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쓰시겠다하라 막 11:1-10

 

오늘 말씀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요 주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1-3절).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내시며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아셨고 주인이 누구인지도 아셨습니다. 요 1: 47-48 "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해서 예수님 앞에 왔을 때,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데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주님은 나를 아시고 여러분을 아십니다.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봅니다. 전능 자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할 때, 믿음과 담대함이 생깁니다. 또 한 가지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주님이 나의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내 마음을 감찰 하시어 모르시는 것이 없다고 생각 될 때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아십니다. 나의행하는 일과 나의 모든 마음의 생각을 주님은 아십니다. 그런 주님은 나귀새끼 같은 나를 쓰시겠다고 부르셨습니다.

(시139:2-3)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 주님은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3절)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1) 나귀새끼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군마, 경주마도 있고 좋은 말들이 있을 것인데, 나귀(당나귀) 그것도 나귀새끼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나귀 새끼가 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나귀새끼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 학벌로나, 인품으로나, 또 목사는 말을 잘해야 하는데 그것도 혀가 둔하여 말도 잘못합니다. 예레미야도 자신은 나귀새끼인 것을 알았습니다. (렘1:6-7)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수님은 나귀의 참 주인이시고, 나귀 주인은 나귀를 기른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청지기는 나귀를 기르다가 주인이 쓰고자 하면 언제든지 내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요 하나님이십니다.(요1:1-3) 우리의 생명도, 물질도, 재능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아 주께서 맡기신 생명과 모든 재능과 소유를 청지기의 자세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 누가 그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그 값이 다릅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귀는 흔히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나귀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나귀보다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보통 나귀입니다. 그런데 이 나귀가 유명해진 것은 주님에게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에게 쓰임만 받는다면 뭐 잘난 것 없어도,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주님께 쓰임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존귀해졌고, 요즘 장경동 목사님이 세상말로 뜨는 것은 예수님에게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배운 것이 없는 천한어부였습니다. 이 세상에 베드로보다 더 잘나고 더 배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에게 쓰임 받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위대한 인물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3)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 주님이 쓰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님이 부르실 때 즉시 따랐습니다. 아브라함도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예수님의 제가가 된 어부들도 즉시 부름에 따랐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이 부르실 때 즉시 영접하여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체하고 뒤로 미루면 기회를 잃게 됩니다.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2. 주님이 쓰시겠다할 때 핑계하지 맙시다.

1) 나귀 새끼니 힘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맙시다. 나귀 새끼는 예수님을 태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면서 너무나 힘이 들어 쓸어 질것 같고 주저앉을 것 같은 걸음을 걸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돈이 없어서 예수 못 믿겠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은 나는 공부 못해서 성경을 볼 수 없으니 못 믿겠다고 합니다. 귀가 있으면 들어서 천국갈수 있습니다. 무엇이 없어도 주님께 나오셔서 예수님 모시고 삽시다. 그 길이 때로는 힘든 십자가의 길이지만 생명의 길이니 갑시다. 어느 사람은 예수 믿는다면서 예수님은 등에 모시지 않고 혼자 제멋대로 갑니다. 그러나 나를 따르고자하는 자는 십자가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십자가 없이 혼자 가는 것은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2) 나는 나귀 새끼라 어려서 못하겠다고 하지 맙시다. (2절)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자란 후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지 마시고 새끼지만 쓰시겠다하시면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미루면 기회는 지나갑니다. 이 나귀 새끼가 자라서 힘 있고 훌륭한 나귀가 되어 그때 쓰임 받겠다했다면 그때는 전혀 쓰임 바 될 수 없는 나귀가 될 것입니다.

(막14:3-8)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 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추어가지고 나오는 것 아니라 지금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3)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 하십니다. (2절)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① 매어있는 나귀 - 사람은 누구나 무엇에 매여 있습니다. 가정에 매여 있고, 직장에 매여 있고, 세상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라면 바빠서 못 믿는다합니다. 주일도 바쁘다고 오지 않는 무엇인가 매인 사람들입니다. 한가한 사람들도 죄에 매이고 사단에 매여 있습니다.

(눅13:16)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② 자신을 매인데서 풀어 주님께로 끌고 가야 합니다. 세상 줄 끊고 주님께 나와야하며,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 되며, 마귀의 결박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길 바랍니다.

