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신학 - 역사적 배경


19세기에 걸쳐 서구 문명은 세계를 행복과 풍요의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확신에 불타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구의 기계화와 산업화가 부와 안락한 경제 생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갔지만 말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시작은 기대처럼 평화롭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열강들이 자신의 식민지를 구축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예전의 고립된 인간의 생활들이 제국주의의 땅따먹기에 의해 보편화되기 시작함으로써 전통과 새로움이라는 틈이 점점 커져 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전쟁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쟁은 혁명, 경제 침체, 인류 문명 파괴로 이어졌다. 서구 제국들이 자랑했던 기술적 진부는 세계를 파괴하는 무기로 변해 있었다. 4년간 계속된 전쟁은 무려 30개국과 6500만 명의 병사들이 동원되었으며,  1/7이나 되는 사상자와 1/3에 해당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으며, 미국에서는 1920년 경제적 번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대공항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고립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 외에 중요한 것은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카톨릭 교회와 혁명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914년 9월 젊은 목사 칼 바르트는 황제의 전쟁 정책에 대한 그들의 열렬한 지지를 표방하는 93명의 저명한 독일 지식인들에 의해 서명된 서명서를 처음 들었다. 그래서 바르트는 이런 상황으로 이끈 신학적 전통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결론내렸다. 대부분의 20세기 신학자들은 그런 결론을 공유하게 되었다.


19세기 신학은 종종 기독교를 진보의 힘과 서구 문명의 최선이라고 간주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20세기 신학자들은 이러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미국은 근본주의나 사회 복음의 다양한 입장들로 미국 문화를 비판했으며 불트만과 같은 신학자들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서구 문명에 비판을 가했다. 진보사관의 낙관론에서 눈을 돌려서 진보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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