 무시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여 말로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말고 복음을 전하여 잘못된 영과 분리하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본인도 자신의 영과 귀신의 하는 일을 혼동하는데 깨우쳐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귀신이 하라는 것의 반대로 유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귀신이 좋아하는 생각․행동을 버리게 하고(귀신은 비정상적인 생각․행동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듣는다고 어느 사람은 필요 없다하는데 아닙니다. 억압당하고 눌려있기는 하나 듣는 것이니 그런 것은 따지지 말고 전하여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영에게 귀신의 영은 배척하고, 예수의 영-성령을 받도록 도와 주어야합니다. 바울도 두 마음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롬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3. 성령의 지배에 속한 영

최면은 자기 속의 마음에 명하여 무엇을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마음을 개발한다거나 훈련을 시킨다거나 자기 마음에 명하여 무엇을 행하려 하는 것은 크게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일과 자신의 하는 일을 혼동하게 됩니다.

[겔13:2-3] "인자야 !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 "

우리는 자기의 영이 성령의 지배아래 온전히 들어가게 해야합니다. 이것은 마치 영이 귀신의 지배아래 있어서 미친 자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것 없음은 성령의 지배아래 들어가는 것은 귀신은 죽이는 영으로 오나 성령은 살리는 영으로 오시며, 마귀는 억압하는 영이나 성령은 자유케 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눅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최면은 마음에 명령과 암시를 주어서 뜻을 이룹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 마음에 암시가 아닌 바울이 말한

[빌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영의 역사가 아니고, 철저히 능력 주시는 자 주님이 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내가 예수 믿기 시작한 것은 군대 갔다와서 부터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박하던 자가 예수 믿으려하니 성경말씀이 거짓말로 들리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일년 이년도 아닌 평생을 믿는다면 모두가 바보는 아닐 것이고 무엇인가 있지 아니하겠느냐”해서 믿어보려고 열심히 성경도보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했습니다. 잘 믿으려는 마음에 10년 동안 여러 시험을 당하고 마지막은 내 몸이 관절염, 늑막염, 폐병으로 죽음 직전이었으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내병은 기도해서(약이 아닌 주님의 직접치료로) 나은 것은 알지만, 내게 신유은사가 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형의 집에 갔다가 조카 조광연이가 옷을 입지 못하고 벗고 앉아 있는데 보니까 온몸에 큰 콩 만한 종기가 있고, 전부 고름이 들어있어 가렵고 고통이 심한 것을 보면서, 내가 말하기를 “너 교회 안 다니지?” “예”하기에 “교회 나가라”하고 기도를 해주고, 하나님이 어떻게 낫게하시나 바라보았습니다(요나가 니느웨성이 어떻게 망하게 되나 보려하듯). 먼저 온몸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가끔 찌릿 찌릿 한다고 하는데, 고름이 점점 그대로 줄어들기 시작해 30분이 지나니 거의 없어지고 2시간이 지나니 그 자리가 자국만 남고 없어지는 것을 본 후로는 다시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눈으로 보려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지금도 이해가 되지는 않고 알 수는 없으나 믿는 것입니다. 다리에 난 혹이 기도 끝나고 보니 없어진 거나, 흐르던 고름이 흐르지 않는 것이나, 물도 먹을 수 없는 환자가 그 자리에서 밥을 먹고, 걷지 못하는 자가 바로 걷는 것, 폐가 구멍난 폐병 3기 환자의 폐의 구멍이 없어진 것 등 설명할 수도 없으나 모든 것을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주님이 하시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너무나 불신에 속아 살았으므로 늘 믿는다 하면서도 불신의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생각에 이해되면 믿어보려 하고 조금만 틀리면 버립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사람의 능력범위의 믿음이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전능자 하나님을 믿읍시다. 이해가 되지 않고 알 수가 없어도 주님이시니 얼마든 가능함을 믿읍시다. 하나님말씀이시니 믿읍시다.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자기생각으로 자기와 똑 같은 하나님 만들지 말고, 또 제약(말씀을 무엇은 믿고 무엇은 믿지 않는)시키지 말고, 전능자 하나님으로 일하시도록 온전히 믿읍시다.

나는 사실 성경대로 온전히 믿지 못해서 아쉬운 것이지 어느 사람들 말같이 “성경말씀 그대로 믿느냐 위험한 신앙이다. 너무나 극단적이다. 시대가 틀리다. 예수님과 제자들이나 가능하지” 하며 여러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래 말씀을 전합니다.

[요 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결론 : 우리 영은 범죄 후 하나님의 창조 때의 영이 아닌 죽은 영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영으로 다시 낳아야하는데 그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 영을 다시 새롭게 하거나, 또는 바꾸어서 새로 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요1:12) 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떨어진데서 다시 영결되는 것이요, 다른 말로는 하나님 자녀 되는 것인데 하나님 자녀 되면 성령을 우리 몸에 부어주어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됩니다.

[고전 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리고 이제는 우리 영은 성령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기독교는 수양하거나 도를 닦아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고 예수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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