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과 본질: 인간의 자율성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누가복음 18장과 마태복음 6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 원칙과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안내하고 올바른 기도에 대해 안내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도의 힘과 본질을 알고 기도의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기도의 힘과 본질: 인간의 자율성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1. 기도에 대한 생각(누가복음 18:1-8)
▷ 기도란?
기도란 무엇인가? 각자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기도란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이 땅에의 소망을 표현하고, 일상의 감사를 전하고, 절망 가운데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만물의 창조하신 하나님과 나약한 인간이 연결되는 연결고리가 바로 기도입니다.
▷ 과부란? 불의한 재판관은? 졸라맨?
성경에서 과부는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는가? 그럼 재판관은 어떤가? 그것도 불의한 재판관이다. 그에게 간청한다고 귀찮게 졸라맨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그런데 불의한 재판관도 너무 귀찮아서 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 가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도 하나님을 귀찮게 해보자.
▷ 자기의 해석(누가복음 18:2-5)
우리 인간은 이 과부와 같다. 그녀처럼 가난하고 힘없고 연줄도 없고 지위도 없어서, 우리의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이 재판관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차피 하나님께는 돌려야 할 우주가 있고, 조화롭게 관리해야 할 천사들이 있으니까 되도록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는게 좋다.
하지만 정말 비참한 처지에 있으면, 우리도 언제든지 이 과부처럼 행동할 수 있다. 즉 몇 시간이고 무릎 꿇고 기도하라. 친구들에게도 부탁해서 하나님을 귀찮게하면, 조만간 우리 하나님이 지쳐서 꽉 움켜쥐어 주지 않으시려 하는 축복을 억지로 손가락을 벌려서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에 가서 하나님도 재판관처럼 외치시겠지.
▷ 말씀 이해하기 (누가복음 18:7-8)
- 사실 우리는 과부와 전혀 같지 않다. 과부는 버려진 사람이다. 재판관이 볼 때 그녀는 처리해야 할 하나의 항목이다. 하지만 우리가 버려진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그분의 자녀이다.
- 재판관과 하나님은 전혀 다르다. 내어주시는 하나님, 축복하시는 하나님, 격려하시는 하나님, 양육하시는 하나님, 힘을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재판관은 삐딱하고 불의하고 불공평하며,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개인사에 열중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며, 거룩하시고 온유하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 내려 주기를 기뻐하신다. 그게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2. 예수님의 기도 원칙(마태복음 6:5-13)
▷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 기도할 때에, 기도하게 된다면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은밀하게 기도하라.
- 하나님은 남들에게 경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싫어하심(분주함을 벗어 날 수 있는 곳을 만들어라. 특별한 장소;사도행전 마가의 다락방) 그래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책망하셨습니다.
▷ 진실하게 기도하라.
- 기도를 하는 방법이라는 공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식 같은 기도엔 관심 없습니다. 우리 속마음을 진실하게 말하면 됩니다. 무의한 말을 하지 말자(기름덩어리 음식 앞에서 축복 기도... 비행기 자동 조정장치를 버려라.)
▷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한 구체적인 기도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쇼핑 목록이 아닌, 경배와 굴복, 요청과 고백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법 주문서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3. 기도를 방해하는 훼방꾼들(기도 응답이 없는 이유)
▷ 기도만 빼고 다 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누가복음 18:1)
▷ 죄로 오염된 기도: 고백하지 않은 죄(이사야 59:2)
▷ 깨어진 관계: 해결되지 않은 갈등관계(마태복음 5:23-24)
▷ 이기심(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하듯이): 기도를 게시판에...(약 4:3)
▷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기울이라: 돌아보지 않는 태도(잠21:13)
▷ 부적절한 믿음(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약 1:5-7)
기도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기도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이요, 독립적인 삶에 대한 고발이다.
단호하게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는 바쁜 사람들에게 기도는 매우 황당한 방해꾼이 아닐 수 없다.
기도는 우리 인간의 교만한 본성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 어디선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오로지
하나님께만 관심을 기울인 채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다다른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도 있고, 낯이 뜨거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기도에 마음이 끌리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임재에 둘러싸여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직관적으로 건 경험적으로 건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연합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련이나 시험을 당해 본 사람들, 가슴 아픈 일이나 슬픈 일, 혹은 실패나 낙담, 외로움이나 차별을 겪어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마침내 무릎을 꿇고 주님께 마음을 쏟아 놓았을 때 그들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빌 하이벨스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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