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 신학의 흐름

2013. 5. 14. 16:12

침례교 신학의 흐름

 

▷ 서론

지난 150년 동안 남침례교 신학의 흐름을 살펴볼 때 초기에는 칼빈주의, 중기에는 수정된 칼빈주의, 후기에는 알미니우스주의가 두각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침례교 신학의 전통은 어느 특정한 하나이 신학체계나 교리체계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상호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신학적 이론과 해석에 대해서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 이항대립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왔다. 대신에 ‘성경’애 대해서만은 어떠한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성실함을 가지고 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침례교를 특징지을 만한 신학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정한 신학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침례교의 독특한 장점이지 약점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조로 신앙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던 침례교의 자유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다.

교리사 관점에서 본다면, 남침례교 신학은 인간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거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남침례교 신학에서는 결코 칼빈도 알미니우스도 독보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었다. 유일한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었다. 그리고 성격은 해석의 자유라는 원리에 의해서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이런 특징은 침례교의 중요한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남침례교의 긍정적인 신학 전통 가운데 또 하나는 그들의 신앙이 “은혜와 자유”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이 둘의 관계 속에서 팽팽한 긴장과 조화를 이루어왔던 것이 침례교 신학의 장점이었다. 신학적 사조로 말한다면, 이것은 칼빈주의와 알미이우스주의의 중도를 지향한 것이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의 중도를 가는 신학, 이것을 우리는 “은혜와 자유의 조화”에서 빚어지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인물

1. 존 대그 (John L. Dagg)

⑴ 생애(1794-1884) - 19세기 중반에 남침례교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목회자이면 교육자이고 신학자였다. 1857년에 출판된 「신학입문서」는 침례교인에 의해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첫 번째 책이며, 1859년 서든 침례신학대학원이 설립될 때 사용한 첫 번째 조직신학 책이다. 대그는 칼빈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의 체험, 특히 회심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그는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그리고 자녀로 삼는다고 믿었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이 아홉 살이 되던 해, 장로교 목사인 월리암 월리암슨이 세운 작은 학교에서였다. 하지만 2년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순탄치 못한 인생역경은 시작된다. 당시 그의 형제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동생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결국 학교를 그만 두고 아버지를 도와 마구상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13세가 되자 아버지의 곁을 떠나 고학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구독하던 장로교의 잡지, 「버지니아 종교 잡지」을 읽으면서 유아세례의 오류를 깨달았으며, 그의 나이 18세가 되는 해에 월리암 프리스토 목사에 의해 에베네저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프리스토 목사는 강한 칼빈주의적인 신앙고백을 채택했던 필라델피아 침례교지방회에서 파송된 사람에게 교육과 훈련을 받았던 사람으로서, 대그의 생애 전반부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목회로 소명을 받고 안수를 받은 것은 23세 였다. 그 뒤 8년 동안 대그는 북부 버지니아주 일대의 작은 교회들에서 목회를 했다. 그러다가 1825년에 필라델피아 제5침례교회로 부임하게 되면서 제2의 목회시대를 맞이한다. 이 교회는 그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였다. 하지만 대그는 불행히도 1819년에 덤프리스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1823년에는 갑작스레 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도 겪었다. 게다가 지나친 공부로 시력까지 크게 떨어져 거의 반 맹인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필라델피아 제5교회를 사임하게 된 것도 그의 건강 때문이었다. 그는 그 시기에 거의 말을 구사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설교자로서 대그의 명성은 널리 펴졌고, 당시 남침례교의 정신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신학자로 성장했다.