(롬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③ 결박을 풀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결심하고 노력해도 성령의 검이 없으면 결박을 풀지 못합니다. 도박, 술, 담배나 죄도 끊을 수 없고 더구나 마귀의 결박에서는 더욱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 심령을 변화시켜 결박의 줄을 끊게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바랍시다. 그러기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3.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겉옷과 나무 가지를 깔아 드렸습니다. (7-8절)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1) 주님을 모시고 일하려면 겉옷을 벗어야 합니다. 일군은 겉옷을 벗고 일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깔아 밟고 지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겉옷은 무엇이 묻을까 하여 조심합니다. 그런 옷을 신 벗은 발로 밟고 지나간다 해도 허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 옷을 예수님이 타신 나귀가 밟고 가도록 했습니다.( 이 겉 옷) 아집의 겉옷 .외식의 겉옷, 교만의 겉옷, 사치의 겉옷, 체면의 겉옷, 나라고하는 계급장의 겉옷을 벗는 것 뿐 아니라 예수님이 밟고 가시도록 하여 다시는 내고집대로 행하는 자가 되지 아니해야겠습니다.

어느 사람은 일은 잘하는 것 같은데 교만해 가지고, 나 아니면 할 사람 없다고 하면서 마음 상하게 합니다. 어느 사람은 돈 좀 내놓고 교회 짓고서 교회가 내 교회라고 주인 행세합니다. 어느 사람은 교회에서 나이 먹었다고 어른 행세만 하려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높인다고 높아지는 것 아닙니다.

* 옛날 이승만 대통령은 정동 감리교회에 나왔을 때 목사님이 이 앞에 와서 앉으시지요 라고 했을 때 거절하면서 “저는 여기 대통령으로서 온 것이 아니라 신자로서 왔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 주님은 길들여진 사람을 불러 쓰지 아니하셨습니다. 좀 이상하게 생각하겠으나 2절에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라고 하셨으므로 한번도 사람이 타 보지 아니했다면 길들이지 아니한 새끼입니다. 소나 말을 먼저 길을 들여 씁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하시질 아니했습니다. 주님은 길들여 지지 아니한 제자 어부를 불러 쓰셨습니다. 나도 길들여지지 아니했을 때 불러 목사로 쓰셨습니다. 왜일까요? 교인도 처음신앙이 잘못 길들여진 자들을 (남의양이라고도 하는) 아집과 굳어진 자기신앙으로 바로 잡기가 어렵습니다. 나무도 삐틀어져서 크게 자란 나무는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고집대로 하는 고집의 겉옷을 벗어 버립시다. 무얼 안다고 자기 뜻 자기고집으로 하지 말고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하시길 바랍니다.

(고전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요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3).자기를 들어내는 겉옷도 벗어버립시다. 내가 나타나면 나귀새끼 그대로 입니다. 등에 타신 예수님만 높임 받고 나타나야 합니다.

< 예화 > 나귀에 불상을 싫고 운반을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나귀에게 절을 합니다. 그러자 나귀가 우쭐대다가 등에 싫은 불상을 떨어 뜨려 불상의 목가지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칼을 빼어 나귀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뿐만 아니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맞이했습니다. 옛날에 왕들이 행차할 때 왕에 대한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그러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영광만을 위하여 사시길 바랍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4. 주님께 쓰임 받았을 때 상급

1) 무리들로 찬양을 받았습니다. 9절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등에 태우고 주님에게 쓰임을 받으면 세상에서 무리들에게 찬양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등위에 계신 주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나귀처럼 천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좀 잘났다고 해봐야 나귀입니다. 나도 예수님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군대에서 사단장 모시는 운전병은 일등병이라도 부대 정문 지키는 보초가, 그 차 지나가면 큰소리로 경례를 합니다. 일등병이라도, 대위 소령들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많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 주님을 등위에 태운 나귀새끼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에 함께 들어가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등위에 태우면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 저 천국에 들어가는 영광을 갖게 됩니다. 나귀새끼 아무리 잘난척하고 혼자 가봐야 마구간에 밖에 더 갑니까?.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예수님을 등위에 태운 나귀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가 보듯이, 주님을 등위에 태운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록에 기록되고 하나님께 상급을 받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기를 축원합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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