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95개조 반박문

2014. 4. 3. 19:40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001.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 위에 믿는 자들의 전 생애는 계속적 참회라야 한다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

 

00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의 직에 의하여 집행되는 참회나 사죄에 대한 말로 이해될 수 없다.

 

003. 참회는 내면적 참회가 외적으로 여러 가지 육욕을 죽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참회할 수 없다.

 

004. 형벌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과 같이 내면적 참된 회개 역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005. 교황은 그 직권에 따라서나 교회의 칙령에 따라서 부과하는 징벌 외에 다른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

 

006. 교황은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 이외에 아무 죄책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억제 당한 일에서 사죄한다든지 그의 직책이 멸시받는 경우에는 죄는 제거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다.

 

007. 하나님은 철저히 겸손하게 되지 않은 사람의 죄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자기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굴복하신다.

 

008. 고해와 참회를 하게 하는 교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

 

009. 그러므로 교황이 언제나 죽음과 외적 공경을 예외로 취급할 때면 성령께서 교황을 통하여 자비를 내리신다.

 

0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장차 사면을 받을 연옥 때문에 교회가 제정한 참회를 보류하는 사제들이 몽매하고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011.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참회와 사죄를 연옥의 징벌이란 것으로 변해버린 이 가라지는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다.

 

012. 전에는 일어난 죄의 사건에 대한 참회와 사죄라는 소위 "교회법에 따른 징벌"은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사면 선언 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과되는 것이다.

 

013.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모든 허물에 대하여 치루어야 할 것을 만족시켰고 교회 법규에 대하여 이미 폐기되었다.

 

014. 죽은 사람의 불완전한 경건이나 불완전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하는데 사랑이 적으면 적을 수록 더 큰 공포가 있게 된다.

 

015. 이 공포와 놀람 자체만으로도-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016. 지옥,연옥, 또 천국은 각각 구별되기를 이미 절망한 상태와 절망에 빠져들어 가는 경우와 구원의 확실성이 각각 구별되는 것과 같다.

 

017.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가 증가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점점 자라고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018.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공로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019.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축복을 확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

 

020. 그래서 교황은 "모든 징벌의 완전한 사면"이란 말로써 벌이 깨끗이 사면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부과하려 했던 징벌만을 사면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0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샀다고 해서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고 행복해 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난 마르틴 루터는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뜻을 따가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벼락이 치던 날 안나 성녀에게 한 맹세를 계기로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1512년 신학 박사가 된 루터는 이듬해 부터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 무렵 로마 교황청은 산피에트로 대성당의 신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를 판매하고 있었다. 면벌부란 죄를 용서하고 벌을 면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이다. 루터는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내걸었다, 교황은 루터에게 반박문을 철회하라고 요청했으나 루터는 이를 거절하고 교황이 보낸 파문장 까지 불태웠다. 결국 교황은 루터를 파문했고 루터는 비텐 베르크에서 새로운 개혁 교회를 만들었다, 비텐베르크 대학은 루터파 교회의 중심이 되어 독일 전역에 루터의 사상을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독일은 루터를 지지하는 루터파와 교황을 지지하는 교황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022. 사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에 대해서 단 하나의 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징벌은 그들의 교회의 법규에 의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다.

 

023. 만일 징벌의 사면이 누구에게든지 주어질 수 있다면 그러한 사면은 소수밖에 없는 완전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 확실하다.

 

024. 그래서 백성은 대부분은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는다는 무차별적이고 찬란한 약속에 의하여 기만을 당한 것이다.

 

025. 교황이 연옥에서도 일반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은, 같은 권세를 가진 모든 감독과 목사도 자기의 감독구와 교구 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026. 교황은 그가 (연옥에 대하여 전혀 갖지 않은) 이 열쇠의 권세를 근거로 하여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도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용서를 사유한다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027. 헌금궤에 떨어진 돈이 쩌렁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람은 교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028. 헌금궤 안에서 울려나자마자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교직자의 도움이나 대도가 성립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029. 성 베리누스와 파스칼리스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사면을 받겠는지 더욱 확신할 수 없다.

 

030. 아무도 자기의 회개가 진실 된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받겠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031. 진실된 참회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 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다.

 

032. 그들이 산 면죄부 증서로써 행복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교사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033. 교황의 면죄부가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 의존하는 가장 높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034. 왜냐하면 면죄부로서 얻는 은총은 사람으로서 지워진 성례전적 속죄행위로 사하는 벌에만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0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 그리스도적인 것을 설교한다.

 

036. 어떤 크리스쳔이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참된 회개를 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면죄 받는다.

 

037. 모든 참된 크리스쳔들은 산 자든지 죽은 자든지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의 선물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역 재산에 참예 할 수 있다.

 

0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와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039. 면죄부의 관대한 선사와 동시에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040. 참된 회계는 징벌을 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나 많은 면죄부를 갖는 것은 징벌에서 해방하고 사랑이 그것이 싫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그렇게 할 기회를 준다.

 

041. 교황의 사죄권에 대해서 설교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그것을 사랑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042. 면죄부에 의한 사죄는 자선사업과 비슷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교황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궁핍한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 보다 더 낳은 것을 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 성장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면죄부로써 더 선명해지지 못하며 다만 징벌을 면할 뿐이다.