 

⑵ 사상

1) 성서론 - 대그는 성경의 무오성과 완전 축자영감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경 기자가 “무의식적 도구”임을 부인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영감받은 사람들이 썼지만, 그들은 단지 이 사역의 감당을 위해 하나님이 고용하고, 준비하고, 선택한 도구로 간주되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2) 예정론 - 그는 예정론을 하나님의 작정과 관련지어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는 주제에서 다루었고, 선택과 유기를 은총과 은혜의 주권이라는 주제에서 다루었다. 하나님의 본성과 그분의 영원한 목적과 뜻에 관심을 두면서 예정론을 주장해 나갔다. 대그가 선택의 교리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이중예정론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선택교리를 반대하는 자는 “새로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했지만, 결국 은혜의 방법은 복음에 대한 인간의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함으로써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관계를 부인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것도 아니고, 조건적인 것도 아닌 대그의 선택론을 데버는 하나님에 의한 “타협되지 않는 영원한 선택”이라는 용어를 붙여주었다.

3) 구원론 - 대그는 칼빈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의 체험, 특히 회심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대그는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그리고 자녀로 삼는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독특한 역사 때문에, 죄인들의 상태는 변화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중생시킨 다고 대그는 말했다. 중생에서 시작된 성품의 변화는 성화에서 지속된다. 그리고 성화 역시 지속적인 과정이다. 성령은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성화시킨다. 대그가 신자의 배교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에 기본적으로 서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칼빈주의의 택자와 예정교리의 논리적 결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자를 언약하신대로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을 믿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4) 교회론 - 교회론에서는 지계석주의를 반대했다. 대그는 교회를 “하나님 예배와 섬김을 위하여 성서에 따라서 한 몸으로 조직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들의 모임”으로 정의하였다. 교회는 신자들의 자연적 모임이다. 교회회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다. 침수례는 정회원이 되는 조건으로 강조했다. 대그는 교회란 지역 회중으로 구성된 지역적인 것과 동시에 모든 “제자들의 전체 몸”인 우주적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5) 종말로 - 후천년주의 설을 주장하였다. 후천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열방이 회심할 때까지, 교회가 복음을 설교함으로써 성령의 거듭남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자라간다는 것이다.

 

2. 그레이브 (J. R. Graves)

⑴ 생애 - 그는 태어난 지 2 - 3주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다. 1834년 14세에 침례를 받았다. 그는 독학으로 하루에 8시간씩 대학과정에 상당하는 공부를 했다. J. J. Burnett 는 “그는 독학도이며 스스로 사람을 만든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19세에 오하이오주 킹스빌에서 한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후에는 켄터키주 월모어 외곽에 있는 Mount Freedom 공동체의 Clear Creek Academy 의 교장이 되었다. 1845년부터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목회자, 편집자, 기고자로서 활동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확산된 “지계석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갔다.

 

⑵ 사상

1) 성서론 - 문자적 완전축자영감설을 주장했다. 성서 자체를 계시로 보았다. 사본의 필사과정에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원본에는 오류가 없다는 입장이다.

2) 예정론 - 속죄의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은 예지로써 믿는 자들을 아셨고, 그리스도는 그 믿는 자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3) 교회론 - 침례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침례교만이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했다.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형태를 따라 자발적으로 연합된 몸”이라고 정의 했다. 비가시적 교회 개념을 거부했으며, 신자의 교회회원권을 강조했다. 침례와 주의 만찬이 교회의 유일한 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침례는 반드시 물에 잠기는 침수례여야 하고, 주의 만찬은 폐쇄적이고 기념의 의미만을 가진다라고 주장하였다.

4) 종말론 - 미래에 대환난의 시기와 의인의 부활 후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서의 통치를 확립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왕국은 인간에 의해서나 점진적 사회 개선을 통해서는 확장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초자연적이고도 즉각적으로 오래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낡고 타락한 세상은 곧 질적으로 다른 질서에 양도될 것이라는 것, 즉 전혀 새로운 평화와 의로움과 공의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유포시켰다.

