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왕따, 옛날의 왕따  


"어휴, 왕따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왕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감짝 놀랐다. 왕따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옆 테이블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의 말투와 표정 때문이었다.

'이유가 있다니?"

"바보 같은 애들은 왕따 시켜야 해."

아이들의 말을 듣다가 나는 문득 나의 옛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우리 반에는 매월 큰 행사가 있었는데, 가장 짝이 되고 싶은 사람과 가장 짝이 되기 싫은 사람을 한 명씩 쪽지에 써 낸 뒤 짝을 바꾸는 일이었다. 인기가 제일 많은 사람이 누군지 모두들 알고 싶어했지만, 짝이 되기 싫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련의 주인공은 '홍미자'라는 친구였다.

지능지수가 두 자리인 미자는 우리 반에서 항상 꼴찌였다. 얼굴에는 땟물이 흐르고 불쾌한 냄새마저 풍기는 친구였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몇 명을 불러 미자와 짝이 되기 싫은 이유를 대 보라고 하셨는데, 모두들 미자에게서 나는 냄새라고 대답했다.


"선생님, 미자한테서 새우젓 썩은 냄새가 나요."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뜬금 없이 미자에게 질문을 하셨다.

"미자야! 너 목욕은 하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자가

"녜."

하고 대답했다.

다시 선생님께서

"미자야! 니 팬티는 갈아입나?"

역시 미자가 조그만 목소리로,

"녜." 했다.

곧 이어진

"그럼 팬티는 몇 개나 있나?"

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미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하나인데요."


선생님의 눈이 커지면서 깜빡거리고 있는 잠시 동안 반 전체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의 참다 못해 터진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우리 반은 완전히 웃음바다가 되었다. 미자는 어리둥절하다가 나중에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다음날 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미자에게 내밀었다. 미자의 얼굴은 한참 전부터 싱글벙글이었다. 이미 많은 선물상자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미자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스무 명이 넘는 급우들로부터 똑같은 선물을 받았다. 자기가 쓰던 팬티를 가져온 친구도 있었고, 새 팬티를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물론 미자에게서 나던 냄새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이 시간 이후 미자와 짝이 된 친구들은 얼굴 붉히지 않고 한 달 동안 미자를 정말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요즘에는 '왕따'가 당여한 것처럼 여겨진다. 별 일이 아닌데도 한 반에 한 명씩을 '따'로 정해서 따돌리며 괴롭힌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자는 정말로 '왕따'가 돌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춘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미자를 외톨이로 만들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이 재치있는 지도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태어날 때 어떤 부분이 우리보다 조금 부족하게 갖고 나온 것을, 그리고 우리가 미자보다 더 가지게 된 것이 내가 노력했거나 잘 나서가 아니란 것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려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쯤 미자는 어떻게 변했을까?

눈이 크고 다소 이국적으로 생긴 미자의 얼굴이 예뻤었는데....


낮은울타리 2001년 1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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