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 서평 

인석 저, 분도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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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동기

 

유감스럽게도 최근 수년 동안 기독교인들이 연관된 불미스러운 일들이 유달리 많았다. 교회가 사회 정화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 정화의 대상으로 강요받는 현실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개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본인은 자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의 비난에 앞서 나의 현재 삶의 태도가 미래의 교회 지도자의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가? 그러한 고민이 벌써 1년여가 되어 가고 있으나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차에, 본 대회의 추천 도서 중에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그 책은 벌써 오래전 나의 집사람에 의해 구매되어 있었으나 꼭 읽어야지 하고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몇 년을 보낸 책이었다.

 

본서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인 서인석 신부에 의하여 1979년에 저술되었다. 1979년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소위 잘살아 보세!’라는 성장의 구호 속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였고, 평화시장의 전태일 분신자살과 남민련, 인혁당 간첩 조작 사건(이후 세계 사법 암흑의 사건으로 평가), 끝내는 1979년 연말 박정희는 그의 경호실장에 의해 암살되면서 그의 16년간의 군사 독재 정권은 막을 내린다.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서슬이 퍼런 1979년에 하필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제목은 그 자체에도 적잖은 의미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느끼면서 이 책을 읽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교훈이 70년대에만 국한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70년대의 이데올로기의 혼란이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배금주의와 쾌락주의로 여전히 우리를 정의로부터 이탈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빈자에 대한 정의의 법들과 그 율법을 농락한 고관귀부인들 ’,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참 예언자들의 담대한 고발과 외침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사회라면 빈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국내외에 걸친 구조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도 저자의 탁월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빈자의 고통을 외면치 않은 예언자들과 예수의 궁극적인 관심은 사회의 개혁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배금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악의 세력에 있었고, 내적 인간의 개조를 무시한 제도의 개혁은 오히려 파국을 초래함을 경고하였다. (167)

 

저자는 책의 끝에서 술회하기를 이 글을 쓰는 중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마치도 그림자 마냥 따라다녔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고희 선물로 쓰인 이 책의 목적은 이 땅의 빈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억압에 대한 해방의 선언이며, ‘빈자들에 대한 정성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시대 민중의 고난과 사회 불의에 대해서 신앙의 원천인 성서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앎으로써,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현실 판단의 척도를 얻고 현실참여의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라는 것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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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약

본서는 출애굽과 예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의 신학을 대 기초로 하여서 5장에 걸쳐서 주제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주제와 관련하여 성서 전 시대의 경제, 사회적 분석을 한다. 2: 율법은 빈자의 권리. 20, 22-23, 19의 계약을 근거한다. 3: 빈자의 권리. 신명기 법과 레위기의 법을 근거해서 설명한다. 4: 예언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인. 빈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 불의에 대한 예언자의태도를 설명한다. 5: 빈자의 기쁨. 성문서를 근거한다.

 

1장에서는 빈자란 누구인가와 가나안 정착 이전과 이후, 포수기 전후, 예수의 시대에 걸쳐서 빈자와 사회의 불의가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그 영향은 어떠했는지를 경제 사회적 분석을 통하여 설명한다. 고아 과부 이방인 등의 빈자가 발생한 원인은 가나안 정착과 군주정체의 확립이었고 왕의 부역과 과세와 고리대금 등은 비참한 현실을 심화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성서의 J 기자가 가인을 정착자와 도시인으로, 아벨을 가난하며 양치는 자로 표현한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예수의 시대에 이르러 백성들은 로마의 관세와 성전세 등에 힘들어하고 있었으나, 다양한 부자 중의 한 그룹인 종교인들은 로마의 관원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고, 이들의 위선을 고발한 예수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2장에서는 기원전 12세기에 쓰인 출 20, 22-23, 19의 계약법을 근거로 하여 빈자의 당연한 권리와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말한다. 당시 빈자들을 보호하는 고대 근동의 관련법들과 비교하여 볼 때 계약법은 훨씬 우월한 가치를 현대적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출애굽에 근거한 본문의 은 빈자의 보호자요 해방자인 것으로 말한다.