 

3. 월터 카너 (W. T. Conner)

⑴ 생애(1877-1952) - 1877년에 출생하였고, 남북전쟁 이후 극도의 빈곤 속에서 성장한 카너는 어린 시절을 감리교회를 출석했으며, 17세에 회심했다. 그는 침례교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사역자로 소명을 받았다. 첫 목회는 1898 - 99년 텍사스주 Tuscola에서 시작했으며 1899년 안수를 받았다. 베일러 대학교와 베일러 신학교를 거쳐, 로체스타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남침례신학교의 멀리스의 지도 아래 신학을 공부했다. 부전공으로 카버 밑에서 종교철학을, 드멘트 밑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실용주의와 신학”이란 제목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그 학교에서 1916년 수여했다.

서남침례신학교에서 카너는 1910년에서 1949년 까지 조직신학을 비롯해서, 변증학, 교회학, 기독교윤리, 영어신약, 신약석의 등을 강의했다.

 

⑶ 사상

1) 성서론 - “성경은 영감 받은 책이다.” 이것은 바로 카너가 성경의 영감에 관해서 항상 말했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인간이 썼다. 성경의 메시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하나님은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전달되도록 성경 기자들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기록하는데 있어서 각 사람은 독립적이었다. 각 사람은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았다. 각각의 성경 기자는 사상에 있어서 자신의 독특한 방법과 문체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방식으로 사건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라 말하고 있다. 카너는 축자 영감설을 거부하였다.

2) 예정론 - 선택은 하나님이 인간의 신앙을 미리 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고 인격적인 선택에 기초를 둔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을 특정한 시간에 주어진 상황아래서 구원하신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설과 참 신자의 최종 견인교리는 인정했지만, 하나님의 선택에서 “유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있는 것이지, 사람의 예견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선택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예견된 불신앙에 의존한다. 선택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고, 선택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불신아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3) 구원론 - 카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를 갈등 관계가 아닌, 조화와 균형의 관계로 파악했다. 비록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의 전적 부패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함을 시인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은혜의 불가항력성이라든지, 이중 예정은 거부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구원의 완성을 위해 협동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심지어 인간의 반응이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도 제한된다는 하나님 은혜의 제한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신약성경에서 ‘성화’라는 용어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구원의 과거 체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카너는 기술하였다.

4) 교회론 - 교회론에서는 폐쇄성찬을 말하였다.

5) 종말론 - 종말론에서는 무천년설을 주장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깝다는 예수의 주장이 무시된 “연기된 왕국”이론을 반대한다. 그는 한층 더 신랄하게 “연기된 왕국”이론이 실제적으로 슈바이처의 산상 수훈에 대한 임시 방편적인 윤리학적 접근을 시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는데, 이러한 것이야말로 “극단적 현대주의”와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4. 제임스 보이스 (James P Boyce)

⑴ 생애(1827-1888) - 그는 1827년 출생하였다. 남케롤리나주 챨스톤에서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보이스는 챨스톤의 청교도 정신과 Basil Manly의 칼빈신학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챨스톤대학과 로드 아일랜드의 브라운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이곳에서 Fransis Wayland의 영향으로 회심하게 되고 Richard Fuller에 의해 침례를 받았다.

1849 - 1851년 프린스톤에서 Charles Hodge 밑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칼빈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1848년 Southern Baptist 의 편집을 맡아 보았고, 1870년과 1871년에는 남침례신학교에서 각각 신약학과 설교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859년 남침례신학교가 세워진 때부터 1888년 죽을 때까지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남침례교 최초의 조직신학 교수였다.

 

⑵ 사상

1) 성서론 - 하나님의 은혜교리를 강조했으며 철저하게 성서 무오설을 주장했다. 문헌 중에서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적 완벽 추구의 허술함이 야기되는 오류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계시가 성경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오류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확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 예정론 - 보이스는 멜과 대그의 엄격한 칼빈주의 형식을 따랐다. 그는 예정론을 신론 특히 하나님의 속성들로부터 발생하는 교리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본성 안에 있는 실제적 힘으로 정의 될 수 있는데, 이러한 본성에 의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발생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다. 특히 보이스는 하나님의 작정의지가 존재한다고 단정했다. 그것에 의해서 하나님은 “발생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원인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허락에 의한 것이든 목적을 두고 결정하신다.”하나님의 능력은 이러한 작정적인 의지가 결코 실현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증해 주고 있다.