 

0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면죄부를 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6.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한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기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장할 의무를 지며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047. 면죄부를 사는 일은 자유로 할 것이며 결코 강제로 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데서 얻는 돈보다는 사랑의 열성이 깃든 기도를 더 원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잃는다면 그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에 설교자들의 공갈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051. 어떤 면죄부 판매설교자들 그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자기 돈으로 또는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052.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053. 면죄부 설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선포되기를 금지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054. 만일 사람이 한 설교에서 사죄권을 행사함에 복음말씀을 전하는 시간보다 더한 시간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055. 만일 사람이-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면죄부를 한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매우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 배의 행렬과 굉장한 축제로써 기리고 축제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견해이다.

 

056. 교황이 면죄부를 나눠주는 것은 근본인 교회의 "보화"(여분의 공적을 말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0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설교자들이 이 보화를 쉽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기에만 힘쓴다는 것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0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황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내적 인간을 위해서는 은총을 주며 외적 인간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059. 성 로체스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배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 시대의 통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060. 우리는 이 보화란 것을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교회의 산물로 준 교회의 열쇠의 권한이라고 근거 있게 또 심증 있게 말할 수 있다.

 

0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이 관리하도록 된 조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0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호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대한 거룩한 복음이다.

 

063. 이 보화는 자연적 상태로는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 된 자를 마지막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064. 그 반대로 면죄부의 근거인 보화는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것은 마지막 자를 첫째로 만들기 때문이다.

 

065. 그래서 복음의 보화는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066.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오늘날에는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067. 설교자가 큰 은총을 주기 위하여 외치며 파는 면죄부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갖다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068. 그러나 그같은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과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은총이다.

 

069. 감독들과 교구 목사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지고 맞아들 이게 한 책임이 있다.

 

070. 그러나 그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맡긴 일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 대해서 이다.

 

071. 교황의 사죄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저주받고 추방당할 것이다.

 

072. 그러나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의 변덕스럽고 파렴치한 말을 거슬러 걱정하고 슬퍼하는 축복을 받을 찌어다.

 

073. 교황은 면죄부 판매에 손해를 입히고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분노나 추방으로 보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074. 교황은 면죄부라는 구실 안에서 거룩한 사랑과 진실성에 손실을 끼치기 위하여 책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와 추방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볼 것이다.

 

0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모를 능욕했더라도 죄에서 해방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076.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교황의 면죄부는 가장 적은 죄도 없이 할 수 없으며 죄로써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077. 만일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도 큰 은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0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이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 다시 말하자면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福音)과 성령의 능력과 병고치는 은사들을 자유로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079. 교황의 문장을 화려하게 찍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능력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080. 이 같은 가르침이 민중 앞에서 말해지는 것을 보고 묵인하는 감독 교구 목사 신학자 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081. 면죄부에 대한 그 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는 교황의 명예와 품위를 비방이나 또는 순박한 삶을 끌 수 없는 예리한 질문에 대해서 수호하는 것은 아무리 학식 있는 사람일 찌라도 어렵게 만든다.

 

082. 예를 들면 교황은 왜 모든 영들을 그의 가장 정당한 이유로서 가장 거룩한 사랑때문에 또 심령들의 지극한 곤궁 때문에 연옥에서 해방시키지 않는가. 실제로 그는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써 하기보다는 자기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083.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아직 죽은 자의 장례식이나 해마다 하는 제사가 남아있으며 교황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바친 것을 돌려 주지도 않고 그 기부금을 취소하기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084. 또는 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 즉, 적대자들에게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영혼으로 속해내기를 허락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자체의 큰 곤경을 위해서 사랑으로부터 해방하여 내지 않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과 교황에 대한 경건이 아니겠는가.

 

085. 또는 참회에 관한 옛 조문이 오래 전에 사실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아직 사죄권과 관련되어 그것이 아직 효력이 있고 산 조문인 것처럼 돈으로써 구해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086. 또는 오늘날 제일 부자보다 더 능력을 가진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 하기보다는 자기 돈으로 할 것이 아닌가.

 

087. 또는 교황은 참회로써 완전한 용서를 받고 영적 재산에 참예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사해주고 나누어주려고 하는가.

 

088. 또는 교황은 용서와 은총에 대한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대신에 백번 모든 믿는 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089.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 구원을 관심했다고 본다면 왜 그는 똑같은 효력을 가졌다고 보이는 면죄부에 대한 옛 교서를 정지시켰겠는가

 

090. 만일 평신도의 예리하고 사려 깊은 항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근거제시를 통하여 가라않히지 않는다면 교회의 교황은 원수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091. 만일 면죄부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한다면 이 모든 의문은 해답되었을 것이며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092.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 "평화"하고 말하는 모든 예언자들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093. 그러나 십자가 없는 곳에"십자가", "십자가"하고 그리스도 백성들에게 말하는 예언자만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094.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이다.

 

095. 그래서 여기 평화가 있다고 하는 태평한 환상으로보다는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더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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