 

3장에서 저자는 분배 정의의 주장을 기원전 8세기와 6세기에 기록된 신명기와 레위기의 법들-특히 땅은 하나님의 것-을 근거로 하여서, 갈수록 심화하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의 불의 앞에 성서 역시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빈자의 보호에 나서고 있음을 설명한다. 특별히, ‘십일조가 빈자의 몫이라는 것과 이것을 전국적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신명기 26:12-15이라는, 빈자의 당연한 권리와 노동자와 노예들의 권리까지 언급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는 불우이웃돕기가 아닌 하나님의 요구라고 분명히 못 박는다. 이러한 법 정신을 식량, 가족, 예배로 나누어 구체화한다. 유배지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유다이즘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에서 기록된 제관계문헌은 이후 모세 오경이 되어 이스라엘 이데올로기의 원천이 되는 가치를 지니는데, ‘희년이야말로 분배 정의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대표적임을 말한다.

 

비록 이것이 오늘날 현실성이 없다는 조롱을 받고 있으나,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5:17)’라는 예수의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그의 가르침은 이러한 사회적 법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법제는 국제적으로도 이뤄져야 하며 성서에서 성취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서의 법들이 항상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법들의 신학적 뼈대는 출애굽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며, 이러한 법 기능을 가능케 한 압력은 예언자들에 의해서였다고 뒤이은 4장에서 계속 설명한다.

 

4장에서는 빈자를 옹호한 예언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무엇을 말하였고 그것에 대한 지도자와 사회의 반응은 어떠하였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예언자의 정체를 밝히며 우리의 현실 적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침을 제시한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관점을 대변하는 자들(128)"이었고 흔히들 말하는 근본주의자도 혁명가들도 아니다. (134)" 그러나, “정치 행동에 적극적인 지침을 한다(136)"라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어두운 심판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적이었다"라고 했다. 그들은 혁명을 일으킨 적도 없고 야당을 조직한 일도 없었으나, 하나님의 사회적 요구를 거부하고 가나안의 자연종교와 타협한 사회 불의의 간격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출애굽의 만민평등 사상이 사회 불의와 분배의 불평등 그리고 성직매매에 의하여 불신 풍조까지 만연하게 되자, 미가와 호세아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반응은 아모스와 예레미야처럼 종교인들에 의한 모반죄와 각종 제재였을 뿐이었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 예수 역시 주된 대립은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은 이러한 인간 극도의 악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의 복되어라. 가난한 자들이여! “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지막 5장에서는 시편과 지혜문학의 성문서를 통해서 예언자들과 비교되는 현자빈자에 대한 시각과 불의한 자에게 진노하시는 빈자의 편이신 야훼로 인하여 빈자는 기뻐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언자들과 대조되는 현자의 빈자에 대한 엄격한 시각의 차이는 시대상의 차이에 연유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오히려 현자들은 부와 가난이라는 문제보다는 정당한 부의 취득에 따르는 빈자의 기쁨의 권리에 관해서 관심을 가졌고 따라서 정당한 가난은 기쁨의 이유가 됨을 역설하고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시편의 가난한 자는 물질의 궁핍함만이 아닌 정신적 차원의 빈자도 포함한다. 시편의 많은 빈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처지를 애원하며 불의에 대한 유혹도 받으나, 빈자의 간구를 들으시는 말씀의 약속과 도래할 야훼와 그의 나라로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고 행복해한다고 한다.

 

책을 읽고

저자는 경건한 신앙인은 사회적으로 사고하고 사회적으로 처신하는 인간(151)"이라고 규정하면서, “예수는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모든 종교 행위의 진가를 판단하는 시금석(163)"이라는 본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말을 한다. 비록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가톨릭의 선행에 의한 구원이라는 교리에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개신교에서 수용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책은 독재 장기 집권의 군사 정부에 의하여 인권의 유린이 극심하던 1979년에 저술되었다.

 

따라서, 본서의 공헌은 당시의 시대상과 결부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며 대략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보, 혁 두 노선의 화합할 수 있는 신학적 틀을 만들었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당시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 그러한 인식 전환의 영향력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교회(특히 보수 교회)의 윤리적 수준에 머무르는 사회봉사와 구제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한다.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특별함의 이상인 것이어서 신앙과 신학적인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회참여는 때론 사회의 이정표로서의 프로젝트도 감당해야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론 본인의 이해력 결여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3장에서 신명기의 법 정신을 식량, 가족, 예배의 차원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이해하기에 애로가 있었다.

 

우리 주변 교회 대부분은 사회 자체에 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회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은 담임 목회자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무관심의 원인은 사회의 정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은 처음부터 나 자신의 쇄신에의 갈급함에서 이 책을 읽었다. 성서가 말하는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고, 그러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나에게 묻고 대답하고 싶었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목회자와 신학생에게는 필독서로 그리고 신자들에게는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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