3) 구원론 -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며, 진정으로 인간의 죄책과 형벌을 확실하게 제거하심으로써” 완전한 희생을 드리신다. 동시에 그는 희생제물로서, 죄 없는 인성과 신성 안에서 완전한 희생재물이시다. 그리스도는 죄인된 인류들을 위한 진정한 대속자이시다. 그는 순종함으로써 의를 확증하시고, 죄의 보상을 만족케 함으로써 죄책을 제거하신다.

보이스가 특별히 남부 지역에서 침례교 산학의 위기로 인식했던 것은 캠벨주의(침례는 구원의 필수조건이라는 주장과 그리스도의 교회로 분립)와 알미니안주의였고, 뉴잉글랜드에서는 파커의 신성모독적인 유니테리안 교리를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신학적 흐름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감사”를 강조했고, 특히 캠벨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막기 위해, 남침례신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에게 “원리 강령”이라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요구 했다.

4) 종말론 -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열방이 회심할 때가지, 교회가 복음을 설교함으로써 성령의 거듭남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자라간다는 것이다. 교회 시대의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그 변화는 천년왕국이라고 불려지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 평화의 융성한 황금시대를 만들게 된다. 반드시 천년은 아닐 수 도 있지만,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육체적으로 그리스도가 임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상의 통치가 있게 될 것이다.” 라말하는 후천년 설을 주장하였다.

 

5. 페트릭 멜 (Patrick H. Mell)

⑴ 생애(1814-1888) -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지냈다. 10대에 그의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고학했다. 1832년 18살에 리버티에 있는 북뉴포트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았고, 다음 해 G. W. Walthour의 후원으로 Amherst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교 당국의 행정과 학과에 반항하고 1834년 자퇴했다.

1839년 25세에 기독교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았고 1842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회는 Greensboro 근처의 침례교회에서 10년간, 1848년부터는 Green의 Bairdstown 교회에서, 그리고 1852년에는 그린스보로를 사임하고 Oglethorpe 의 안디옥교회를 맡아 시무했다. 그의 목회사역은 그가 1878년 조지아대학교의 총장직을 수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대학에서 평생을 사역했다.

교단활동도 매우 활동적이었다. 1855년 조지아침례교회 지방회장에 선출되어 29년 동안 일했고, 1857년에는 조지아 침례총회의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5년 동안 남침례교 총회장으로도 봉사했다.

 

⑵ 사상

1) 예정론 - 멜은 예정론을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과 관련시키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처한 영원한 운명을 미리 예정하시는 주권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결정과 관련시켰다. 칼빈주의에 친근하게 된 멜은 자연스럽게 절대예정, 전적 타락, 제한 구원, 유효한 소명, 최종적인 견인 등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조건예정론을 거부하였다. 멜은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목적으로,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수단으로 미리 예정해 두셨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그의 성향에 따라 선택하든 거부하든 자유롭게 행동한다. 자유의 반대는 필연성이 아니라 강요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하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신의 예정된 성품에 따라 행동한다. 사실 예정론은 이 자유를 부인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워준다고 주장하였다.

2) 구원론 - 멜은 칼빈주의에 친근하게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전적 타락과 제한 구원, 유효한 소명, 최종적인 견인의 신학체계를 받아들였다.

3) 교회론 - 멜은 침수례를 강조하였다. 침수례의 행위 자체가 내포한 의미를 볼 때,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신자의 신앙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여 연합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는데 마태복음 16장 15절은 신자의 침례를 말하는데, 유아는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고백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교회론에서도 교회에 대한 정통 침례교 사상을 대중화 했다.

