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단의 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것은 이것입니다], 정장복, 서울: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1999.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전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성전의 꽃이 하나의 형식이 되어 꽃이 없는 성전은 이상하리 만큼 허전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 성전에 꽃을 장식하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 주일의 꽃값이 농어촌 교회 교역자들의 한 달 생활비에 버금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실제로 약 8000명 정도 모이는 교회(본당과 교육관)에서 한 주일 꽃값은 30만 원에서 40만 원 정도 지출이 됩니다.
 
물론 성전에 꽃을 드리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제단에 꽃을 드린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 보기 위하여 제정낭비와 막대한 꽃을 드려야 하나? 그것이 의문입니다.
 
IMF가 시작되면서 작은 교회에서는 꽃꽂이에 들어가는 예산 3만 원을 절약하기 위해 꽃꽂이 대신 화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가 정성껏 만든 종이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꽃꽂이의 의미입니다. 긍정적인 경우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이라는 것이며, 부정적인 경우는 돈을 절약해서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사님이 어떠한 목회관을 가지고 계시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비단 기존 목사님뿐만 아니라 예비 목사 후보생들이 어떤 부분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교회와 야생화 이미지
교회의 아름다운 야생화(Image by Albrecht Fietz from Pixabay)

 
비록 작은 교회에서 보면 많은 제정이 낭비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작은 교회의 기준이 아니라 각 교회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면 달라질 문제입니다. 만약 교회마다 전체 예산에 3%의 예산을 헌화로 책정을 한다면 비록 액수는 달라지지만 교회마다 책정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것이 형평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액수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 예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동일하게 지출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교회의 예산으로 각 교회는 각각의 절기에 해당하는 꽃꽂이를 통하여 설교를 돕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이 예배의 한 부분으로 설교와 예배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꽃꽂이도 고난주간이나 대강절, 성탄절 부활절 등 많은 절기에 그 절기에 해당하는 꽃꽂이를 하므로 성도들에게 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꽂이의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서 고난주간이면 가시나무를 선택하고 성령강림주일이면 글라디올라스와 같은 붉은색 계열의 꽃을 사용합니다.
 
성전의 꽃을 헌화하는 자는 마음가짐이 먼저는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가짐과 교인들은 헌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성전의 꽃꽂이는 지금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기독교서점을 가도 성전 꽃꽂이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헌화가 단순히 주일에 한번 보고 끝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전 꽃꽂이에 관한 책을 보면 1년 52주에 맞추어 각 주일마다 꽃의 소재와 의미가 다르며 지금도 꾸준히 성전 꽃꽂이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제 성전 꽃꽂이가 단순히 남들에 보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일원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IMF로 인하여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헌화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은 형편에 맞추어 헌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쓰레기 문제와 재정문제가 걱정이라면 종이꽃을 만들어 헌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꼭 생화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정성껏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헌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내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교회마다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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