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1) 벧전 3:8-9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성도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은혜를 입은 것으로 은혜를 입은 우리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목적이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부르셨습니다. 복을 유업으로 받기위해 할일

 

1. 마음을 같이 하여 (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은, 같은 마음, 한마음, 조화된

1) 성도는 같은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지못하고 대립되며 대화가 단절되는 이유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대립됩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후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2) 마음이 하나 되어야합니다. 가정이나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하나 되려면 마음이 하나 되어야합니다. 두마음이 되면 분쟁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분쟁을 일삼고 파당이나 짓고 이간질이나 하는 것은 마귀에 속한 반역의 무리 땅이 갈자져 멸한(민16:32) 고라자손들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교회나 가정과 이웃을 하나 만드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한 마음이 되려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믿음이 하나 되어야합니다.

(엡4:5-6)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마음을 같이 하려면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우리는 개성이 다르고 학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마음을 같이 하려면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배타적인 마음으로는 마음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악기 소리가 서로 다르나 같은 마음으로 합하면 웅장하고 듣기 좋은 음악을 이루지만 각기 자기 마음대로 불어대면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가 되겠습니까? 꽃들이 각기 색깔과 모양이 달라도 조화를 이루면 더욱 아름답습니다. 교회가 왜 시끄럽습니까? 남을 무시하고 각기 자기 목소리만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만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2. 체휼하며

1) 체휼이라는 말은 같은 경험, 즉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몸으로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과부가 과부사정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시집살이 한 사람이 시집살이를 시킨다고도 합니다. 자기가 시집살이를 당했다면 당연히 자기는 그러지 아니해야할 것 같은데 똑같이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어렵게 살았었다면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에처지를 이해하여 가엾게 여겨야하는데 폭군이 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슬픈 일이나 어려움을 당하여 우는 사람과 더불어 같이 울기는 하나, 웃는 사람과 더불어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아니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며 잘 될 때 함께 즐거워 할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사촌이 논사면 배가 아프다는 놀부의 심보가 우리마음에 있어 함께 기뻐하질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형제라고 말은 잘하나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라면 슬픔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자기에게 불리하고 불이익이 닥쳐온다 싶으면 적대 관계가 됩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고전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3)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형제에게 유익한 자가되어야지 형제에게 해가되는 자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롬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형제를 사랑하며

1) 형제는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말자. 우리가 예수 믿고는 한 형제가 되었다면 마땅히 사랑해야하는데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형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할지라도 상대가 나보다 낫거나 비슷하게 생각되면 경쟁의 대상으로 보므로 시기질투가 일어나고 까닭 없이 비방하고 미워하고 대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을 보면 그들은 모든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는 자기생명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삼상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요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2)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함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계명의 강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고전 13장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두움에 속한자요 거짓믿음이 됩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3) 사랑은 허물을 덮어줍니다.

미움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허물로 보이나 사랑의 눈으로 보면 허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보시기에 멸하지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참아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보아서는 심판에서 벗어 날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입었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일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 불쌍히 여기며 '인정 많은, 동정심 있는, 자비로운'을 의미한다.

1) 하나님의 긍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방편은 하나님의 긍휼,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는 헌옷 같고 아담이 범죄 후 자신을 가리운 나뭇잎 같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간 두 소경이나, 가나안 여자가 귀신들린 자기 딸을 위해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 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주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우리가 주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은 주님의 긍휼을 힘입고 나갈 수 있습니다.

(마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2) 우리가 해야 할 긍휼 (마18:23-34)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임금이 그가 갚을 수 없어 불쌍히 여겨 탕감해 주었는데,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친구를 만나 목을 잡고 갚으라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하인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말하니,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친구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3) 긍휼을 베푸는 마음 - 긍휼을 베풀 때 잘못하면 상대편에는 무시하고 멸시하는 인상을 받지 않고 애정과 온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사랑으로 행하여야합니다.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5. 겸손하자.

1) 겸손한자가 큰 자가 됩니다. -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높아지는 방법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질 때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예수님도 (빌2:6-9)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2)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자기의 학문과 가문을 자랑했으나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다고 했고 "나는 사람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 15:8-9)고 했습니다. 자기를 알게 될 때 남을 괴롭히고 죽이는 일을 하던 사람이 겸손히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이제는 오히려 핍박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겸손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과 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낮아져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하나님께 높임 받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롬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3) 교만하면 패망하게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성도가 아무리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해도 그것 때문에 교만하면 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한 자만 못한 것입니다.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에서도 바리세인은 “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했다는 것 때문에 교만했고 세리는 죄인임을 깨달아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