 

6. 허쉘 홉스 (Herschel Hobbs)

⑴ 생애(1907-1995) - 홉스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믿는 남침례교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1907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2세 때 부친은 말라리아로 사망하였다. 홉스는 12세에 회심하고 침례를 받았다. 그 후 목사가 되어 첫 번째로 한 설교의 재목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부르심”이었다. 홉스는 남침례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뒤 루이지애나와 알라바마를 거쳐 오클라호마 제일침례교회에서 목회 하면서 출판과 방송의 사역을 함께 했다. 특히 "Baptist Hour" 프로그램의 라디오 설교자로 18년 동안 일했다. 1963년 “침례교의 신앙과 메시지”를 작성한 위원회의위원장으로 활약했다.

 

⑵ 사상

1) 성서론 - 홉스는 성서의 무오성을 믿었으며, 신정통주의의 성서관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침례교 신앙의 핵심을 성서의 무어성보다고 영혼의 자유에서 찾았다. 신앙고백과 신조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했으며, 침례교의 일원이 되는데 필수적인 신조는 없다고 주장했다.

2) 예정론 - 홉스는 “전능하며 주권을 가진 하나님은 영의 문제에 있어서 자벌적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반응에 따라 자기 자신을 제한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하시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강하시다는 증거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의지에 대해 순종할 수도 거역할 수도 있지만, 주권자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이 구원 받게 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미리 결정해 둔 숨겨진 작정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타락교리에서는 전적 타락을 약화시켰고,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속죄 교리는 명백하게 거부했다. 성도의 견인에서는 배교의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견인의 확실성을 믿었다.

3) 구원론 - 홉스는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순간적인, 계속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의 현재 시제인 계속적인 구원은 영혼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구원”의 문제였다. 구원의 미래시제인 최종적인 구원은, 순간적인 구원의 취소될 수 없음과 계속적인 구원의 본성과 함께 하늘에서의 모든 은혜와 축복이며, 이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의 정도에 따라 구속된 모든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게 될 것이나 보상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성화를 회심과 구분하는 것을 반대하고 동시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성화된 신자가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4) 교회론 - 지계석주의를 반대하고 보편적인 교회상을 제시했다. 「침례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책에서, 신약성경에 따르면 집사의 직분은 물질적인 사역 이상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침례교의 신앙과 메시지」가 “공인된” 입장을 표현하며 결국 어떤 신조주의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영혼의 능력과 그리스도인 제사장직을 결부시켰다.

5) 종말론 - 홉스는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에 확립된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 실재이자 미래적 실재라고 주장하였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길고 막연한 기간의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용어로 받아들여서 무천년설을 주장했다.

 

7. 무디 (Dale Moody)

⑴ 생애(1915-1992) - 텍사스주의 스템포드에서 태어나 십대 청소년기에 목회자로 부르는 하나님의 소명을 느꼈다. 베일러 대학교와 달라스신학교, 그리고 남침례신학교 등에서 목회자로서의 소양을 닦았다. 1947년 남침례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 뒤 콜럼비아 대학교, 쮜리히와 바젤 대학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연구했으며, 로마에 있는 폰티피컬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수 활동 등을 하였다.

1941년 학생 신분으로 목회 할 때, 신약성서가 배교의 가능성을 가르친다고 설교함으로써 문제를 야기 시켰다. 1947년에 무디는 “원리강령”에 서명하고, 써든 침례신학대학원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서명하기에 앞서, 무디는 성도들의 견인에 대한 “강령”의 진술에 자신이 동의하지 않음을 풀러 교장에게 이해시켰다. 1955년에 그는 영원한 안전성에 대한 논문을 썼고 신자들의 보증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강조했으며, 배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써든 침례신학대학원에서의 무디의 강의는 “신학적인 논쟁이 진행 중인 1983년에 끝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배교에 관한 그의 견해에 대한 논쟁의 결과였다. 무디는 1984년까지의 휴가를 이사회로부터 허가 받게 된다. 후에 그의 재임용 계약은 재개되지 않았다.

