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 비교] 힌두교의 겁과 불교의 무상에 대한 비교
<시간관 비교〉 : 힌두교의 ‘겁(劫, kalpa)’의 개념과 불교의 ‘무상(無常)’의 개념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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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힌두교의 ‘겁(劫, kalpa)’의 개념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의 ‘겁(劫, kalpa)’은 산스크리트어로 ‘겁파(劫波)’ 또는 ‘갈랍파(羯臘波)’라 음역하며, ‘장시(長時)’라 번역한다.
1. ‘겁(劫, kalpa)’ 개념에 관하여:
1) 연•월•일 이나 어떤 시간의 단위로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시간을 광겁(曠劫), 영겁(永劫)이라 하고 조재영겁(兆載永劫)이라고도 한다. 조(兆)도 재(載)도 지극히 많은 수의 이름이다.
2)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사방(四方) 40리의 성안에 개자(芥子)를 가득 채우고 백 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개자가 다 없어져도 겁(劫)은 다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 비유를 개자겁(芥子劫)이라 일컫는다. 여기에 다수에 이설(異說)이 있다.
3) 「지도론(智度論)」 권5에 의하면 “둘레 사방 40리 되는 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므로 이 비유에 근거하여 반석겁(盤石劫)이란 이름이 있게 되었다. 여기에도 이설(異說)이 많다.
4) 2종의 진점겁(塵點劫)이 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먹으로 삼아 그 먹이 다 닳도록 갈아서 만든 먹물로 일천국토(一千國土, 세계)를 지날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고 하고, 그 먹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부수어 만든 수 없는 먼지 하나하나를 일겁(一劫)으로 한 그 모든 겁(劫)으로 한 모든 겁(劫)을 삼천진점겁( 三千塵點劫)이라고 한다. 또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五百千萬憶那由他阿增社)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어 오백천만억나유타아승지의 세계(국토)를 지날 때마다 그 먼지를 하나씩 떨어뜨려 그 먼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다시 먼지로 부수어서 그중 한 먼지를 일겁(一劫)으로 셈한다고 할 때 저 모든 먼지 수의 겁(劫)을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 또는 오백억진점겁(五百憶塵點劫)이라 한다. 「법화경(法華經)」 에 나와 있는 진점입원겁(塵點入遠劫)이란 말은 여기에 유래한다.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을 미진겁(微塵劫) 혹은 대지미진겁(大地微塵劫)이라고도 한다. 1
5) 「구사론(俱舍論)」 권12에 의하면 “이 주(洲)의 사람의 수명이 무량한 때를 지나서 주겁(住劫)의 처음에 이르러서 수명이 점점 줄어 열 살에 이르는 동안을 이름하여 처음의 일주중겁(一住中劫)이라 한다. 이 뒤의 십팔(十八, 겁(劫))은 다 증감(增減)이 있다. 즉, 10세에서 늘어나 팔(八)만세로부터 줄어서 10세에 이르는데 이를 이름하여 제이주중겁(第二住中劫)이라고도 하며, 이 뒤의 십칠주중겁(十七住中劫)도 이와 같다. 제이십주중겁(第二十住中劫)은 10살부터 늘어서 8만세에 이르게 된다. 일체의 겁증(劫增)은 8만을 지남이 없고 일체의 겁감(劫減)은 오직 십(十) 세가 그 끝이다”라고 했다. 이에 의할 것 같으면 주겁(住劫) 이십겁(二十劫) 중 처음의 제일겁(第一劫)은 감겁(減劫), 뒤의 제이십겁(第二十劫)은 증겁(增劫), 중간의 십팔겁(十八劫)은 증감겁(增減劫)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수명이 한량없이 긴 때로부터 차차 줄어서 열 살이 되는 동안을 감겁(減劫)이라 하고, 인수(人壽) 열 살로부터 백 년마다 한 살씩 다시 늘어나서 8만 4천 살이 되는 시간을 일증겁(一增劫)이라 하며 이렇게 한 번 줄었다가 늘어나는 기간의 일증감겁(一增減劫)을 일소겁(一小劫)이라 한다. 증겁(增劫) 중에는 수명•중생•생활도구•선품(善品) 2의 사(四)종이 증가한다고 하여 이것을 사증성(四增盛)이라 하고 감겁(減劫) 중에는 이 네 가지가 쇠퇴(衰退)한다고 한다. 또 이 세계는 일정 기간에 이루어지고(성겁, 成劫), 일정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주겁, 住站), 일정기간 동안에 무너지게 되고(괴겁, 壞劫), 일정기간 동안은 아무 형체도 없는 공간상태로 있게 되는데(공겁, 空劫), 이것을 성(成)•주(住)•괴(壞)•공(空)의 사겁(四劫)이라고 한다. 이 세계가 이루어져 가는 동안인 성겁(成劫)의 처음을 겁초(劫初)라 한다. 이 성(成)•주(住)•괴(壞)•공(空)의 사중겁(四中劫)을 합하여 일대겁(一大劫)이라고 하는데, 사중겁(四中劫)의 길이는 이십소겁(二十小劫)이므로, 일대겁(一大劫)은 팔십소겁(八十小劫)이 된다. 선종(縮宗)에서는 천지개벽 이전이란 의미로 공겁이전(空劫以前)이란 말을 쓴다. 3
6) 보살이 발심(發心)한 뒤 부처가 될 때까지의 수행의 기간을 삼아승지(三阿僧祇) 백대겁(百大劫)이라 하며, 삼승지백대겁( 三增祝百大劫)이라고도 한다.
7) 가장 가까운 과거의 일대겁(一大劫)을 장엄겁(莊嚴劫), 현재의 일대겁(一大劫)을 현겁(賢劫), 다음 미래의 일대겁(一大劫)을 성숙겁(星宿劫)이라고 하며, 이것을 합하여 삼겁(二劫)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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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불교의 ‘무상(無常)’의 개념
1. 불교의 ‘무상(無常)’ 개념에 관하여
산스크리트어 anitya 의 한역으로, 상주불변(常住不變)에 대해서 무상전변(無常轉變)의 의미이다. 불교의 근본적 교설은 인연 또는 연기라는 것으로 모든 존재는 인연 화합의 일시적 존재이므로 항상 불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나 물질에 집착해도 그것은 변화 소멸하는 것이므로 실망할 뿐이다. 이를 제행무상이라고 하며 이런 이치를 깨닫고 사람과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해탈하면 마음의 안락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교설을 표현한 것이 제행무상게(諸行無常揭) 또는 설산게(雪山揭)이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기(生滅滅己), 적멸위락(寂滅爲樂)>의 4구로, 전2구는 제행은 무상해서 발생하거나 소멸하면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이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이라는 뜻이다.
후2구는 이 생멸무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면 거기에 평정한 적멸의 깨달음이 열려서 영원한 낙이 된다는 의미이다.
2. 인도 불교의 ‘무상관(無常觀)’에 관하여
인도 불교에서는 무상(아니티야; anitiya)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마음과 육체를 가진 생명적 존재(유정, 사트바; sattva)가 항상 변화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을 지배하는 기본적 진리인데,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무상한 것을 상(常)으로 보는 것에 고통이 생긴다.
따라서 무상을 무상으로 여실히 봄으로써 고뇌에서 해탈할 것을 불교는 지향한다. 또한 무아(無我)를 주장하는데,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우며,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다”라는 논리에서, 무아로 보는 그 출발점이 이 무상관(無常淑)이다.
이처럼 인도 불교에서는 무상관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관법(수행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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