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llege ut credas, crede ut intellegas."

(믿기 위하여 이해하라. 이해하기 위하여 믿어라.)

"우리는 믿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알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알기 위해서 믿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먼저 알고 나중에 믿으려고 했다면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신학의 굵직한 선을 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사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야곱이 바로에게 말처럼 그의 삶도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장 9절)


10대 무렵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 모니카의 신앙이 아닌 점성술과 마니교에 심취했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음욕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동거해오던 여자를 결혼에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곁에서 떼놓고 보니 떨어진 내 마음은 찢어져 상처를 입고 피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신께 두 번 다시 남성을 알지 않겠다는 맹서를 하고, 자기가 낳아준 내 자식을 남겨둔 채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러하오나 이 여자도 따를 줄 모르던 불쌍한 놈은 …." (「고백록」제 6 권 제 15 장)


"약혼자를 맞아들일 그 이 년이 지루하고 참을 수 없어서 딴 여자를 상관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 좋아서가 아니라, 육욕의 노예가 된 탓이었으니, 그녀를 아내로 들인 것이 아니라, 다만 결혼할 때까지 사뭇 계속될 악습의 방패로 내 영혼의 고질이 고스란히 지탱되고, 더욱 도수를 높이기 위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렇대서 전처와의 생이별에서 받은 상처가 낫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심한 열과 진통 끝에 썩어가고, 오한이 들수록 더욱 절망스런 아픔을 겪는 것이었습니다." (「고백록」제 6 권 제 15 장 )


그런 그에게 암브로시우스와 만남은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됩니다.

[고백록]을 통해 밝혔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명성이 사실인지 확인하고픈 마음에 미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와 결별을 하고 점차 성경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386년 천식으로 목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고통 가운데 7월의 어느 날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저서 [고백록]을 통해서 회심의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Aurelius Augustinus 354-430



그는 죄의 문제로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당신께서 영원히 노하시려 하비니까? 나의 이전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소서." 나는 죄악으로 인해 아직도 꽉 묶여 있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당신에게 부르짖기를,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 내일입니까? 내일입니까? 왜 지금은 아닙니까? 왜 이순간에 나의 불결함이 끝나지 않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통회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습니다...


"Tolle lege, Tolle lege(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그는 이 말을 단순히 어린이의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명령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성서를 펴서 첫눈에 들어온 곳을 읽었고 그 구절은 로마서 13장 13~14절 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구절을 통해 그는 진정으로 회심하고 386년 7월 말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고, 387년 4월 24일 어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밀라노 대성당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위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과 회심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우리에게 있는 어떤 아픔과 어려움들...

그 모든 것을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 보면 억울함과 고통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의 눈물을 통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심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의 고백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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