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와 목사   

최일도 목사(크리스찬 신문에서)


벌써 송년모임 초대장이 날아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올해도 다 기운 것 같다. 마지막 남은 94년도 달력 한장의 초반부도 이미 다 보내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금년도의 일정을 조정하노라니, 새해가 오면 내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다는 생각이 문득 나를 압도한다. 아직은 서른 아홉이지만.......


누가 그랬던가? 서른 살 때에는 서둘러 살고, 마흔 살 때에는 마음대로 살고, 쉰 살 때에는 쉬엄쉬엄 살고, 예순살 때에는 여유있게 사는 거라고. 그말이 사실이라서, 이제 20여일이 지나자마자 서둘러 살 수 밖에 없는 나의 서른 살 때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마흔 살로 싹 넘어갈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혼자서 이런 궁리를 하며 좋아하는데, [마흔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나 40대로 접어든다고 해서 마냥 좋아하긴 영 글렀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얼마 안 있으면 내 나이 사십이 된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사뭇 복잡 미묘해진다. 어느 새 내가 마흔 살이 되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마흔 몇 살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나이 많은 사람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누가 잡고 흔들어도 안 흔들리는 균형의 나이 불혹인지, 여기 저기 얽히고 설킨 관계가 워낙 복잡해서 흔들리지도 못하는 나이 미혹인지는 몰라도, 좌우지간 발음조차 중후하게 느껴지는 마흔 살대로 영락없이 내가 들어설 날이 불과 며칠 안 남았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이 40이 불혹인지 미혹인지는 살아보면 알아질 일이지만,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라는 대목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 공동체 나눔의 집을 모교단의 목사님 두 분과, 서울시경에 근무하는 정보과 P형사가 다녀가셨다. K형사는 우리 공동체 자원봉사자이고, P형사는 도시빈민선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막무가내로 나를 찾아오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들을 잘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은 형사들을 가리키며 {이분들은 어느 교회 목사님이신가요?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하고 내게 물었다. 그리고는 목사님 두 분을 향해서는 {이분들이 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하고 묻는 게 아닌가? 목사같은 형사님 얼굴에 비해 형사같은 목사님 얼굴이라니.......


아 아, 이제 책임져야 할 내 얼굴! 난 과연 뭐 같은 목사 얼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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