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도구 성모 마리아 (누가복음 1:24~38)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주일 주일학교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왜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한 학생이 손들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엄마가 거기에 있었잖아요"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스토리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떠나서 이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기적이 있었다면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고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정말 기적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학자들은 성육신의 사건을 가르쳐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기적 중의 기적의 사건을 묵상할 때마다 마리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이 기적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셨을 때 이 지구촌에는 메시아의 어머니로 쓰임 받을 무수한 대상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당시의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권력자들의 가정에서 양육된 미모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의 희랍 아테네 고린도에는 오랜 전통의 명가에서 뛰어난 문학과 교육으로 길러진 지성적인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제사장들의 가문에 종교적으로 잘 훈련된 경건한 자질의 규수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구상의 작은 나라 그중에서 이스라엘의 마을들 가운데서도 가장 천시받던 나사렛 촌 마을의 아직도 철들기 전 연령인 틴 에이져 소녀를 선택하여 기적의 도구로 쓰셨을까요?

오늘의 본문 30절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우리말 번역에 의하면 마리아는 그냥 피동적으로 은혜를 입은 것만으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이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 의하면 "YOU have found favor(grace) with God"(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은혜를 찾았다)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능동적으로 추구한 모습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것을 귀하게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적의 도구가 되게 하었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날 하나님의 기적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소녀의 어떤 사람됨이 그녀를 기적의 도구 성모 마리아가 되게 했을까요?

 

1. 겸손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28절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그녀가 하나님께 은혜받은 자임을 통고합니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그때 그녀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당연히 나와 함께 하시어야 하고 난 당연히 주께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말했습니까? 아니지요. 29절의 반응을 주목해 보십시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여기서 마리아가 느낀 놀람은 어떤 황송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히브리 백성들에게는 천사를 경험함 그 자체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영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나타나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니 자기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특권으로 느낀 것이었습니다. 마리 아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38절에서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 겸손을 주께서 보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일관성 있게 증거 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역사도 동일한 사실을 증거 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까? 교만한 사람이 무엇을 성취하면 그는 반드시 그 일이 자기로 말미 암은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끝까지 그 일이 주로 말미 암은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마리아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알려지고 추앙받는 여인이 되었지만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나타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마리아 같은 겸손한 사람을 찾습니다. 어느 크리스천 스쿨에서 그해의 가장 겸손한 학생을 뽑아 상을 주고 '겸손한 학생 '메 달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그다음 날 실격당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이 '겸손한 학생'메달을 달고 학교에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겸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풍자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겸손한 사람을 찾습니다.

 

2.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를 쓰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보면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우리가 이 구절만 보면 주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마리아가 회의적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주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기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본문 37절에서 천사는 엘리사벳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이때 마리아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주님을 믿었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45절에서 마리아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마침내 믿음의 여인,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불신의 왕들이 하나님의 어떤 섭리를 이루기 위해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들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가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에도 많은 경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지 않으셨습니까? 반대로 불신앙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조건이 됩니다. 주께서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마을 사람들이"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도구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믿어야 합니다.

믿기 어려운 불가능의 상황에서도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어린 소녀의 단순한 믿음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이 믿음을 쓰신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고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한 특성이 하나 있었다면 그들 모두 '단순한 믿음'(simple faith)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복잡하지 않아요. 단순해요. 단순하게 믿어요.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런 단순한 믿음의 사람으로 마리아처럼 기적의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헌신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소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드려지지 않은 것은 쓰일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헌신도 안 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안 쓰신다고 불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헌신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34절에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기가 어린 처녀로서 메시아를 낳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35절에서 천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네 몸을 성령의 도구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 앞에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 지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 순간이 바로 마리아의 헌신의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헌신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헌신은 언제나 헌신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왜 헌신을 기피할까요? 헌신의 대가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런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우리의 칭송을 받기에 합당한 성모입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사춘기 소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이 동리에 소문날 때 마리아는 어찌 되겠습니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당시에 미혼모의 임신은 돌팔매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마리아가 이 고백을 하기 위해 그녀는 사실 죽음까지 각오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기꺼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 지이다" "주께서 계획하신 대로 행하시옵소서"하신 것입니다. "이 몸 드리오니 뜻하신 대로 쓰시옵소서" 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헌신이 아닙니까? 헌신은 더 높은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인생의 의 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지닌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파로티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음악학교를 졸업하던 날 그는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가 앞으로 음악 선생님이 될까요? 성악가가 될까요?" 아버지는 빵장수였지만 음악에 조예가 있어서 늘 그의 좋은 스승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 앞에 두 개의 의자를 당겨놓고
노트 한 장을 두 조각으로 찢어서 한 의자에는 작은 고통/작은 보람--또 한의자에는 큰 고통/큰 보람 이렇게 쓰더니 "선생님의 길은 작은 고통이 있지만 작은 보람으로 만족하는 길이고, 성악가의 길은 큰 고통/큰 보람을 누리는 길이 될 터인데 네가 선택하는 의자에 앉거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성악가의 의자에 털색 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피나는 훈련을 통해 7년 만에 오페라에 입상하게 됩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이천 년 전 소녀 마리아가 오늘의 성모 마리아가 되어 우리에게 끼치는 감동--이것은 실로 죽음도 두려워 않은 그녀의 헌신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일찍 시므온은 누가 2장 34-35절에서 마리아의 일생에 대한 이런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깁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폐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하여, 마리아에게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이 있었는지요? 문자 그대로 칼에 찔리는 아픔으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모가 되신 것입니다. 헌신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의 짧은 일생은 문자 그대로 큰 고통의 생애가 아니었습니까? 십자가는 이런 고통의 절정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신 십자가의 큰 고통, 피 흘리심으로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류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예수의 제자가 되어 그의 발자취를 따르며 쓰임 받는 인생을 소원하시는 여러분! 그렇다면 너무 안일 한 인생 만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주를 신뢰하며 그분에게 내 일생을 드려 쓰임 받는 일생을 위한 헌신을 결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크리 스찬 유머가 있습니다. 성탄절 이 가까운 어느 날 지옥에서도 악령들의 성탄절 축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졸개 악령이 마귀 앞에 엎드리며 '메리 크리스마스'하니 대왕 마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 메리 크리스마스 하자. 모든 인류로 하여금 메리 메리 즐겁게 이 날을 즐기게 하라. 즐기는 것은 아무 문제없느니라. 그러나 이 날의 의미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지는 말도록 하여라. 인간들이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그리고 십자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우리의 낭패의 시작이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아니 “미닝풀”(의미가 충만한) 크리스마스(Meaningful Christmas)를 맞으십시오!

주님의 탄생 이미지
가장 낮은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설교 적용 질문>

1. 본문 28-29절에 의하면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다고 느껴지십니까?
2. 다시 38절에 의하면 마리아가 어떤 여인으로 느껴지십니까?
3. 이 38절의 고백을 위해 여인 마리아가 어떤 결심을 해야 했었는가를 말해 보십시오.
4. 각자가 성탄절을 맞는 자세와 결심을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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