 

⑵ 사상

1) 성서론 - 무디는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 계시 - 영감 - 조명의 구조를 피했다. 무디는 모든 영감론이 아모스와 이사야 같은 고전적 예언자들에 관련된 조금 더 합리적인 영감뿐만 아니라,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는, 소위 제의 연어자로 불리는 자들이 소유했던 현상까지도 포함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광범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무디는 기술적 무오론에로의 종속과 구속론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는 완전 축자 영감이라는 구 프린스톤 학파의 정설에 반대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신뢰감을 훼손시키거나 본문에서 오류들을 발견해내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편지에서 “원본에 있어서 영감받고 무류하며 무오한”것으로서의 성경을 언급했다.‘

2) 예정론 - 무디는 모든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부르심이 있고,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부르심이 있다는 칼빈주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는 오직 하나의 부르심만이 있다는 생각과, 사람이 그 부르심을 들을 때마다 회개와 믿음의 반응이 있으면 그 부르심은 유효하게 된다.”는 주장을 한다. 하나님은 누구도 그 사람의 자유 의지가 없는 자를 구원하려고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선택하고 예정하신 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분과 함께 선택되고 예정된다.”라 주장했다. 선택은 쌍방적인 대화이지, 하나님이나 인간 둘 중에 하나에 의한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선택된다.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은 그 분의 운명, 곧 영원한 영광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도 그 사람의 자유 의지가 없는 자를 구원하려고 선택하지 않는다.

3) 구원론 - 무디는 수난의 종이라는 범주들을 선호하고, 속죄에서 어떠한 형벌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화해에서 은혜와 사랑이 율법과 정의보다 우선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난의 종으로서 주 예수는 하나의 희생적인 재물이었고, 부활의 종으로서 주 예수는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신 승리자였다. 그리고 대속의 종으로서 주 예수는 “믿는 자를 위한 대리자”였다. 그의 수난과 죽음은 대속적이었다. 이 말은 “그가 수난을 당하고, 죽고, 부활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가 행했던 것으로부터 혜택을 입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생재물, 승리자, 대속자로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표본이며 대리자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자들에 대한 예정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가 현존한다.

철저하게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거부했다. 회개와 믿음에 선행하는 불가항력적 은혜와 칼빈주의의 중생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성도의 배교 실제성을 주장했다.

4) 교회론 - 교회론에 관심을 집중했는데, 지계석주의에 반해하여 “보편적 교회”의 실재를 주장했고, 그 영향으로 1963 “침례교의 신앙과 메시지”에서는 교회를 ‘모든 시대의 구속된 자 모두를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 했다. 교회는 “전체와 일부분이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 회중은 그리스도 몸의 본질을 공요하고 있다.” 그는 “교회가 그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 아들,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앙의 교제”로 결론 지었다.

5) 종말론 - 달라스 신학의 세대주의 전천년설, 남침례신학교의 무천년설, 서남침례신학교의 후천년설 등을 모두 거부하고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했다.

 

8. 에드가 멀린스 (E. Y. Mullins)

⑴ 생애(1860-1928) - 그는 미시시피주 프랭클린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택사스의 농기계 대학과 남침례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3년 동안 세 군데에서 목회를 하다가, 1899년 남침례교신학교의 학장으로 선입되었다. 1899년 남침례신학교의 4대 학장이 된 뒤부터 일생동안 침례교 삶의 중미부에서 봉사했다. 남침례신학교 학장뿐 아니라, 남침례교 총회의 총회장을 역임했고, 1925년에는 근본주의자와 현대주의자들의 논쟁의 와중에서 남침례교의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 “침례교의 신앙과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침례교세계연맹의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중요 저작으로는 「종교의 원리들」과 「조직신학원론」이 있다.

 

⑵ 사상

1) 성서론 - 멀리스의 견해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불분명하였다. 하지만 “성경이 영감 받은 책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영감에 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이론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그의 성령을 통해서 감동시킨 과정까지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명하다. 하나님은 자명하고도 강권적인 그 자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다는 것이다.”랄 말하였다. 멀리스는 성경 무오와 관련하여 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역동적 영감설”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면서, 그것을 “사람들이 오류가 섞이지 않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는”기술과정이라고 묘사했다.

2) 예정론 - 멀리스가 하나님을 묘사할 때, 이전에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는 그 단어들을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설명할 때, 멀리스는 하나님은 미래에 발생할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과 그러한 지식은 완전하고 즉각적이라는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인 예지는 어떤 방법으로도 사건의 필연성을 미리 예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계획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포함한다.” 멀린스는 칼빈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반대하고 “강권적인 은혜”를 주장했다. 하나님의 주권의 개념이 구원론에 적용될 때, 그 개념은 항상 구속에서 하나님의 주도권과 관련된다. 그리고 “인간 구원의 동기, 방법, 목적이 끝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그 십자가의 사실에도 관련된다. 그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의 “단지 기뻐하시는 뜻”이나 “단순한 의지”에 근거한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칼빈적 개념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된다.

3) 구원론 - “인간 구원의 동기, 방법, 목적이 끝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그 십자가의 사살에도 관련된다. 그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의 “단지 기뻐하시는 뜻”이나 “단순한 의지”에 근거한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칼빈적 개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제한 속죄를 반대했으며,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며 초정하고 설득하시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을 선택하였고,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고, 자신의 부름에 응답한 일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 그들은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한다. 이 후에는 회심, 중생, 칭의, 양자,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이 따른다.

4) 교회론 - 성화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은 용서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선한 청지기적인, 기도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긍정적인 사람과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된 동기인 사랑으로 동일한 교제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 결론

침례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침례교의 정체성과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시간 올바른 것으로 서기 위한 노력들을 보았으며, 또 무엇을 지향하고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 많은 교단에서 나름대로 준비해야 시기에 봉착했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21세기를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침례교회도 그 반열에 당당하게 서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지금의 터전으로 이끈 유산을 다시 검진하고 그 위에 튼튼한 건물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 신앙의 선조가 남겨준 훌륭한 전통에서부터 미래의 당당한 교단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과거로의 회상은 감상적으로 머물고 그 추억에 젖어 지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해 다시 정리함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과 위상을 가늠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남침례교회의 역사와 정신을 살펴봄으로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정신을 보다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함으로써 한국 침례 교회의 신학적, 신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더 좋은 신학과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더 이상 침례교의 신학이 없다 침례교에는 어떤 뚜렷한 색깔이 없다라는 오용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정신을 부여된 교단임을 알고, 사람의 권위나 지식 앞에 주저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고 더 생각할 수 있고 또한 말할 수 있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일이라고 하기 보다는 침례교를 사랑하고 침례교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먼저 자긍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지켜주고 이어오도록 한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더 나아가 그 정신을 가르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 참고 목록

 

정학봉. 「침례교인의 신앙고백」. 서울: 동서남북, 1990.

Harold L. Fickett. 「침례교인의 신앙」. 도한호, 정익환 역. 서울: 침례회출판사, 1975.

Herschel H. Hobbs. 「신앙의 기본원리」. 도한호 역. 서울: 침례회출판부, 1969.

Herschel H. Hobbs. 「침례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김태식 역. 서울: 서로사랑, 1997.

Paul A. Basden. 「침례교 신학의 흐름」. 침례교신학연구소 역 . 대전: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99.

Walter B. Shurden. 「침례교의 정체성」. 김태식 역. 서울: 서로사랑, 1999.

 

침례교 신학의 흐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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